베일 벗은 증권사 IB 차별화 전략...성과지표 손 보고 '특기 인사' 전진 배치
입력 2019.04.04 07:00|수정 2019.04.08 09:15
    제한된 역량 어디 투입하느냐에 따라 '주특기' 차별화
    '과정'對 '결과' 무게중심도 달라…변화가 성과 가를 듯
    • "자본력이 일정부분 갖춰진 지금, 투자금융(IB) 부문을 성장시키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입니다. 누구에게 권한을 주어 청사진을 그리게 하고, 어떤 지표로 평가해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가." (한 대형증권사 부문 대표급 인사)

      IB 부문 차별화를 위한 각 대형증권사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전통 IB 영역의 경쟁은 전례없이 치열한 상황이고, 황금알을 낳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침체기에 접어든 까닭이다. 제한된 역량을 어느 분야에 투입하는가에 따라 '주특기'가 나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부 조직은 새 리더를 맞이하며 격변에 가까운 변화를 겪고 있고, 다른 조직은 실무급 인재 수혈에 여념이 없다. 이들이 만들어낼 성과는 앞으로 증권사들의 리그테이블에도 고스란히 반영될 전망이다.

      최근 증권가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IB는 NH투자증권이다. '30년 IB맨' 정영채 대표가 임기 2년차에 접어들면서 '과정 가치'를 화두로 내세웠고, 이에 금융권에서 보편화됐던 KPI(Key Performance Index·핵심성과지표)를 뜯어고치겠다고 밝혔기 때문.

      새로 내거는 성과지표는 영업의 최종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발행 금액', '부서 수익 규모'의 영향을 최소화한 것이 골자다. 대신 새로운 영업루트 개척, 고객 접촉 등 거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수치화해 반영한다. 예컨데 커버리지 부문에서는 어떤 고객을 언제, 어떻게 접촉했는지를, 기업공개(IPO) 부문에서는 새 고객을 얼마나 만났는지, 상장 예비심사 청구를 몇건 넣었는지를 평가하는 식이다.

      당장의 수익에 목 매지 말고 중장기적인 이익확대를 노리는 구상에 해당된다. 상대적으로 매년 리그테이블 순위에 대한 집착도 줄이게 될 상황. 이를 추진하면서 NH투자증권 IB부문은은 연초 1967년생 전후를 부문 대표로, 1970년생 전후를 본부장급으로 승진시키며 세대 교체도 감행했다. 다만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NH투자증권이 내세우고 있는 '과정 가치'는 IB맨들에게 아이디얼한 가치인데 실제로 실적에도 순기능을 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전열을 정비한 KB증권은 전통적인 성과주의에 집중하고 있다. 한누리증권·KB투자증권 시절부터 채권시장(DCM) 최강자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이제는 주식시장(ECM) 역량 강화를 목표로 내세웠다.

      자연히 리그테이블 순위가 오히려 KB증권 IB 부문의 주요 평가 지표 중 하나가 됐다. 일단 DCM 부문의 올해 사업목표 중 하나가 리그테이블 1위 사수, 여기에 ECM 부문은 리그테이블 3위 내 진입이 목표다. 채권딜러 출신이자 대기업 커버리지를 오래 담당한 심재송 상무를 ECM본부장으로 내세우는 '파격 인사'도 단행했다. 리그테이블 최상위권 진입을 위해선 대기업에서 나오는 초대형 거래에 참여하는 게 필수다. 대기업 및 기관 영업에 잔뼈가 굵은 인사를 통해 대기업 딜(deal)을 공략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부동산과 대체투자 총괄 조직을 IB2부문으로 독립시킨 것도 특기할만한 요소다. IB2부문장을 맡은 조병헌 전무는 다올부동산자산운용 출신 부동산 전문가로, 2013년 현대증권에 합류해 2016년 합병을 통해 KB증권으로 적(籍)을 옮겼다. 출신만 따지면 비주류지만  IB부문의 절반을 떼어 맡겼다.

      IB전문가인 김병철 대표를 새 리더를 맞이한 신한금융투자의 경우 IB와 사내 전반 '체질'을 바닥부터 바꾸는 작업을 시도 중이다. 김 대표는 그간 신한금융투자 IB에 대해 '수익, 규모, 시장 내 존재감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IB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RM(기업금융 영업역)의 역할 재조정을 내부적으로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고객과의 접촉을 늘리고 사전에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화두가 됐다. IB 부문 인력에 대한 성과급 체제 등 보상 체제 개편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당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변화지만 IB의 기본으로 돌아가 발로 뛰어다니며 우선 '고객 기반'부터 다진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과거 2008년 동양종금증권 IB를 총괄하며 이런 전략을 활용, 4년만에 ECM, DCM 모두 리그테이블 기준 실적 1위를 달성시킨 이력이 있다.

      그간 국내 IB 영역에서의 경쟁을 최소화해온 삼성증권은 '과정'도 '결과'도 아닌, 아예 제3의 길을 가고 있다. IB 부문의 역량을 글로벌 대체투자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내 자본 해외 인프라 투자 사상 최고액이었던 8840억원 규모 프랑스 덩케르크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지분 인수가 대표적인 트랙레코드로 꼽힌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하반기 대체투자본부를 새로 꾸리고, 웰스파고·RBS를 거친 글로벌 투자전문가 안준상 본부장을 영입해 부서를 맡겼다. 김장훈 모건스탠리 대체투자팀장과 JP모건에서 대체투자부문 리서치를 담당하던 신주용 책임도 삼성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엔 그간 전통 IB 50, 대체투자 50정도로 나눠 쓰던 IB 부문의 자체투자여력(book)을 전통 IB 40, 대체투자 60 정도로 바꿔 힘을 실어준다는 계획이다.

      대체투자 부문 인력 충원을 필두로 IB 부문의 전체 인력도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 삼성증권은 2013년 IB부문 인력을 132명에서 75명으로 줄였다. 당시 경쟁력이 훼손되며 삼성증권 IB는 상당기간 암흑기를 거쳤다. 삼성증권 IB부문은 지난해 말 130여명 수준으로 늘어났고, 올해에도 20명 이상을 충원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래에셋대우는 다른 증권사들과 달리 IB부문 전반에 대한 일원화된 전략보다는 8조원 규모의 자기자본을 바탕으로 '글로벌 위주 전략'을 세우고 있다. 전통 IB를 담당하는 IB1부문, 부동산 담당 IB2부문, 인수금융 및 대체투자 담당 IB3부문 대표에게 권한과 책임을 모두 위임하고, 높은 목표치를 부과해 내부 분발을 촉구하는 방식이다. 각 부문에 소속된 임직원의 인사 평가 기준도 각 부문 대표가 내부 실정에 맞게 조정한다.

      미래에셋대우 IB 내부 핵심 평가 기준으로는 ▲ 글로벌 미래에셋대우 지점들과 얼마나 효과적으로 시너지를 냈는가 ▲고객들에게 글로벌 자산 상품을 얼마나 공급했는가 등의 기준이 들어간다. 글로벌 투자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위험 대비 수익 지표도 도입했다. 예컨데 100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50%의 수익을 얻는 것보다, 50을 감수하고 30%의 수익을 올리는 편을 우대한다.

      '과정 가치'도 이미 일부분 반영이 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중국 정부 이슈로 중단된 하이난그룹 거래의 경우 수익이 없었음에도 해당 실무자들의 인사 고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대형 증권사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은 곳은 한국투자증권이다. 그간 꾸준한 성과를 내왔지만 IB부문의 맏형인 정일문 대표가 사장으로 취임해 IB부문을 직속으로 관리하게 된 것 이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 본부장·부서장급 인사들이 대부분 연말 연초 인사에서 유임됐다. 수수료 점유율 등 실적·성과 위주 내부 평가 지표에도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