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성ㆍ전문성ㆍ차별성…산업은행 AMC의 세가지 과제
입력 2019.04.10 07:00|수정 2019.04.11 16:38
    별도 자회사 설립해 구조조정 비효율성 제거 목적
    기업 관리 역량 제고, 민간 자본 유치 등 장점 기대
    독립성·전문성 보장 없인 ‘부실 처리’ 통로 그칠 수도
    유암코·성장금융 등과 유사…’자리’ 이상의 역할 필요
    •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자회사(가칭 KDB AMC)가 실효를 거두려면 충족해야 할 요소가 많을 전망이다. 기능을 형식적으로 분리하는 데 그치거나 전문성 없는 인사들이 자리를 차지한다면 기존 구조조정 실패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 망가진 회사를 손쉽게 처리하는 꼬리자르기 창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연합자산관리(유암코) 등과 영역 중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도 과제로 거론된다.

      산업은행은 작년 말부터 KDB AMC 설립을 추진해 왔다. 기업금융부문에서 설립 작업을 맡고 있으며 오는 9월 설립을 완료할 예정이다. KDB AMC는 산업은행의 100% 자회사가 된다. 산업은행은 다른 법인의 의결권 주식을 15% 초과해서 취득할 수 없지만, 금융위원회가 승인한 경우는 예외다.

      산업은행은 그간 다양한 기업을 직접 혹은 사모펀드(PEF)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영해왔다. 끝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외풍이 이어지며 기업 가치가 추락했고, 공적 자금이 들어가는 동안 도덕적 해이도 많았다. 산업은행 스스로 ‘산업 비전문가’를 자처하는 처지가 됐다.

      KDB AMC는 이런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년부터 검토되기 시작했다.

      별도의 구조조정 회사를 세우면 산업은행은 ‘구조조정’에 치우쳤던 인식을 벗고 ‘4차 산업혁명’ 지원 등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다. 투자와 관리가 분리되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부실 기업을 바라보게 된다.

      크게는 KDB AMC가 모(母)펀드의 운용사(GP)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산업은행은 관리 책임자에서 자금을 대는 출자자(LP)가 돼 부담을 덜게 된다. 재무적인 분야는 산업은행이, 산업적인 분야는 AMC가 맡는 식이다.

      지금까지는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졌다면, 앞으로는 돈을 더 집어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시장 자금을 유치하는 것도 보다 수월해질 전망이다. 사명 역시 PEF 운용사를 떠올릴 수 있는 이름으로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DB AMC는 산업은행이 관리하던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의 기업들을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리 기업을 AMC로 이관했을 때의 영향도 검토하고 있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KDB생명처럼 금융 관점에서 관리해야 하는 기업보다는 대우건설이나 최근 출자전환을 단행한 한진중공업, 매각 상황에 따라 동부제철 등 중후장대 기업 정도가 잠재 관리 대상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전문성을 높이고, 신산업 육성에 힘을 쏟겠다는 산업은행의 청사진 자체는 일단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당국은 물론 정부 여당에서도 AMC 설립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계획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선 먼저 갖춰야 할 것들이 많다는 지적도 많다.

      우선 KDB AMC는 산업은행과 별도 법인이지만 얼마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완전 자회사이고 이대현 전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이 수장으로 내정돼 있다. 기존 기업을 관리하던 산업은행 인력들의 참여도 불가피하다. 산업은행과 궤를 맞춰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반대로는 산업은행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려울 수도 있다.

      KDB AMC 입장에선 단순히 산업은행이 정해주는 기업들을 받아주는 이상의 역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AMC가 기업 관리 말미에 새 투자자나 주인을 찾지 못하고, 산업은행도 출자자로서 역할을 다하지 않기로 한다면 기업의 회생은 어려워진다. 경우에 따라선 산업은행이 골칫거리 기업을 손쉽게 ‘꼬리 자르기’하는 창구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런 결과를 막기 위해선 KDB AMC가 관리하는 동안 기업 가치도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기업 회생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기업을 관리할 전문적 역량이 필수다.

      산업은행은 그 동안에도 여러 대형 기업에서 산업전문가를 CEO로 앉혔지만 쏠쏠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산업은행이나 외부의 입김이 강했고, 내부 장악도 쉽지 않았다. 노조가 강한 기업들은 사사건건 목소리를 높였다.

      KDB AMC엔 산업은행의 영향력에 좌우되지 않는 산업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래야 ‘대마불사’로 대변되는 도덕적 해이를 줄이고 기업 가치도 끌어 올릴 수 있다.

      여기에 KDB AMC만의 독자적 색채를 갖추는 것도 과제다.

      구조조정 기관이 GP 역할을 하면서 시장과 접점을 찾는 구조조정 방식은 큰 틀에서 유암코, 한국성장금융의 기업구조혁신펀드 등과 유사성을 갖는다. 정부는 KDB AMC와 유사한 성격의 ‘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을 추진했으나 2015년 백지화하고 유암코의 기능을 확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시장 주도 구조조정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구조혁신펀드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지금이야 정상기업이냐 한계기업이냐, 완전한 민간 영역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구조조정 주도 기관의 성격이 갈린다. 그러나 앞으로 KDB AMC가 산업은행 관리 회사를 넘어 민간 구조조정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 영역이 상당 부분 겹칠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019년 업무계획’을 통해 상시적·선제적 기업구조조정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암코의 구조조정 분야 공동투자를 강화하고, 기업구조혁신펀드도 확대 운용하기로 했다. KDB AMC의 역할과 중복될 가능성이 크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KDB AMC의 설립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그 역할은 원래는 이미 만들어진 한국성장금융에서 해야 하는 것들”이라며 “기존 구조조정 기관들과 차별성을 갖추지 못하면 고위직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