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 사라진 IPO시장…증권사 너도나도 ‘고밸류 경쟁’
입력 2019.04.23 07:00|수정 2019.04.22 18:32
    지난해 이어 올해도 대형 IPO 철회·연기 이어져
    증권사 '대어 잡아라'... 경쟁적 고밸류 제시에 우려↑
    • “안그래도 IPO시장에서 좀처럼 '빅 딜'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대어'다 싶으면 증권사들이 상장 주관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몸값을 높게 부르고  있는거죠" (증권사 관계자)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IPO(기업공개) 시장 침체로 ‘대어’를 잡기 위한 증권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증권사들이 상장을 준비중인 '잠재적 대어'에  너도나도 높은 몸값을 제시해 과열 경쟁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코스닥에 상장한 에코프로비엠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상장 밸류 1조원이 넘는 딜이 나오지 않고 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증권사들의 ‘빅 딜’ 주관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콘텐츠·바이오 등 정확한 미래 가치를 산정하기 어려운 기업들에는 시장 예상보다 높은 몸값을 제시하고 있다.

      이달 초 SK바이오팜이 연내 증시 입성 준비에 착수했다. 오랜만의 ‘대기업 바이오 계열사’의 주관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거셌다. 일부 증권사는 SK바이오팜의 기업가치를 9조원 이상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SK바이오팜의 기업가치 증권가 컨센서스는 4조~5조원 수준이었다. 이에 공모 돌입 시 SK바이오팜의 치솟은 눈높이가 시장의 눈높이와 조율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온다.

      상장 주관사 선정 중인 카카오페이지도 비슷한 상황이다. 카카오페이지는 이달 초 주관사 선정을 위한 PT(프레젠테이션)를 실시했다. 숏리스트(예비 적격후보) 없이 입찰제안서를 낸 증권사 6곳 모두가 PT에 참여했다. 이에 경쟁은 한층 더 치열했다는 후문이다. 카카오페이지는 1조5000억원 수준의 상장 밸류를 입찰제안요청서(RFP)에 제시했으나 증권사들은 이를 훨씬 넘는 몸값을 제시했다. 상장 시기를 내년으로 잡고 상장 밸류를 2~3조원, 많게는 4조원 가깝게 책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부터 수익 창출이 본격화된다는 가정을 고려해도 상당히 높은 밸류가 제시됐다는 평가다. 카카오페이지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1875억원, 125억원으로 추산된다. 웹툰·웹소설 등을 유통하는 ‘콘텐츠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는 콘텐츠IP(지적재산권)의 확장성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다만 상장 밸류 비교에서 동종 국내 기업을 찾기 어렵다 보니 '몸값 부풀리기'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다.

      연내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국내 게임개발업체 스마일게이트의 자회사 스마일게이트RPG도 마찬가지다. 스마일게이트RPG는 최근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을 숏리스트로 선정하고 PT 과정을 진행 중이다. 시장에서는 상장밸류가  2~3조원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RPG의 지난해 매출은 332억원, 영업손실은 253억원이다. 전년에 비해 매출(35억원)이 10배 정도 늘어나며 급성장했다. 올해 순이익은 최소 500억원 정도가 예상되는 등 올해부터 큰 폭의 성장이 전망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로스트아크'의 PC방 기준 게임 점유율이 지난해 11월 출시 이후  15%까지 올랐지만 이달 기준  3%대로 떨어지면서 장기 흥행 유지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로스트아크는 현재 유일한 수익원이다.

      이처럼 증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진 데는 지난해 유난히 부진했던 IPO시장 영향이 크다. 지난해 IPO시장 공모 금액 규모는 약 2조6000억원으로 5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형 IPO의 부재가 컸다. 지난해 상장한 회사들 중 87.0%(67사)는 IPO 규모가 500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상장 회사의 수는 오히려 늘었지만 코스닥 중심의 증가였다. 지난해 스팩·리츠·코넥스 상장을 제외한 상장 회사 수는 코스피 7개, 코스닥 70개 등 총 77개로 전년 대비 15개 늘어났다.

      지난해 SK루브리컨츠, 카카오게임즈 등 조 단위 공모 규모가 예상되던 대형 IPO가 연이어 연기되거나 철회됐다. 올해 들어서도 IPO시장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잇따른 ‘대어’들의 상장 철회·연기가 이어지면서 시장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대 기대주던 현대오일뱅크도 사실상 IPO가 무기한 연기됐다. 교보생명의 IPO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초대형 공모리츠로 관심을 모았던 홈플러스리츠도 부진한 수요예측으로 상장이 무산됐다. 상반기 상장이 예정됐던 바디프랜드도 계속 상장 예비심사 결과가 늦어지고 있다. 최근엔 이랜드리테일마저 상장 포기를 공식화했다.

      IPO 업계 관계자는 "특히 카카오페이지나 스마일게이트RPG처럼 비교대상이 애매한 기업들은 에쿼티 스토리를 만드는 데 있어서 주관사들의 ‘아이디어 싸움’이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일 수밖에 없다”며  “현재 IPO시장의 '대어 부재'와 더불어 상장을 준비중인 기업들에 대한 '고밸류 논란'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결국에는 시장에서 결정이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