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어드' 너마저…신약 개발사 한계 못넘어
입력 2019.04.26 07:00|수정 2019.04.29 12:36
    코오롱티슈진·SK바이오팜 등 길리어드 성장 참고
    10대 제약사 길리어드, 지난해 매출 큰 폭 감소
    주력 약품 경쟁 심화하고 신약물질 출시 불투명
    '자전거처럼 멈추면 쓰러져'...국내 바이오에도 교훈
    •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한다→상장을 통해 출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다→신약이 출시되고 현금이 쌓인다→후속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에 투자를 더한다→ 인수합병(M&A)을 통해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충한다→지속적인 신약 출시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세계 9위 제약사이자 시가총액 900억달러(약 100조원)의 '나스닥 바이오 대장주'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성장 스토리다. 코오롱티슈진, SK바이오팜 등 국내 신약 개발 바이오 기업의 '롤 모델'과도 같은 존재다.

      이런 길리어드가 지난해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내놨다. 페달이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와 비슷한  '신약 개발 전문 바이오회사'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코오롱티슈진과 SK바이오팜의 미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다.

      길리어드는 지난해 221억달러(약 25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17년 261억달러 대비 15%나 줄어든 것이다. 세계 10대 제약사 중 지난해 매출이 줄어든 건 사노피와 길리어드 두 곳이고, 특히 두 자릿 수 매출 감소는 길리어드 뿐이다.

      주력 제품군 중 앱클루사, 하보니 등 C형간염 치료제와 B형간염 치료제인 비리어드의 매출이 크게 줄어든 게 결정타였다. 난치 질환이던 C형간염이 앱클루사 등의 출시를 계기로 완치가 가능한 병이 된데다, 경쟁 약품이 속속 시장에 진입하며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길리어드는 현 주력 제품군의 매출 감소를 타개하기 위한 신약 파이프라인으로 '셀론서팁'에 집중하고 있었다. 셀론서팁은 지금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던 비알콜성지방간염에 작용하는 첫 신약 후보 물질이었다.

      문제는 지난 2월, 글로벌 임상 3상 결과 셀론서팁의 증상 개선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9년 신약 허가를 받고, 2020년 셀론서팁을 출시해 다시 한번 성장하려 했던 길리어드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실망감은 곧바로 주가에 반영됐다. 길리어드의 시가총액은 2016년 1800억달러(약 200조원)에서 반 토막 났다. 연초 이후에만도 10% 하락했다. 길리어드는 배당을 늘리고 30조원에 달하는 내부 현금을 활용해 'M&A에 집중하겠다'며 주주들을 달랬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길리어드는 자체 개발한 혁신 신약을 바탕으로 드라마틱한 성장을 일궈냈다는 점에서 국내 신약 개발 바이오 기업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왔다. SK그룹은 최근 연구원 대상 설명회에서 'SK바이오팜은 길리어드의 성장모델을 추구한다'며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길리어드의 사례는 코오롱티슈진이나 SK바이오팜 등에 투자할 때 어떤 상황을 우려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길리어드조차 업종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약은 빠르면 출시 4~5년 뒤부터 매출이 줄어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다른 신약이 필요하다. 파이프라인의 중요성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기준, 신약 후보물질 중 임상 3상을 마치고 출시 허가를 받는 비율이 9.7%로 극히 낮음을 감안하면 다양한 파이프라인 확보는 지속 성장의 필수요건이다.

      코오롱티슈진의 경우 '인보사'에 집중된 파이프라인이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인보사가 최근 이슈에 휘말리며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평가다. SK바이오팜은 임상 1~2상 단계의 신약 후보물질 5종이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최대 2조원의 평가를 받았는데, 파이프라인의 다양성 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매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M&A 역량도 중요한 요소다. 길리어드의 캐시카우 중 하나였던 C형간염 치료제 '소발디'는 길리어드가 2011년 인수한 '파마셋'이 개발하던 약품이었다. 길리어드는 이후 파마셋의 신약에 자사의 치료물질을 결합해 신약 '하보니'를 내놨다.

      코오롱티슈진, SK바이오팜 등 국내 신약 개발 바이오 회사들은 아직 적극적으로 M&A에 나설만큼 내부 현금을 쌓지 못했다. 다만 잠재적으로 지주회사 리스크가 거론된다. 이들은 계열회사 외 주식 보유를 금지한 공정거래법에 따라 자회사 편입 이외의 지분투자는 하지 못한다. 국내 계열사인 SK바이오팜의 경우 원칙적으로 손자회사(SK㈜의 증손자회사) 보유도 금지된다.

      한 증권사 바이오 담당 연구원은 "신약 개발 바이오는 끊임없이 신약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이를 출시해 성장을 지속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연구가 투자가 필요하다"며 "장기간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대기업 계열사가 일정부분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인만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