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ELS·리츠...단기·중위험 상품에 쏠리는 시중자금
입력 2019.06.19 07:00|수정 2019.06.20 09:30
    단기 부동자금·증시 주변자금 등 사상 최대 수준
    ELS발행 2015년 넘어서고 PB채널서 리츠에 관심 집중
    저금리 틈타 증권사 발행어음도 각광...단기·중위험 쏠림 뚜렷
    • 지난 1분기말 기준 국내 예금은행 요구불예금 잔액은 204조원, 1년 미만 정기예금 잔액은 247조원으로 나란히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 4월 국내 주식연계증권(ELS) 신규 발행액은 9조5000억원으로 2015년 '홍콩H지수 사태' 직전 최고치를 뛰어넘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턴 ELS에 큰 관심이 없던 연기금·공제회 자금까지 조 단위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일선 프라이빗뱅커(PB) 창구에서는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에 대한 투자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국내 투자 시장은 전체적으로 관망세를 보이는 가운데 단기·중위험 상품에 대한 쏠림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가지수·대외 변동성에 단기적으로 휘둘리는 가운데 리스크 온(위험부담)도, 리스크 오프(위험회피)도 택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든 트렌드라는 분석이다.

      가장 눈에 띄는 금융상품 중 하나는 ELS다. 2015년 홍콩H지수 사태 이후 70조원에서 55조원선까지 급감했던 ELS 발행잔액(원금보장형 ELB 포함)은 4월말 기준 73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수요가 꾸준한데다, 기관의 수요까지 더해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우정사업본부와 행정공제회, 노란우산공제회 등 일부 연기금이 국내 ELS 투자를 시작해 현재 2조9000억원 안팎의 자금을 집행했다. '시중금리+알파'의 수익을 큰 비용 없이 추구할 수 있는데다 해외 주요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 많다는 점에서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도 노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LS는 2015년 큰 위기를 겪으며 '저물어가는 상품'으로 꼽혔다. 주요 증권사들도 '포스트 ELS'를 발굴하기 위해 잇따라 신상품 개발에 나섰다. 그러나 결론은 '도로 ELS'였다. 조기상환 주기를 '매 6개월 마다'에서 '최소 4개월 이후 매 1개월 마다'로 크게 줄이고, 손실이 발생하는 녹인(Knock-In) 구간을 더 낮춘 신상품이 출시되며 이탈하던 자금을 다시 끌어모은 것이다.

      한 대형증권사 전략담당 임원은 "ELS의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단기+고수익을 추구하는 국내 투자자들의 성향에 ELS보다 더 잘 어울리는 상품이 없었다"라며 "원금보장형 상품(ELB)엔 큰 반응이 없었지만, 최소 조기상환 주기를 4개월로 앞당긴 상품엔 투자자들이 열광했다"고 말했다.

      ELS의 재림엔 '금융회사의 사정'도 큰 몫을 했다. 국내 증시가 변동성에 시달린 지난해와 올해 1분기 국내 증권사들이 기대 이상의 호실적을 낸 것도 ELS를 통한 금융상품 수수료와 이를 자체 운용하면서 거둬들인 운용수익 덕분이었다. 연간 천억대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을 아무도 선뜻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국내 증권사들이 ELS를 비롯한 파생결합상품 운용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연간 7000억원에 달한다. 1분기에도 2000억원에 가까운 운용 수익이 난 것으로 전해졌다. 운용수익이 곧바로 회사에 귀속되는 '자체 헤지' 규모는 지난해 말 57조7000억원으로 2017년말 대비 26%나 증가했다. 이중 41조원이 ELS 관련 자산이다.

      일선 은행 창구에서도 금융상품 영업 수익의 상당부분을 ELS에 의존하고 있다. 초저금리로 인해 권유할만한 예·적금 상품이 한정되고, 저축성 보험 상품의 인기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남은 건 4개월마다 조기상환-재투자로 이른바 '수수료 돌려먹기'를 할 수 있는 ELS 정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은행 신탁으로 판매된 ELS 상품의 비중은 53.4%, 50조원으로 전년대비 3.1%포인트, 6조5000억원 증가했다.

      리츠 및 인프라펀드의 부활도 주목할만한 요소다. 2016년부터 2017년 대세 상승장에서는 완벽하게 소외돼 일부 기관과 외국인만이 투자하는 상품이었지만, 지난해 급락장을 거치며 '효자 상품'으로 재조명받은 것이다.

      한 대형증권사 PB는 "일선 창구에서 ELS 다음으로 문의가 많은 상품이 리츠"라며 "최근엔 안정적인 금리 정책과 도쿄올림픽 개발 수혜가 기대되는 일본 리츠상품에 대한 문의도 상당히 늘어난 편이다"라고 말했다.

      리츠가 주목받는 배경으로는 연간 6~7% 수준의 안정적인 배당 수익과 급락장에서의 주가 방어력이 꼽힌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약세장에서도 주요 리츠 및 인프라펀드의 주가는 비교적 탄탄한 우상향 곡선을 유지했다. 1년 전인 6월1일을 기준가격으로 한 주가 상승률은 20~30%에 달한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15.3%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상대수익률이 플러스 35~50%에 가깝다.

      지난해 주주행동주의 펀드와 경영권 분쟁을 겪은 뒤 주주 친화 방안을 내놓은 맥쿼리인프라의 경우 1년간 주가 상승률이 33%에 달했다. 시가 대비 6% 안팎의 배당수익률도 유지됐다. 연초 이후 주로 투신과 은행 창구에서 순매수 주문이 나왔는데, 일부 PB채널을 통해 사모 신탁 자금이 유입됐다는 후문이다.

      리츠와 비슷하게 해외 오피스 등 임대수익이 나오는 부동산을 구조화해 연 5~9%의 배당을 받도록 만든 해외부동산상품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 국내엔 개인이 투자할만한 부동산 관련 금융상품이 많지 않은데다, 수익률도 시중 금리와 비교해 높은 까닭이다.

      임대료 수익 등을 3개월마다 한번씩 정산해 배당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일정한 현금흐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투자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금융회사가 공실 등 자신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일반투자자들에게 셀다운(sell-down)을 통해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금융투자사업자(IB) 들이 내놓은 발행어음 상품도 저금리 시대 단기 상품 수요를 파고들었다는 평가다. 국내 세 번째로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KB증권이 지난 3일 내놓은 발행어음은 판매 하루만에 1차 판매목표치 5000억원이 완판됐다.

      4월말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수신잔고는 5조4000억원, NH투자증권은 3조3000억원이다. KB증권 발행액까지 합치면 국내 발행어음 잔고는 10조원에 육박한다. 연말에는 1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발행어음은 적금처럼 적립식으로 투자할 경우 최대 연 3.5%(한국투자증권 외화형)의 금리를 보장해준다. 신규고객 유치를 위한 일부 특판 상품 금리는 연 5%에 달한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1%대 후반에서 2% 수준이고, 저축은행조차 12개월 예금 평균 금리가 2.3% 안팎에 그치는 점을 고려하면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가에서는 최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파생상품시장 발전 방안에 주목하고 있다. 파생시장은 2011년 일부 증권사와 초단기투자자가 결탁한 '주식워런트증권(ELW) 사태' 이후 규제가 크게 강화하며 사실상 외국인투자자의 전유물로 바뀐 상황이었다.

      금융위는 현행 최저 2000만원인 개인투자자 기본 예탁금을 1000만원으로 낮추고, 총 80시간의 사전교육 및 모의거래 이수 시간을 총 4시간으로 크게 줄이기로 했다. 파생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투자자 풀(pool)이 늘어나는만큼 ELW 등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신규 투자자의 진입장벽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예탁금 인하 수준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국내 파생상품시장 거래활성화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