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형' 자본시장, 공모주 시장 침체·빅딜 실종
입력 2019.07.04 07:00|수정 2019.07.05 09:41
    코스닥 상장사 자금조달 난항...회계법인은 활기
    증자 결의에도 투자자 유치 실패로 증자 철회해

    '불황형 비즈니스' 회계·법무법인
    최대 실적 기록에 승진 인사까지
    • 국내 자본시장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경기 둔화로 인한 후폭풍이 자본시장의 움직임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도, 플레이어들도 모두 절박해졌다는 평가다.

      경기 침체의 여파를 온 몸으로 맞고 있는 코스닥 일부 상장사들은 생존을 위한 잇따라 유상증자에 나서고 있다. 그나마도 투자자 유치에 실패해 철회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공모주 시장은 침체하고, 불황의 척도로 꼽히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상장이 늘어나고 있다.

      그 와중에 대표적인 '불황형 비즈니스'로 꼽히는 회계법인들은 일제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대규모 승진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법무법인들도 기업회생 관련 조직 확대에 나섰다.

      올해 2분기 국내 코스닥 상장사의 유상증자 발행 공시 수는 총 126건이었다. 지난해 2분기와 비교하면 28%, 2017년 2분기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발행 목적은 90% 이상 부채 상환 혹은 중간재 대금 납부 등 운영자금 조달 목적이었다.

      지분율을 희석해 조달한 자금으로 일상적인 경영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 침체 국면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자본시장의 모습이다. 지난 2008년에도, 2011년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자금력이 충분한 대기업과는 달리 주로 코스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중소기업들은 전방산업의 경기 악화에 취약하다.

      코스닥 상장사들의 어려움은 이미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코스닥 상장사 910곳의 총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1분기 대비 1400억원, 7.8% 줄었다. 1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대비 8.36% 늘며 110%를 돌파했다. 코스닥 매출 상위 20대 기업의 영업활동 현금 흐름은 같은 기간 26.7% 감소했다.

      조달에 나선다고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비츠로시스·매직마이크로·유테크 등 10여 곳의 기업이 총 1500억여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가 투자자를 확보치 못해 증자를 철회하거나 미발행 처리했다.

      한 증권사 ECM 담당 실무자는 "제3자배정 증자는 보통 투자자를 확보한 후 이사회 결의와 공시를 진행하는데 이런 거래까지 깨진다는 건 상황이 정말로 좋지 않다는 것"이라며 "적자가 누적되거나 부채비율이 높아진 코스닥 기업들의 자금 조달 문의가 늘어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 공모주 시장 침체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상장도 급증하고 있다. 스팩은 일단 깨끗한 쉘(shell;합병목적물)을 먼저 상장하고, 비상장사를 합병해 우회상장 시키는 제도로 직접 공모의 대체재 성격을 갖는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이미 11곳의 스팩이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고, 이중 10곳은 상장했거나 공모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배에 달한다. 지난 20일엔 미래에셋대우가 2014년 이후 무려 5년만에 '제3호' 스팩을 결성해 상장예심을 청구했다.

      지난해 상장한 스팩은 총 20곳이었다. 이 중 절반인 10곳이 연말인 11~12월에 상장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업공개(IPO) 시장이 뚜렷한 침체 국면을 보이자 반대 급부로 스팩 상장이 늘어난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연말까지 최대 30곳 이상의 스팩이 상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증권사 1스팩' 원칙이 폐지된 2015년 이후 한 해에 30곳 이상의 스팩이 상장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한 대형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정부가 상장 문턱을 낮추며 적자를 내고 있는 '혁신·벤처기업'들의 상장 문의는 늘어났지만, 경기 둔화로 인해 막상 견실히 이익을 내고있는 강소기업은 찾기가 어려워졌다"며 "대기업 계열사는 만족할만한 밸류에이션을 끌어낼 수 없는 하락장에서는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어 올해 '대어' 상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거래를 수주해야 하는 투자은행(IB)들의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예전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거래에 달려들어 경합하는 모습도 관측된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한화생명보험 지분 매각 주관사 선정에 복수의 국내외 증권사들이 출사표를 던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화생명의 최근 주가는 3000원대 초반으로 예보의 최초 취득가의 4분의 1 수준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 0.24배로 거래 시기 조율이 쉽지 않은 거래로 손꼽힌다.

      이 때문에 2년전 주관사 선정에선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2년새 매각 환경은 더욱 나빠졌지만, 그 사이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절박함이 더 커진 것이다.

      웅진그룹이 인수한 지 3개월만에 다시 매물로 나온 웅진코웨이를 두고서도 벌써부터 물 밑 경쟁이 치열하다. 인수합병(M&A) 자문 조직이 있는 국내외 주요 증권사는 거의 대부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이는 상반기 M&A 시장이 기록적인 침체를 보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수주한 거래를 어떻게든 밀어붙여 마무리를 지으려는 모습도 관측된다. 거래 시작 초기 부정적인 시각이 많던 롯데그룹 금융계열사 거래를 흥행시킨 씨티가 대표적이다.

      불황에 오히려 활짝 웃는 부문도 있다. 주요 회계법인들은 지난 사업연도에 일제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파트너 승진 인사를 단행한 삼정회계법인은 올해에도 역대 최대 규모 파트너 승진 인사를 발표했다. 10명이 부대표로, 13명이 전무로 승진했다. 삼일회계법인은 23명, 안진회계법인도 19명의 신규 파트너를 임명했다.

      전통적으로 회계법인은 경기 축소기에 좋은 실적을 내왔다. 여기에 지난해 신(新)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회계법인 교체가 잦아지고 감사인의 입김이 세지며 감사 수익이 늘어나는 효과도 봤다는 분석이다.

      법무법인 역시 기업파산·회생 관련 조직을 키우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7년 878건이었던 기업회생 신청은 지난해 980건을 기록했고, 올해도 5월까지 409건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 371건 대비 10%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법인파산 신청 역시 328건에서 397건으로 급증했다. 최근엔 회생 부문을 확장하기 위한 중견·중소 로펌간 합종연횡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