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 선호하는 IPO부…가성비 따라 '주 수익원' 이동
입력 2019.07.09 07:00|수정 2019.07.10 13:46
    한국투자증권, ECM 내 PI 수익 비중 60% 이상
    업계 톱티어 NH투자증권도 비상장사 CB 등 인수
    수수료 기반 수익원 한계…투자 통한 수익 창출 불가피
    IPO 대표주관 수임 어려운 중소형사도 PI로 선회
    • 기업공개(IPO)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주식자본시장(ECM) 부문의 자기자본투자(PI)가 활발해지고 있다. 대형사는 ECM 본부 내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상황이며, 중소형사도 관련 인력을 보강하는 등 저마다 PI에 적극적이다.

      지난해부터 다수의 대어급 IPO 딜이 철회하면서 증권사들의 PI 비중이 더 늘어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상장 주관사가 취할 수 있는 수수료에 비해 비상장기업 투자가 차지하는 수수료 비중도 점차 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기존 상장사 IPO 수수료는 증권사간 경쟁으로 1~2%대로 결정되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다. 통상 대표주관 계약부터 상장까지 짧으면 10개월에서 길면 2년가량의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주관계약은 ‘남는 게 없는’, 가성비 떨어지는 장사인 셈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 IB1본부(ECM 담당)의 경우 올해 PI 수익이 전체 본부 목표치의 60%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실적목표의 60%가량을 PI로 거둬들인 바 있다. 지난 2015년의 경우 IPO 부문 수수료와 프리IPO, 의무 인수분에서 발생하는 기타 수익이 절반씩 차지하기도 했다.

      ‘IPO 3강(强)’으로 불리는 한국투자증권 마저도 PI가 차지하는 수익 비중이 더 늘어나는 상황이라, 증권사 ECM 본부 내 PI 비중 확대는 불가피한 흐름일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게다가 업계 톱티어(Top-tier)인 NH투자증권도 발행어음 금리보다 만기 이자율이 높으면서 주가 상승 여력이 있는 기업의 전환사채(CB)를 인수해 향후 엑시트하는 방식으로 PI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초기 기업 위주에 투자하며 10배 이상 수익을 목표로 하는 벤처캐피탈(VC) 등과 달리 향후 1~2년 내에 상장이 가능한 종목이 주요 대상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신한은행이 채권자로 있는 기업 등에 전통 기업금융 업무 외에 프리IPO(Pre-IPO) 등을 나서며 그룹 전체의 시너지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KB증권도 최근 메자닌 투자 및 PI 등을 담당하는 ECM 인력을 흡수해 관련 업무 보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소형사인 하이투자증권 역시 최근 KTB투자증권에서 ECM 본부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기존 1개 팀으로 운영하던 IPO팀을 3개의 팀으로 늘리고 ECM부도 ‘ECM실’로 승격했다. IPO 외에 비상장사 주식 및 메자닌 투자에 활발히 나서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으로 초기에는 증권사 IB에서 비상장주를 일부 투자하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ECM 본부의 수익성 유지 일환으로 더욱 활용되는 분위기라는 진단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증권사의 프리IPO 참여는 수익성과 성장성 등이 확실한 경우에 한해서 투자자들이 ‘향후 몇 년 내에 상장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상장 시 증권사가 다시 지분을 매각하는 조건으로 투자한다”며 “발행사가 약속 기간 내에 상장하지 않을 경우 해당 증권사로부터 매각한 지분을 되사들여야 할 의무(put-option)를 지니는 게 일반적이라, 어느 정도 투자 리스크를 보완해서 투자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IPO부서 PI 투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2013년 유진투자증권의 엑세스바이오 상장이다. 당시 유진투자증권은 상장 전 투자(Pre-IPO) 방식으로 지분을 미리 확보한 뒤, 상장 후 매각을 통해 60억원이 넘는 차익을 남겼다. 8억원 수준의 상장 주관 수수료를 합치면 이 1건으로만 70억원의 수익을 낸 셈이다.

      이후 IPO부서의 수익원으로 PI 투자가 조명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초대형IB 도입 이후 자기자본수익률(ROE)를 높이기 위해 대형사들이 상당수 주관계약 체결 기업에 PI를 집행했다. 이렇게 뿌려둔 씨앗이 2017년을 전후한 공모주 활황 때 대규모 수익으로 돌아오며 사업부 내 비중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인수단에 낄 기회 조차 얻지 못하는 중소형증권사들의 PI 확장 행보 역시 비상장기업 투자를 늘리게 만드는 분위기다. IPO뿐만 아니라 유상증자 등을 통한 수수료 기반 수익성 회복이 쉽지 않아, 기존 IPO 인력의 전문성을 활용한 비상장기업 투자라도 늘리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다.

      올 상반기(6월말 기준) IPO 리그테이블 주관사(스팩 제외)에 이름을 올린 증권사는 8개사가 전부였다. 또한 상장일 기준으로 성사된 IPO 거래는 20건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선 중소형증권사의 ECM 본부 내 PI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본래 증권사 IPO 부서는 유망 기업을 발굴하고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비상장기업을 그만큼 잘 분석할 수밖에 없다”며 “중소형증권사 입장에선 IPO 주관사단에 이름을 올리는 욕심만 내려놓는다면 오히려 직접 투자를 통해 수익성 제고에는 더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비상장 PI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 사례 역시 회자되는 게 현실이다. 엑세스바이오 IPO로 기세를 올린 유진투자증권은 2015년 네이처리퍼블릭에 상장 전 투자 130억원을 집행했다. 자기자본만 50억원이 들어갔다. 투자 집행 직후 네이처리퍼블릭은 실적 악화와 최고경영자의 해외 불법 원정 도박과 에 연루됐고, 현재까지도 상장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