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합병?"…커머스업계에 다시 회자하는 '11번가'
입력 2019.08.01 07:00|수정 2019.08.02 09:14
    11번가 두고 고민 시작한 SKT…"키우기도 방치하기도 애매"
    SKT 멤버십 강화엔 커머스 사업 필수…적자 둘러싼 주주반발도
    유통업계 11번가·쿠팡 합병설 회자…SKT는 주요주주로
    "양사 기업가치 눈높이 고려할때 합의 어려울 것" 전망도
    • 11번가가 다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자본잠식을 앞 둔 상황에서 외부 자금을 수혈해 급한 불은 껐지만, 정작 SK텔레콤의 고민은 진행형이다. 이커머스 분야의 중요성은 인식하면서도 다시 뭉칫돈을 쏟으며 치킨게임에 합류하는 덴 부담이 큰 점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 같은 SKT의 고민을 반영해 11번가 주도의 이커머스 간 합종연횡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매년 조단위 적자에도 빠르게 사업 영역을 확장해 온 쿠팡과의 합병설이 대표적이다.

      유통 업계에선 11번가와 쿠팡 간 합병 시나리오가 회자하고 있다. 실제 SKT 내부에서도 초기 아이디어 단계 차원이지만 이커머스 업체들의 연합체 구성을 두고 일부 관계자들의 자문을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합종연횡설 배경으론 SKT 내 플랫폼 전략이 거론된다. SKT는 아마존의 멤버십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을 벤치마킹해 그룹 ICT 전략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호 SKT 사장은 지난해 스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도 "콘텐츠에 투자하고 구독자 모델을 더 고도화 해,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 같은 서비스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해오기도 했다.

      그간 SKT는 잇따른 M&A 및 신사업 투자 등을 통해 OTT(웨이브)·유료방송(SK브로드밴드)·보안(ADT캡스)·음원서비스(FLO) 등 통신업과 연계된 사업군을 꾸준히 늘려왔다. 어느정도 규모의 경제를 갖추며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커머스(11번가) 분야가 약한 고리로 평가됐다.

      11번가는 누적된 적자로 자본 잠식 위기에까지 몰렸지만, 지난해 H&Q와 국민연금 등으로부터 5000억원을 유치해 급한 불을껐다. 이후 점유율 확대 대신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목표로 사업 목표를 전환해, 마케팅 비용 등을 대폭 줄여왔다. 이로 인해 재무안정성은 점차 개선됐지만, 매년 1조원대 적자를 감수하면서 점유율을 키워온 쿠팡이 점점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상황이다.

    • SKT 입장에서도 투자자들과의 계약에 따라 오는 2022년까지 11번가를 상장(IPO)하거나 투자자 지분을 되사줘야 한다. 아직 4년여 시간이 남았지만 치킨게임에서 밀려날 경우 상장 가능성도 덩달아 떨어지게 된다. 투자금을 돌려주며 지분을 회수하더라도 뚜렷한 처리 방안을 마련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시 11번가를 직접 챙기며 지원에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적자 사업에 돈을 쏟는다는 이유로 매년 투자자들의 불만에 직면해왔기 때문이다.

      한 유통담당 애널리스트는 “쿠팡이 존재감을 키우는걸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지만 지난해 투자자 특히 국민연금을 모셔오다보니 수익성도 놓칠 수 없어 11번가 내부 상황도 혼란스러운 것으로 알고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쿠팡과의 합병에서 해법을 찾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KT가 꼭 경영권을 쥐지 않더라도 사내 플랫폼 생태계로 쿠팡을 합류시켜 시너지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마존 프라임 모델처럼 SKT 가입자의 멤버십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의 방안이 대표적이다. 재무적으로도 SKT가 직접 커머스 사업을 자회사로 보유할 경우, 향후 손실이 연결 재무제표에 바로 반영돼 회사의 신용등급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일각에선 SKT가 경영권 지분을 포기하고 주요 주주로 남아 '투자자산'으로 관리하면 해당 위험을 일부 줄일 수 있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SKT 내부에선 아이디어 차원이지만 쿠팡뿐 아니라 이베이코리아 등까지 포괄하는 대규모 M&A를 구상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푹(PooQ)과 옥수수간 합병으로 콘텐츠 연합을 이뤄낸 방식과 유사한 방식이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쿠팡의 올해 시장점유율이 10%에 이르게 된 점을 고려했을 때 G마켓과 이베이를 합치면 20%를 훌쩍 넘고, 11번가까지 합치면 점유율 35%에 달한다"라며 "한국에서도 절대적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유통사업자가 등장해 수익창출 구조가 잡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합병절차로 진행되더라도 양 사간 기업가치 책정에서부터 난관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통업계에서도 쿠팡은 회사 가치로 10조원 이상을, 11번가도 최소 4조원 이상을 자신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통적인 가치 평가 방법으론 사실상 합의에 이르기 불가능한 사업영역이다.

      과거 SKT가 11번가를 두고 신세계·롯데 등과 투자유치 논의를 이어왔지만 결렬된 배경에도 기업가치에 대한 이견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해 H&Q가 5000억원을 투자해 확보한 지분(18.2%)을 고려할 경우 11번가의 기업가치(Value)는 약 2조7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업계에선 향후에도 SKT 측이 해당 기업가치에 동의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