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서 붕괴한 바이오株, 투자-상장 당분간 '올스톱' 불가피
입력 2019.08.06 07:00|수정 2019.08.07 09:51
    '대장주' 신라젠마저 무너지며 신뢰 상실 도미노
    본질적 경쟁력 의심...바이오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자금조달도 상당부분 막힐 듯...9월 반등 가능할까
    • 국내 신약개발 바이오 업체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다. 코오롱티슈진에서 시작해 에이치엘비생명과학을 거쳐 기술특례 대장주로 불리던 신라젠까지 신약 상품화에 암초를 만나며 바이오·업종 헬스케어 전체가 악영향을 받고 있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바이오업체들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으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업공개(IPO)·유상증자·전환사채(CB) 등 바이오 기업의 자금조달도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5일 코스닥 150 생명기술 지수는 장중 2420선까지 급락했다. 전 거래일 대비 무려 260포인트, 10%나 뚝 떨어졌다. 같은 날 코스닥지수 낙폭 5.6% 대비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지난해 1월 역사적 고점과 비교하면 60% 떨어졌다. 특히 최근 3개월 하락폭이 마이너스(-) 39%에 이른다.

      코스닥 바이오 대장주인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최대 7% 떨어진 것을 비롯, 46개 구성종목 대부분이 평균 8% 하락했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투매가 이뤄진 것이다. 이 날 단 하루에만 4조원, 최근 한 달새 9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 올해 상반기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융시장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 코오롱티슈진의 품목 취소 등 이어진 악재에도 이를 단순한 종목 이슈로 치부했다. 연구개발(R&D)비 회계처리 이슈가 부각하자 'R&D 비용을 많이 쓸 수록 성공 확률이 높다'며 역베팅하려는 자금이 쏠리기도 했다.

      2년 가까이 이어져 온 시장의 믿음과 기대감에 찬물을 뿌린 건 바이오업체들 스스로였다. 에이치엘비의 항암 신약 '리보세라닙'이 임상3상 결과 목표치에 부합하지 못하며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장외 바이오 대장주로 꼽히던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업체 비보존은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여기에 신라젠의 신약 '펙사벡' 무용성 논란이 기름을 부었다. 임상3상에서 신약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며 간암에 대한 임상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이미 이전부터 증권가에서는 신라젠의 성공 여부가 바이오 기술특례 상장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을 가를 분기점이라고 분석해왔다. 신라젠은 한때 이른바 'K바이오'의 총아로서 텐베거(ten bagger;10배 수익률을 달성한 주식)의 반열에 올랐던 대장주였던 까닭이다. <관련기사 : 신라젠의 2년前 '약속'…기술특례 상장 인식 가를 2019년(2018. 12. 04)>

      2016년말 상장한 신라젠은 공모 당시 2019년부터 펙사벡이 상품화되며 실적이 크게 호전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2020년엔 연간 1000억원대 순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이 시점의 실적을 4년 앞으로 끌어와 공모가를 산정했다. 약속한 2019년이 절반 넘게 지났지만, 현 상황에서 신라젠의 흑자전환은 그 누구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신라젠 그 자체가 아니라 '청사진을 믿고 신약 상품화를 위해 기다린 2~3년의 시간'에 대해 실망하기 시작했다"며 "시간이 투자자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방식으로 확인되며 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국내 신약 바이오를 지지해오던 논리들은 하나씩 무너져버렸다. 인보사는 국내 식약청의 시판 허가가 품질과 안정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한미약품은 기술수출이 언제든 되돌려질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에이치엘비와 신라젠은 '임상 3상에 가면 신약 상품화 확률이 50%'라는 명제조차 뒤흔들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최근의 이슈들은 국내 바이오 산업이 직면한 본질적인 경쟁력의 문제"라며 "그간 신약과 기업가치를 산출할 때 미국 FDA의 임상 단계별 평균 성공률을 적용했지만, 앞으로는 여기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적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바이오 기업들의 상장 등 자금조달에도 적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오는 10월 글로벌 임상 결과 발표를 앞둔 헬릭스미스가 대표적이다. 헬릭스미스는 유상증자로 1500억원을 조달해 신약 파이프라인의 임상 진행을 위한 비용으로 활용하려 했다.

      공모에서 허용된 최대치인 30%의 할인율을 적용했음에도 불구, 5일 단 하루 동안에만 주가가 17% 급락하며 공모 흥행 가능성에 물음표가 제기되고 있다. 공모가 산정 때만 해도 주당 6만원 가까운 시세차익이 기대됐지만, 5일 기준 기대 차익이 주당 1만3000원으로 크게 줄었다. 헬릭스미스의 신주 상장 예정일은 이달 27일로, 투자자들은 청약 후 3주 가까이 시세 하락에 대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일부 바이오업체는 3분기로 예정했던 상장 공모 일정을 연말이나 내년 초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금 공모 시장에 잘못 명함을 내밀었다간 만족할만한 공모가를 확정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자칫 '공모에 실패한 회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것이 부담되는 까닭이다.

      다만 임상 진행에 따른 자금 소요 스케쥴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미룰 수만은 없다는 점이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CB 발행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하지만, 신라젠에 1100억원 규모 CB를 투자한 키움증권이 어려움에 봉착하며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9월 바이오 반등론'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헬릭스미스의 당뇨병성신경병증 유전자 치료제 'VM202'가 좋은 결과를 내고, 보톡스(보툴리늄 톡신)를 핵심 제품으로 삼고 있는 몇몇 바이오기업의 실적 모멘텀, 올리패스·메드팩토 등 유망 바이오 기업의 상장이 이뤄지며 분위기 전환이 이뤄질 거라는 전망이다.

      낙관적인 전망들이 모두 현실화된다 해도, '온기'가 바이오 전체에 퍼질지는 미지수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미 자본시장에서는 특정 바이오업체의 성공을 '해당 기업의 모멘템'으로 축소해 인식하고, 특정 업체의 실패는 '국내 바이오 모두의 실패'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베링거인겔하임에 1조원 규모 기술수출을 성사시킨 유한양행 역시 5일 5% 가까이 주가가 급락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2000년 닷컴버블은 네이버와 다음(현 카카오), 엔씨소프트를 길러냈다"며 "바이오 역시 거품으로 몰린 자금을 바탕으로 누군가는 시장을 주도할 업체로 성장하겠지만, 현 시점에서 옥석을 가리기는 너무나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