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매각…모호한 원칙론 앞세운 산업은행, 일단은 “몰라요”
입력 2019.09.17 07:00|수정 2019.09.16 20:13
    • 기자들의 질문은 단순했다.

      “예비입찰에 참여하지 않고도 본입찰에 들어갈 수 있는가”

      이동걸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실무진에 맡기고 원칙은 협의를 해서 정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건은 보고하지 말라고 했다. 신문에 난 것을 보고 내용을 안다. 원칙대로 하는 게 맞다. 이유가 있으니깐 비밀을 유지하고 싶은 건 이해한다. 조만간 발표하지 않을까 싶다. 매각 주체에 맡기도록 하겠다. 단지 주어진 여건 하에서 가장 좋은 기업이 아시아나의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아시아나가 더 튼튼한 기업이 되길 바란다”

      이동걸 회장이 던지는 애매한 메시지가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매각을 더 미궁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답은 없고, 원칙론만 강조하는 형국이 반복됐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의 최대 관심사는 ’대기업을 비롯한 전략적투자자(SI)가 언제 수면위로 등장할 것이냐’이다. 혹은 지금은 관심 없는 기업이지만, 2~3개월의 기간 내에 추가로 참여할 수 있는지(또는 참여해도 되는지) 여부다. 사모펀드(PEF) 단독 인수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PEF와 SI의 컨소시엄 구성은 필수적이다.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아직은 눈치게임을 지속하고 있는 후보 기업들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이미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주도하는 주체가 산업은행이란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동걸 회장이 언급한 ‘매각주체’인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그룹)은 한시가 급하지만,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게 현실이다.

      산업은행이 세운 원칙은 ▲좋은(?)기업이 인수 ▲자회사 통매각 등으로 요약된다.

      이동걸 회장을 비롯한 금융당국의 수장들은 앞장서 재무 상태가 탄탄한 기업이 참여할 것을 공개석상에서 주문했다. 하지만 매각 공고 이후 유력하게 거론됐던 대기업들은 일단 발을 뺐다. 예비입찰에 참여한 후보들 가운데 HDC-미래에셋 컨소시엄을 제외하곤 조(兆) 단위 거래를 성사시킬 능력은 입증되지 않았다.

      자회사 ‘통매각’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칼을 뽑아든 이상, 통매각이 이뤄진다면 산업은행 입장에선 최상의 시나리오가 연출된다. 하지만 조단위 이상의 인수금액을 지불할 여력이 되는 대기업은 몇 되지 않았고, 여력있는 지주회사들이라도 상장 자회사까지 인수 하는데는 현행법상 한계가 분명했다. 통매각 원칙은 다수의 저가항공사(LCC) 또는 중견기업의 인수전 참여를 제한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시장의 눈높이와는 다소 괴리감이 있었지만, 아직도 그 원칙은 고수되고 있다. 추후에 인수후보자들의 요구에 따라, 산업은행이 마지못해 분리매각으로 양보(?)하는 형국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산업은행의 원칙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도 무관한 ‘명분’이 되고 있다.

      적어도 재무적여력을 갖추고, 모든 자회사를 아우를 수 있는 강대강(强對强)의 뚜렷한 경쟁구도가 보이지 않는 현재 상황에선 그렇다.

      산업은행은 올해를 넘기면, 금호산업의 구주 처분 권리가 생긴다. 내년부턴 다양한 전략적 선택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셈이다. 최대한 비싼 값에 구주 매각을 성사시켜야 하는 금호그룹 입장과는 정확히 배치된다.

      이 때문에 산업은행의 아시아나항공 매각 의지에 대해 시장의 의구심은 끊이질 않았다. “일부 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금호그룹 주요 임원들의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는 이해할 만했다.

      산업은행은 모호한 원칙론을 내세웠고, 실제로 매각에 가장 깊게 관여하면서도 공식적으론 ‘매각 주체’는 아니라고 선언했다. 인수후보자들은 아시아나항공 신주 발행을 통해 산업은행의 채권을 갚아야하는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을 인지하고 있지만, 아직 신주와 구주 매각 비율에 대한 ‘채점표’조차 만들어 지지도 않았다.

      그러니 외부에서 보기에는, 산은은 일단 참여한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고 난 후에, 입맛에 맞는 후보자를 골라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매각 과정에서의 명확한 프로세스도 밝혀지지 않았고, 우협 선정의 방법론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산업은행은 ‘우린 모른다’, 투자자(후보자)들도 ‘모르겠다’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비친다.

      산업은행이 선임한 매각주관사(CS)는 신문에 입찰 공고를 냈고, 수십 곳의 기업에 입찰 안내문과 IM(투자안내서)가 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은행은 이번 거래를 ‘금호그룹의 프라이빗딜’로 규정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금호그룹의 ‘프라이빗 딜’이라면 어디까지나 산업은행은 제3자여야 했다. 이동걸 회장과 금융당국 수장들이 앞장서 원칙을 이야기하는 순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부 주도의 거래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매각이 진행되고, 정책 기관이 주도하는 거래라면 적어도 절차의 투명성과 선정 과정에서의 명확한 방법론이 제시됐어야 했다. 산업은행이 책임을 매각 성사 여부에 책임을 지고 거래를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의지라도 비쳤어야 하는 게 합리적이다.

      매각 공고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는 급등락을 반복했다. 인수 후보들이 거론될 때마다 기업가치가 널뛰기했다. 주가는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번 매각의 제 1원칙은 ‘보안 유지’가 됐다. 이런 측면에선 CS의 거래 진행 능력은 재조명 받았다. 앞으로 ‘CS=Confidential Secret’이란 수식어가 붙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CS는 인수후보자 물색부터 제안서 접수까지 전권(全權)을 쥐고 움직였고, 입찰 과정에선 주관사만이 알고 있는 정보도 상당했다.

      이동걸 회장의 “실무진 보고도 받지 않는다” 산업은행 관계자의 “프로세스는 모른다”는 말을 오롯이 받아들이긴 어렵다. CS가 산업은행의 면피(免避)의 창구가 되어선 안된다.

      이번 거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이동걸 회장은 ‘첫 번재 구조조정 성공 기업’, 산업은행 입장에선 ‘선제적 자금 투입과 성공적인 투자금 회수’ 선례로 남을 것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금호그룹의 ‘지나친 욕심’과 ‘CS의 무능(無能)’으로 점철된 거래로 낙인찍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