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글로벌 기업 역대급 테크 M&A 연이어…기업고객 확대ㆍ반도체 융합
입력 2020.12.17 07:00|수정 2020.12.18 10:07
    테크 M&A 수십조 '빅딜' 지속
    보유 플랫폼에 기업고객 확보
    반도체 기업, '통합 솔루션' 행보
    2021년 빅테크 중심 고착화될 듯
    국내 기업들은 아직 존재감 미미
    • 코로나에도 올 한해 글로벌 시장에선 대규모 테크 인수합병(M&A) 거래들이 줄을 이었다. 거래를 주도한 건 FAMGA로 불리는 페이스북·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 등 빅테크다. 막대한 현금을 기반으로 기업 쇼핑에 나섰는데, 향후 10년을 대비한 M&A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FAMGA는 일반 소매고객을 자신의 플랫폼 안에 묶어두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 고객 포섭을 한참 진행 중이다. 코로나 사태로 디지털 전환이 대세로 굳혀질 것을 감안,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상품을 묶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활발한 M&A가 이뤄졌다. 더불어 주요 반도체 기업은 통합솔루션 제공에 필요한 빅딜에 나서고 있다.

    •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기준 FAMGA가 올해 인수한 기업은 총 33곳에 이른다. 이들이 보유한 현금만 상반기 기준 4710억달러(한화 약 511조원)에 달했다. 이를 배경으로 코로나 이후 폭락장을 기점으로 적극적인 M&A에 나섰다.

      애플은 올해 8개 기업을 인수했다. 이 중 이동제한 조치가 시행된 5월 이후 세 달 동안 인수한 3개 기업은 비대면 업무에 초점이 맟춰져 있다. 5월에 가상현실 방송사인 '넥스트VR'(1억 달러)을 인수한 후, 6월 모바일기기 원격제어 업체인 '플릿스미스'를, 그리고 8월에는 화상회의용 아바타 제작업체 '스페이시스'를 인수했다.

      비대면 업무 전환수요가 대세로 자리잡을 것으로 내다보고 기업고객 대상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그간 애플은 기기 판매 외에는 기업고객 대상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들어 달라지는 모습이다. 잠재력만 놓고 보면 글로벌 기업 활동 80%가 애플의 iOS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애플이 기업 대상 사업에 진출할 경우 연간 시장규모만 4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찌감치 기업고객에 주목한 마이크로소프트(MS)도 올해 7개 기업을 인수했다. 대부분 클라우드 서비스를 강화하는 목적이었다. 3월 14억달러에 클라우드 내 5G 지원 업체인 어펌드네트웍스를 인수한 데 이어 5월에는 이를 보완하는 기술을 보유한 메타스위치 네트워크를 인수했다. 5월 중에는 클라우드 내 사무자동화 기술을 보유한 소프토모티브도 인수했다.

      비대면 디지털 작업환경을 도입하려는 기업고객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MS의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와 애플의 IT기기를 활용하라"는 의미의 M&A를 진행하는 모양새다.

      FAMGA의 이런 움직임에 대적하기 위한 빅딜도 이어졌다.

      기업용 고객관리시스템(CRM) 부문의 선두주자인 세일즈포스는 최근 277억달러를 들여 기업용 메신저 업체인 '슬랙'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소프트웨어 업계 내 인수합병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그간 세일즈포스는 클라우드 기반 기업용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MS와 직접적으로 경쟁해 왔다. 슬랙 인수는 MS가 자사 구독상품에 '팀즈'를 제공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슬랙의 점유율은 10% 안팎으로 팀즈에 비해서는 크게 낮다. 그럼에도 세일즈포스는 인수합병으로 자사 서비스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을 택했다.

      FAMGA의 플랫폼 구축과 확장사업이 연일 확대되자 덩달아 M&A가 늘어난 부분은 '반도체 기업'들이다. 각 부문에서 반도체 응용처와 수요가 늘어났자 통합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한 대규모 M&A가 활발했다. 엔비디아와 AMD의 움직임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최강자인 엔비디아는 지난 9월 400억달러을 들여,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ARM을 인수했다. ARM은 스마트폰 태동기 때 퀄컴이 칩세트 시장을 장악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터라 엔비디아가 이를 인수했다는 점 자체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번 딜로 엔비디아는 4차 산업혁명에 거론되는 거의 모든 응용처에 칩 하나 형태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인텔의 영원한 경쟁자로 불리던 AMD가 지난 10월 기습적으로 350억달러 규모 '자일링스'를 인수한 것도 큰 화제였다. 자일링스는 통신 및 네트워크 부문 반도체 1위기업으로, 한때 삼성전자 '인수설'이 돌기도 한 회사다. 자일링스 인수는 서버 시장에서 인텔에 대한 경쟁력을 넓히는 것과 동시에 시장에 지각변동을 안겨줄 거래로 풀이됐다.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경쟁사 간 격차를 좁히기 위한 거래가 아니라 비메모리 반도체의 융합"이라며 "테크 기업이 플랫폼 생태계를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니 반도체 기업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이후 글로벌 산업 지형은 더욱 상위 업체를 중심으로 고착화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기업도 M&A에 나서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최근 현대차그룹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것 외 트렌드에 부합하는 M&A는 없었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가 10월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90억달러(약 10조원)에 인수했지만 앞선 사례와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M&A 시장에서 국내 기업 존재감이 미미한 것이 사실"이라며 "자본과 기술력이 있어도 전략적 의사 결정에서 글로벌 기업에 뒤쳐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