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유력 권광석 우리은행장, 그의 눈은 회장을 향하고 있을까
입력 2021.03.03 07:00|수정 2021.03.02 17:49
    • "관운(官運)이라는 게 있다면 권광석 우리은행장을 빼놓곤 이야기할 수 없죠.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한 은행 관계자)

      권광석 우리은행장이 연임을 앞뒀다. 연임이냐 교체냐가 아니라, 다음 임기가 1년일지 2년일지가 은행 안팎의 관심사다.

      권 행장은 지난해 '다크호스'로 등장해 행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연임이 확정되면 그룹 내 명실상부한 최고경영자 중 한 명이 된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라임펀드 관련 중징계 사전 통보를 받은 상황에서 유사시 회장직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권 행장이 '차기 우리금융 회장' 후보로 급부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금융권의 표정은 당혹스럽다. 근래 '자격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권 행장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우려 섞인 시선이 없지 않다.

      우리금융은 3월초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열어 연임 여부를 확정한다. 지난해 이맘때 임추위는 권 행장에게 임기 1년을 부여했다. "성과를 보고 향후 연장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숫자만 보면 '성과가 좋았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우리은행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전년대비 25.7%,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10.3% 줄었다. 지배기업 지분 기준 당기순이익이 1조3630억원으로 NH농협은행의 1조3700억원보다 적었다. 심지어 농업지원사업비 지출을 빼면 농협은행의 순이익은 1조5170억원으로 우리은행을 까마득히 따돌렸다. '4대 은행'에서 우리은행을 빼고 농협은행을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 연임이 유력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다른 은행들도 함께 역성장한 상태이다보니 우리은행의 부진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펀드 관련 손실도 권 행장의 탓이 아닌, 전임 행장인 손태승 회장의 책임으로 결부됐다. 이로 인해 생긴 손실과 일회성 비용 역시 권 행장의 책임과는 다소 비켜나 있다

      반면 정부의 정책과 빚투(빚내서 투자)ㆍ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열풍은 은행의 자산을 급증하게 만들었다. 우리은행도 지난해 한 해동안 원화대출금이 9.8%나 늘었다. 사상 최대로 풀린 글로벌 유동성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자극해 시중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정부의 대출 상환 유예 정책에 따른 자산 부실화 위험만 잘 관리한다면, 자연스럽게 실적이 나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20년 실적이 '피치 못하게' 좋지 못했던만큼, 백신과 함께 경제가 정상화 국면에 들어갈 2021년부터는 좋아질 가능성이 큰 셈이다. 기저효과로 인해 권 행장이 '우리은행의 도약을 이끈 훌륭한 행장'으로 조명 받을 확률 역시 커졌다.

      사실 권 행장은 최근 수 년간 '능력'과 관련해 가장 많은 논란에 휩싸였던 금융인이기도 하다.

      권 행장은 주요 경력이 대외ㆍ홍보에 치중돼있다. 은행 투자업무 경력은 우리은행 IB그룹장 10개월이 전부였다. 이 경력으로 2017년말 우리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이사에 발령됐다.

      전문성 보다는 당시 행장이었던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적폐로 몰리며 자신의 라인이었던 권 행장을 피신시켜준 것이라는 평이 많았다. 이 전 행장은 당시 논란이 많았던 서금회(서강금융인회) 로 분류됐다. 이 전 행장과 권 행장은 모두 우리은행 출범 이전 상업은행 출신이었다.

      권 행장은 우리PE로 발령난 지 불과 3개월만에 새마을금고 신용공제 대표로 내정됐다. 투자업계 1년 경력자를 50조원을 운용하는 자리에 경쟁후보도 없이 단독으로 추대됐다. 행정안전부 감사결과에 따르면, 권 행장이 신용공제 대표를 맡은 2018년 자금운용부문 운용수익률은 2.74%로 2018년 3.20%대비 0.46%포인트 뒷걸음질쳤다.

      우리은행장이 되는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다크호스로 등장한 후, 사모펀드계 과점주주의 지지를 바탕으로 임추위에서 만장일치 추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 과점주주(IMM PE)의 주요 투자자(LP)가 새마을금고라는 점과, 권 행장이 당시 청와대 주요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던 '울산 학성고 출신'이라는 점이 회자되기도 했다.

      현재 권 행장의 은행장 연임을 저지할만한 내부 인사는 사실상 없다시피 한 상태다.

      지난해 행장을 두고 경합했던 김정기 부행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우리카드 대표로 발령났다. 임기는 2년이다. 발령난 지 3개월만에 돌아와 행장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행장 후보 중 하나였던 이동연 우리FIS 대표는 지난해 말 계열사 인사에서 교체됐다.

      이런 와중에 손 회장의 입지는 여전히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은 25일 오후 라임펀드 사태 관련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라임 사태 당시 우리은행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에 대한 첫 제재심의위원회를 개최했다. 손 회장은 해임권고 바로 아랫단계인 직무정지를 사전 통보받은 상황이다. 추후 직무정지로 징계가 확정되면 4년간 금융회사의 임원이 될 수 없다.

      손 회장은 앞서 지난해 1월 DLF 사태 관련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이미 받은 상태다. 당시 효력 중단 가처분을 법원이 받아들이며 가까스로 연임에 성공했다. 현재 본안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번 라임사태 관련 중징계를 피하더라도, 해당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면 현 임기인 2023년 3월 이후 회장직을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다.

      만약 손 회장이 징계 등의 이슈로 회장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면 컨틴전시(비상) 승계 프로그램이 발동한다. 지주의 선임 부사장이 회장 직무대행을 맡고, 이사회가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시작하게 된다.

      권 행장이 회장에 뜻을 두고 있다면, 첨예한 경쟁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유사시 회장 직무대행 후보자론 이원덕 지주 수석부사장이 1순위에 꼽힌다. 우리금융은 지난해 12월 공식적인 지주 2인자인 '수석부사장'직을 신설하고 이원덕 부사장(사내이사)을 임명했다. 이 수석부사장은 미래전략단장ㆍ경영기획그룹 집행부행장을 거친 전략통으로, 손 회장과 같은 한일은행 출신이기도 하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권 행장도 여기까지 온 이상 회장직에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현 시점에선 이원덕 수석부사장과 김정기 우리카드 대표가 차기 대권의 경쟁자가 될텐데, 이력으로는 다소 불리한 권 행장이 과점주주의 지원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