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지영조 사장 재신임 했지만…핵심 사업은 외부인사에게
입력 2021.05.04 07:00|수정 2021.05.06 10:16
    전략기술본부→‘이노베이션 담당’ 조직명 변경
    지영조 사장 재신임, 그랩 상장 추진 효과?
    이노베이션 담당, 모빌리티 분야 TaaS본부에 이관
    TaaS본부, 현대차 투자 받은 송창현 42dot 대표 담당
    핵심 사업 떼낸 이노베이션 담당, 지 사장 입지 ‘흔들’ 평가도
    • 현대자동차그룹의 신사업 추진 조직인 전략기술본부가 ‘이노베이션 담당’으로 간판을 교체했다. 조직의 격상 또는 격하 여부와는 무관하게 기존 신사업 추진 관련 업무를 이어간다.

      전략기술본부는 그룹 내 입지가 다소 좁아졌다가 최근 인사를 통해 지영조 사장에게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다만 기존 이노베이션 담당이 맡았던 현대차그룹의 미래 핵심 사업인 모빌리티 분야를 떼어냈고, 해당 사업을 외부 인사에게 맡기면서 그룹 내 영향력 확대는 제한적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2017년 전략기술본부 신설 당시부터 수장을 맡은 지영조 사장이 최근 현대차그룹과 재계약했다. 지 사장은 AT&T 벨 연구소, 멕킨지·엑센추어 출신으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기획팀장)을 거쳐 2017년 현대차에 합류했다. 정의선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만큼 이직 1년 만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이노베이션 담당은 정 회장의 핵심조직으로 그룹 내 주목도가 가장 높은 부서중 하나였다. 설립 이후 국내외 각 기업의 기술 전문가는 물론 회계·법무법인, IB 인력을 충원하며 1년 만에 200명이 넘는 대형 조직으로 급부상했다. 기술력이 뛰어난 해외기업에 대한 투자 및 M&A를 진행하기 위한 조직으로 정 회장이 사업에 직접 관여해 왔다.

      설립 첫 해 한국형 차량공유서비스 스타트업인 '럭시'에 50억원 투자를 시작으로, SK텔레콤과 손잡고 인공지능(AI) 육성을 위한 펀드를 조성했다. 2018년 레이더 및 AI 기술 개발 회사인 메타웨이브(MetaWave), 동남아 최대 차량호출서비스 그랩(Grab), 인도 최대 차량공유서비스 올라(Ola) 등에 대한 투자도 이노베이션 담당의 투자 성과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미국의 자율주행 선도업체인 오로라(Aurora)와의 협업을 꼽는다.

      승승장구하던 이노베이션 담당에 대한 그룹 내 주목도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사그라들었다. 그 사이 기획조정실이 주목을 받았다.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인수 이후 현대차그룹의 가장 큰 규모의 투자로 평가받는 미국 앱티브 테크놀로지스(Aptiv Technologies Limited)와 합작사 설립, 지난해 말 깜짝 발표한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 인수는 이노베이션 담당이 아닌 기획조정실의 성과로 기록됐다. 현대차그룹의 랜드마크 격인 M&A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했고, 기존의 투자들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받는 시점이 다가오면서 이노베이션 담당의 입지는 과거와 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노베이션 담당이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는 데는 동남아 그랩의 나스닥 상장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랩은 현재 기업인수목적회사(SPAC)과의 합병을 통해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거론되는 기업가치는 최소 340억달러(약 40조원) 수준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그랩에 약 2억7500만달러(약 3000억원)을 투자했다. 현재 가치 기준 2~3배 이상의 투자 수익이 예상된다. 그랩의 투자 성과가 지 사장에 대한 재신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전략기술본부(이노베이션 담당)가 외부 인사를 대거 영입하면서 그룹 내 가장 활발한 투자를 해왔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대표적인 투자건들이 없고, 회수 성적도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축됐던 것도 사실이다”며 “그랩의 상장 추진으로 사실상 전기본의 첫 대규모 투자 성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 지 사장의 연임에도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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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창현 TaaS본부 본부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노베이션 담당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선 꾸준한 투자, 그리고 과거 투자건들에 대한 회수 성과가 뒷받침 돼야한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최근 조직개편 과정을 비쳐보면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현대차·기아의 모빌리티 사업을 총괄하는 ‘TaaS본부’를 신설했다. 정 회장이 모빌리티 그룹으로의 변신을 공언한 만큼 상당한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룹 내 흩어져있던 모빌리티 사업의 중추는 이노베이션 담당이었다.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이노베이션 담당 내부의 모빌리티 사업과 관련한 조직 및 인력들은 TaaS본부로 재배치 됐다.

      신설된 TaaS본부는 외부 출신 인사인 송창현 사장이 맡는다. 송 사장은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으로, 네이버 랩스의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송 사장은 2019년 3월, 인공지능(AI)·자율주행 스타트업인 포티투닷(42dot, 舊 코드42)를 설립했고, 같은 해 현대차그룹으로부터 15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송 사장은 현대차의 TaaS본부를 총괄하고 포티투닷 대표직을 겸직한다. 현직 외부 법인 대표이사를 현대차 핵심 조직 수장으로 임명한 조치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송 사장의 겸직 논란도 일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노베이션 담당은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미래 핵심 사업 분야를 떼낸 만큼 투자 분야가 상당히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현대차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게 된 송 사장과 대비해 지영조 사장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이노베이션 담당의 과거 투자 대상이 모두 광범위한 모빌리티 사업분야에 포함되는데 이번 조직개편으로 인해 이노베이션 담당과 TaaS본부의 경계가 다소 모호해 진 부분도 있다”며 “지영조 사장과 이노베이션 담당이 투자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과거 위상을 되찾는 데도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