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ARM 인수 참여, 포트폴리오상 적절한 전략일까
입력 22.04.11 07:00
SK그룹 ARM 인수 의지…결국 사업적 구심점은 '하이닉스'
시장지형 변화 드러났던 엔비디아 ARM 인수 포기 과정
결국 비메모리 시장서 빅테크 생태계 주도권 경쟁 치열한 것
하이닉스 접점 애매…시장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 SK그룹의 ARM 인수 의지는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과 따로 떼어놓고 보기 힘들다. 실제 인수에 나선다고 가정했을 때 거래를 주도하는 것은 모회사 SK스퀘어일 수 있지만, 사업적 시너지는 결국 SK하이닉스가 중심이다.

    그러나 전체 반도체 산업 내 SK하이닉스의 참여 비중을 고려하면 ARM 인수 참여가 적절한 전략인지는 의문이란 목소리가 많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도 아직까진 SK그룹의 인수 의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새다. 

    SK그룹에 앞서 ARM을 실제로 인수하려다 포기한 엔비디아를 들여다보면 현재 반도체 시장이 돌아가는 판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반도체 시장은 새로운 통신 기술이나 기기가 등장할 때마다 지형 변화를 거쳐왔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뒤 인텔 중심의 CPU와 PC 시장이 AP와 스마트폰 시장으로 나눠진 게 대표적이다. 현재 ARM의 시장 지위도 이때 만들어졌다. ARM 보유 설계 자산(IP)이 스마트폰 시대에 꼭 들어맞았던 덕이다. 이후 로직 반도체 시장은 사실상 인텔과 ARM 진영으로 나뉘게 된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계에선 엔비디아의 ARM 인수전을 두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인피니티 사가'와 비교하는 우스개가 종종 회자됐다.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아 건틀릿을 딱하고 튕기면 생명체 절반을 지우거나 살려내는 게 가능하다. 엔비디아가 2019년 멜라녹스에 이어 2020년 큐뮬러스를 인수한 뒤 ARM까지 인수하겠다고 나선 배경도 비슷하다. 컴퓨팅 환경이 서버와 데이터센터 중심으로 이동하는 시기에, 못해도 생태계 절반 이상은 집어삼키겠다는 포석이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ARM 인수 계획을 발표할 당시 이미 멜라녹스와 큐뮬러스 인수를 통해 데이터센터 시장 진출 준비를 마쳤던 상황"이라며 "어차피 결국에는 대부분 컴퓨팅 수요가 서버와 데이터센터 중심으로 옮겨갈 텐데, ARM 인수를 통해 여기에 들어갈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그러나 5G 시대 접어들어 이미 대부분 빅테크가 스마트폰과 AP 이후를 고민하고 있다. 팹리스인 엔비디아 입장에서 ARM이 다음 생태계 독점을 위한 인피니티 스톤의 하나였다면 빅테크 입장에서는 '공용 건틀렛'에 비교할 수 있다. ARM 코어 IP를 플랫폼으로 여러 반도체를 이어붙이면 각자 필요에 따라 로직 반도체를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 구글, 아마존, 메타(옛 페이스북)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 대부분이 실제로 그러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들 모두에게 판매할 수 있는 반도체 시장을 개척하려 한 셈이다. 그러나 빅테크 입장에선 인텔이 엔비디아로 바뀔 뿐인 시장 구도가 달갑지 않다. 필요한 반도체를 직접 설계해서 TSMC에 맡기는 게 주도권 경쟁에도 유리하다. 당연히 엔비디아의 ARM 인수전은 규제와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여기까지 내용은 모두 비메모리 반도체, 그중에서도 고부가 로직 시장을 둘러싼 생태계 주도권 경쟁이다. 그 결과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등할 거라는 점을 제외하면 SK하이닉스의 기존 사업과 접점을 찾기 어렵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은 2위 기업이다. 시장에서도 사실상 순수 메모리 기업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M&A를 통해 비메모리 사업도 육성하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자회사 시스템IC 외 키파운드리 인수로 생산 능력을 2배로 키워냈다. 

    그러나 두 사업 모두 반도체 설계가 아닌 8인치(200mm) 웨이퍼 팹(Fab)으로 주로 아날로그 반도체를 생산하는 레거시 공정에 속한다. TSMC나 삼성전자가 빅테크를 고객사로 모셔오기 위해 벌이고 있는 선단공정 경쟁과도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2.9%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수치다. 파운드리만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때 한국의 점유율은 약 15.2%다. 대부분이 글로벌 2위인 삼성전자의 몫이고, 나머지는 11위 DB하이텍의 몫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가 비메모리 산업에 진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컨소시엄 형태로 ARM 인수를 검토 중이라 밝힌 것을 두고 적절한 전략이라는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 어차피 성장할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에서 파운드리 사업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ARM 인수에 따른 실익이 불투명한 탓이다. 투자업계에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M&A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는 ARM 인수 대금으로 215억달러(원화 약 26조원)어치 자사 지분과 현금 120억달러(원화 약 14조원) 등을 지불할 계획이었는데 주식을 뺀 현금만 따져도 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당시보다 큰 금액"라며 "SK하이닉스와 시너지도 불분명하고 현실성도 부족하다 보니 심각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거의 접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