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좌초 위기?…美, 전략물자 수송 독점도 우려
입력 22.05.19 07:00
미 법무부,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심사기준 '심화'로 상향
여객노선 중복에 이어 전략물자 수송 독과점 가능성도 부상
미국 국가안보와 전략적 이익 감시하는 CFIUS, 엄격한 시각
델타항공 계열사로 볼지도 쟁점…클레이튼법 저촉 여부 촉각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심사 기류가 심상치 않다. 특히 미국 경쟁당국 내 승인 난기류가 포착, 사실상 불승인 쪽으로 기운 분위기다. 미국 법무부는 양사 기업결합에 따른 여객노선 독과점뿐 아니라 의약품 및 전략산업 물자 수송 독점 가능성도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엄격한 조사와 심사 장기화가 예상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기업결합에 예상보다 엄격하고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보는 미국 측 움직임이 포착됐다. 미국 법무부는 최근 대한항공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인한 독과점을 해소할 구체적 방안 제출을 요구했다. 양사 합병 성격에 대한 입장이 이전과는 다소 달라졌다는 전언이 나온다. 

    미국 법무부는 여객노선뿐 아니라 기업결합으로 인한 의약품·전략산업물자 수송 독점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앞서 결합사건 심의 수준을 '간편'에서 '심화'로 상향한 주요 배경이 됐다는 설명이다.

    각국 정부는 군함기와 국가 수송기뿐 아니라 장거리 운송능력을 갖춘 민항 화물기를 통해 전략물자와 의약품들을 실어나른다. 실제 미국 등으로부터 도입이 필요한 군수물자 일부는 대형 화물기를 보유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수송되고 있다. 팬데믹 사태 동안엔 백신이 긴급 전략물자로 포함되며 수송량이 급증했다.

    CEIV Pharma(의약품 운송 서비스 품질인증)은 전세계에서 35곳의 항공사가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 민간항공사 기준으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포함해 5곳만이 자격을 갖고 있어 시장이 크지 않다. 양사 결합으로 전략물자 수송시장 내 유의미한 점유율을 가져갈 여지가 크다보니 미국 당국이 면밀히 들여다보는 상황이다.

    해당 건은 결합심사를 진행 중인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DOJ) 이외에도 미국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의 승인까지도 요구되는 사항이다. CFIUS는 자국 국가안보와 전략적 이익에 반하는 투자를 차단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으로, 방산·인프라·항공 등 전략산업군을 주로 심사한다. CFIUS에서 전략물자 수송시장 독점 우려를 들고나설 경우 원상복구 명령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합병 무산 가능성까지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미국 공정거래당국은 양사 기업결합으로 한국이 전략물자 수송 시장을 독점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는 미 법무부의 결합사건 심의 수준 상향의 주요 배경"이라며 "전략적 이익에 대한 미국 정부 검토가 필요한 만큼 CFIUS 승인 가능성이 현재로선 크지 않다. 승인이 나더라도 매우 불리한 조건이 붙을 것"이라 전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이와 관련해 지난 2020년 12월 '대형항공사(FSC) M&A 관련 이슈와 쟁점' 보고서에서 선제적으로 우려 의사를 밝혔던 바 있다. 해당 보고서엔 외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의약품 등 전략물품 수송심사를 동반하기에 관계기관 간 충분한 사전협의를 요구하지만 당시 산업은행이 독자적으로 합병을 성사시켰다는 내용이 지적됐다. 

    미국으로선 자국 2위 항공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의 거센 반발도 우려 요인이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앞서 미 법무부에 양사 합병으로 인한 경쟁 제한성 관련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미국에 총 13개 노선을 운항 중으로, 그중 5개 노선(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로스앤젤레스·뉴욕·시애틀)이 중복돼 있다. 

    글로벌 항공동맹체 간 알력다툼과도 연관이 있다. 대한항공은 한진칼 주요주주인 미국 델타항공과 '스카이팀', 아시아나항공은 유나이티드항공과 '스타얼라이언스' 항공동맹을 맺고 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이 스타얼라이언스에서 빠지면서 미주 노선과 중국·동남아시아 경유 노선에서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양사 합병으로 인천 및 뉴욕·샌프란시스코·LA 간 노선에서 대한항공-델타항공의 점유율이 올라갈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한 관계자는 "유나이티드항공 입장에선 졸지에 델타항공에 보유노선을 헌납하는 격이 될 수 있다. 미국 당국에서도 이를 인식,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델타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간 합병에 준해 보는 상황"이라 전했다. 

    미국 당국이 델타항공의 한진칼 보유지분을 어떻게 인지하느냐도 쟁점사항 중 하나다. 한진칼과 대한항공을 델타항공의 계열사로 인식할지 여부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델타항공은 한진칼 지분 13.21%를 보유한 주요주주로, 단일 주주 기준으론 호반건설(13.9%) 다음으로 지분율이 높다. 

    미국의 클레이튼법(Clayton Act)에선 소수지분이더라도 경쟁 제한성을 보일 경우 취득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델타와 대한항공이 JV를 맺은 태평양 횡단노선에 대한 경쟁 제한성이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델타항공에선 스타얼라이언스 동맹 간 단순 투자 차원이란 입장이지만 당국에선 대한항공과 코드쉐어(공동운항) 및 노선 배정이 이뤄지는 점에 집중,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항공안전법 등 관련 법률규정상의 문제는 없으나 델타보다도 지분율이 적은 산업은행(10%)이 한진칼을 통해 대한항공 경영에 사실상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델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논리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