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성 무너진 가상화폐 시장…'리스크 평가' 기준은 걸음마 수준
입력 22.06.29 07:00
취재노트
가상화폐 신뢰 하락으로 '신뢰성' 판단 논의 재점화
당국·시장 대책 마련 분주하지만…'결론'까진 아직
"오히려 전환점" 코인 옥석 가리기 시작한 투자자들
  • ‘가상화폐 겨울(Crypto winter)’이 정말 온 것일까.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에 테라·루나 사태가 촉발한 혼란으로 다수의 코인 가격이 급락했고, 글로벌 코인 거래소들은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섰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암호화폐 파티는 끝났다(The Crypto Party Is Over)”라며 한동안 긴 조정이 올 것으로 관측했다. 

    잇따른 악재에 가상화폐의 신뢰성에 대한 검증에 대한 논의가 시장에서 재점화되고 있다. ‘이미게임은 시작됐지만’, 사실상 현재 국내에서 실질적인 투자자 보호와 가상화페 위험 평가에 대한 논의는 걸음마 수준이다. 당국의 규제 마련 움직임에 대해서도 가상화폐 업계에서는 "전쟁은 시작됐는데 헌법을 논하는 수준"이라는 평을 내놓는다. 

    어쨌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금융당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테라·루나 사태로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고, 코인 가격 추락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늘면서 규제 여론이 높아지면서다. 지난 23일, 금융감독원은 가상화폐업계 관계자들과 ‘가상자산리스크 협의회’를 구성했다. 킥오프 회의는 28일로, 금감원은 이번 협의회로 준법감시와 관련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체화할 방침이다. 

    가상화폐 거래소도 분주하다. 22일 고팍스·빗썸·업비트·코인원·코빗 5대 가상자산 거래소는 ‘디지털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를 출범했다. 지난 13일 제2차 가상자산 당정간담회에서 5대 거래소가 발표한 ‘가상자산 사업자 공동 자율 개선방안’의 실행을 위한 첫 번째 단계다. 가상자산 업계의 건전한 발전과 ‘투자자 보호책 강화’를 위해 거래소가 상호 협력해 나가겠단 취지다. 다만 업계에서는 해당 협의체가 규제 강화 조짐이 보이자 거래소들이 대응하는 ‘액션’을 하는 것이지,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내놓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시각이 많다. 

    현재 가상자산에 대한 리스크(잠재 위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정해진 바 없다. 가상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장부상으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회계적 판단부터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가상자산거래소의 경우 거래소마다 고객보유 가상자산의 재무제표 인식 여부가 다르다. 업비트는 K-IFRS에 따라 고객자산에 대해 재무제표 인식과 공시를 하지 않고, 빗썸은 재무제표 인식은 하지 않지만 주석 공시를 하면서 독자적인 기준을 삼고 있다. 정해진 기준이 없다보니 빗썸 등 거래소가 각자 때마다 회계기준원에 질의를 해서 회계처리를 하고 있다.  

    가치 평가 자체가 기준이 모호하다보니 자본시장 내에서도 잠재 위험에 대한 우려가 크다. 가상화폐 가격들이 급락하면서 가상화폐에 투자한 기업들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직접 가상화폐 사업을 하는게 아니면, 기업들이 가상화폐에 투자한 것은 통상 여유자금이고 규모가 큰 경우가 많지 않아 아직 여파가 크진 않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회계상 손실을 인식할 정도가 되려면 ‘일정 기간’ 동안 ‘일정 수준의 등락’이 나타나야 한다는 설명이다.

    해당 가상자산의 신뢰성을 검증해야 하는 감사는 더욱 어렵다. 장부를 통해 해당 가상화폐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감사를 하는 회계법인이 각 코인에 대한 네트워크 신뢰성이나 발행 알고리즘과 같은 기술적 확인을 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당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거버넌스에 대한 실질적 검증도 쉽지 않다. 

    ‘가성비’ 차원에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요인이 크지 않은 점도 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널리 통용되는 가상화폐는 이에 맞는 감사 툴(tool)을 만들면 쓰임새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소형 코인들에 대한 툴을 하나하나 만들 유인은 크지 않다. 만든다 하더라도 그 코인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험성도 있다. 현재 국내 법인들은 가상화폐 감사 툴 마련에 앞서있는 미국과 일본 등 글로벌 회계법인들의 툴을 가져와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아직 가상자산 관련해 구체적인 회계감사 기준이 없어 기업 감사시 어려움이 있다보니, 대기업 계열사가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경우 아니고서야 소형 프로젝트나 코인 관련 회사들의 감사는 의뢰가 와도 맡고 있지 않다”며 “지금 가상화폐 관련해서 당국도 그렇고 누구도 책임지기 싫은 상황이고, 추후 뭔가 문제가 생기면 감사기관에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회계기준원에서 4대 회계법인과 함께 ‘가상자산 회계처리이슈 TF(테스크포스)’를 열고 기준 정립 기초를 위한 논의를 하고 있지만, 큰 진전이 없는 상태로 전해진다. 레퍼런스가 없는 분야다보니 각각의 논거 정도만 나올 뿐 정답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당초 6월 말까지 TF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구체적 결과가 나오기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지금까지는 가상화폐 생태계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제대로 안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고, 모른다고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가상화폐 겨울이 왔다는 평이지만 업계 일부에서는 오히려 지금이 시장에서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부 부실이 드러났고 전반적인 가상화폐의 가격이 떨어지고는 있지만, 블록체인과 NFT(대체불가능토큰), P2E(play to earn) 등 네트워크 자체가 손상이 된 것은 아니라는 평이다. 

    오히려 가상화폐의 리스크 판단이 중요해지면서 펀더멘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웹 3.0’, ‘탈중앙화’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들은 약진할 기회가 얼마든지 남았다는 것이다. 예로 이전에는 NFT 사업을 해도 '돈을 벌기 위해' 했다면, 이제는 특정 집단을 타깃하는 NFT를 발행해 '커뮤니티를 만들자'는 시도가 많아지는 추세다. 

    코인 투자자들도 옥석 가리기에 들어갔다. 테라·루나 사태도, 최소한 ‘제대로 알던 사람들’은 돈을 덜 잃었다는 것이 증명됐다. 루나에서 20%의 고정이자를 주겠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안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실제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깊게 파고든 투자자는 얼마 없었다. 위험이 발생할 조금의 확률이라도 고려해 투자를 반려한 일부 VC(벤처캐피탈) 심사역들은 이제와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분위기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스테이블 코인에서조차 부실 상태가 검증돼야 한다는 경각심이 높아졌다.

    거래소에서도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가상화폐 리스크 평가에 대한 니즈(필요성)가 높아졌다. 정부가 칼날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라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게" 지상 과제인 상황이다. 두나무, 빗썸 등 주요 거래소들은 ‘올해는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 목표인 분위기다. 

    다만 아직까지 해당 가상화폐 네트워크의 리스크를 판단할 기준이 많지는 않다. 사실상 정해진 규정이 없다보니 해당 프로젝트의 백서(White Paper; 사업계획서)를 확인하는 정도다. 백서조차도 허위 파트너십을 기재하거나, 같은 사람이 옷만 바꿔입은 사진들로 채운 허위 백서가 적지 않다. 

    법적인 강제력이 없다보니 공시의 의무도 미미하다. 거래소 외에 가상화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곳으로는 국내에서는 크로스앵글이 운영하는 가상자산 공시 플랫폼인 쟁글(Xangle)이 유일하다. 일종의 블록체인 시장의 다트(dart) 같은 모델로, 자체 기준을 통해 가상화폐의 신용도를 평가하고 있다. 

    다만 신용도 평가를 통해 해당 가상자산의 위험 가능성을 가늠할 수는 있지만, 가격이나 지속 가능성을 단정지을 수는 없다. 가상화폐 프로젝트의 경우 비상장사를 평가하는 비슷하기 때문에 숫자 외에도 리더, 구성원, 매크로 등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무수히 많다. 

    김준우 쟁글 대표는 “가상화폐 시장 자체가 위축되긴 했지만 오히려 테라 루나 사태를 겪고 나서 ‘이제 나도 좀 알고 투자해야겠다’는 투자자들이 가상화폐 평가 콘텐츠를 더 많이 보고 있다”며 “지금 가상화폐 시장엔 겨울이 왔지만 투자자들은 ‘1년, 2년 후에도 살아남을 프로젝트는 뭘까’ 생각하며 옥석 가리기에 들어갔다. VC 등 투자자도 공부는 더 본격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