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투자는 어떻게?" 질문에 속내 복잡한 삼성전자
입력 22.07.28 17:42
수요 불확실성 커지자 공급계획 파악 분주한 시장
삼성전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원칙에 변함 없다"
삼성, 투자 계획 언급하기 어느 때보다 신중할 상황
보수적 선회 대신 '초격차' 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 발표회(IR)에서도 어김없이 하반기 반도체 업황과 내년도 투자 계획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삼성전자는 경쟁사와 마찬가지로 하반기 업황은 불확실하고 시장 수요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전사적으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핵심인 내년도 반도체 설비투자(CAPEX) 계획에 대해선 "그간 말씀드린 투자 원칙과 변함이 없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시장으로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앞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내년 투자 계획을 낮춰잡을 수 있다고 공언한 터에 업계 1위 삼성전자가 쐐기를 박아주길 내심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로선 어느 때보다 투자 계획을 입에 담기 곤란한 때다. 

    28일 삼성전자는 2분기 매출액이 77조2036억원, 영업이익이 14조971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각각 전년 동기보다 좋지만 지난 분기보단 조금 못한 성적표다. 영업이익의 경우 증권가 전망치보다 6000억원가량 낮다. 시장 수요 둔화의 직격탄을 맞은 기기경험(DX) 부문 부진 탓으로 반도체(DS) 사업 자체는 성장을 이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역대 최대 분기 이익을 달성했지만 질문은 주로 메모리 반도체에 쏟아졌다. 특히 삼성전자는 하반기 메모리 업황을 어떻게 보는지, 그래서 투자 계획에 변동은 없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분위기가 전해졌다. 

    IR에 참석한 한 외국인 기관투자가는 "다수 업체가 내년까지 CAPEX 예산을 검토하고 하향 조정하고 있는데 삼성전자도 지출이 당분간 감소할 거라 봐도 맞을까"라고 물었다. 돌아온 삼성전자 측 답변은 "그동안 계속해서 강조해온 투자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였다.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약세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기존 방침 외에 구체적으로 답변할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그간 삼성전자가 IR에서 투자를 늘리겠다, 줄이겠다 구체적으로 답변해오지 않았던 만큼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방향성마저 추측하기 어려운 답변이 돌아온 터라 시장으로선 내년 이후를 고민하기가 더 복잡해지게 됐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시장이 원하는 건 당장 내년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이냐 정도다"라며 "올 하반기는 물론 내년 시장 수요를 점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공급 측면에서라도 확실한 변수를 가려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내년 이후 투자 계획에 대해 평소보다 더 말하기 곤란한 상황이기도 하다. 투자가들의 바람과는 달리 각국 정부 차원에서 삼성전자의 투자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전에 없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외신에선 삼성전자가 텍사스주 감사관실에 제출한 세제 혜택 신청서를 통해 20년 동안 미국에 반도체 공장 11곳을 신설하는 중장기 계획을 검토 중인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공급망 재편과 '칩(chip) 4' 동맹 이슈에서 사실상 미국 측 요구에 응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미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시에 170억달러(원화 약 22조원) 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더군다나 국내에서도 새 정부 차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론에 재차 군불을 때고 있다. 그간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의 거취에 따라 투자와 고용 계획을 확장해 발표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 계획을 언급하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 삼성전자가 구태여 경쟁사처럼 보수적인 투자 기조로 돌아설 필요가 적다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전자의 원가 경쟁력과 제품 포트폴리오, 재무 여력이 월등한 만큼 기존 투자 계획을 이어가면서 경쟁사와 격차를 벌릴 수 있다는 얘기다.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으로 시장 수요 전반이 둔화하고 있어도 필수 인프라 투자와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는 비교적 타격이 덜한 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이번 분기 서버향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분기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경쟁사 역시 제품 믹스를 통해 시장 수요 둔화에 대응했지만 수율과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삼성전자 수준의 성과를 달성하진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