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로 기수 돌리는 LG화학, 아베오 인수로 '상업화 실패' 기억 지울까
입력 22.10.24 07:00
LG화학, 美제약사 아베오 100% 8000억에 인수
회사 "세계 최대 미국 시장 진출에 시너지 기대"
'상업화 실패' 경험에…FDA 승인 신약 입장권 구입
글로벌 경영 보폭 넓히는 구광모…추가 투자 주목
  • LG화학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신장암 치료제를 보유한 미국 제약회사 아베오 파마슈티컬스(AVEO Pharmaceuticals, 이하 아베오)를 인수한다. 창사 후 최대 규모 M&A(인수합병)로 배터리 부문을 분할한 뒤 신성장동력으로 내건 '글로벌 혁신 신약' 목표 달성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신약 성공을 위해선 미국 시장이 중요한 만큼, 현지 회사를 인수해 시너지를 노린다는 기대다. LG화학은 과거 신약을 개발하고도 상업화에 실패한 사례가 있었는데 아베오 인수가 반전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LG화학은 18일 미국 바이오 기업인 아베오의 지분 100%를 5억6600만달러(한화 약 8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아베오 주식을 1주당 15달러에 사들인다. 발표 당일 아베오 종가(10.48달러) 대비 43%, 최근 30거래일 평균 종가에 비해선 71%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향후 아베오 주주총회의 과반 승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 심의 등 절차를 거쳐 3~6개월 안에 합병이 완료될 전망이다.

    LG화학은 보유 자산과 가용 현금을 활용해 아베오 인수대금을 충당한다. 회사는 19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기업설명회에서 “현재 외화 예금만으로도 기본 인수자금은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만 내년 전지 부문 등에서 투자 증가가 예상되므로 외부에서 일정부분 자금 조달이 필요할 것”이라며 “외부 조달에 앞서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거나 자산 일부를 매각하는 등 자산 효율화를 선행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아베오 인수는 '배터리 빠진' LG화학이 제시한 ‘3대 신성장 동력’ 투자의 일환이다. 회사는 작년 7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기반한 신성장 동력으로 ▲친환경 지속가능성 사업 ▲전지 소재 ▲글로벌 혁신 신약을 선정하고, 2025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생명과학사업본부는 2030년까지 혁신 신약을 2개 이상 보유한 글로벌 신약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신약사업에만 1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아베오는 FDA 승인을 받은 신장암 치료체 포티브다(Fotivda)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FDA 승인 신약을 보유한 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처음이다. LG화학은 이번 인수로 글로벌 임상 개발 가속화를 통한 성공 확률 제고와 허가 및 상업화 역량을 확보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 시장 내 출시된 제품 확보로 미국 항암 시장에 조기 진출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M&A는 세계 최대인 미국 시장 진출 교두보가 필요한 LG화학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파이프라인을 강화하고 사업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아베오의 욕구가 맞아떨어져 성사됐다는 분석이다.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 사장은 “미국은 글로벌 제약시장의 40%를 차지하는 시장으로, 상업화 역량과 성장성을 보유한 기업을 대상으로 2019년부터 M&A 대상을 물색해왔다”며 “아베오사를 통해 미국 항암시장 진출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오는 2010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FDA의 허가 거절, 잇따른 주주들의 집단 소송과 투자 유치 실패,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까지 험난한 길을 걸었다. 2021년 FDA로부터 포티브다가 허가를 받은 후 매출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회사는 작년 매출은 600억원(4200만달러), 영업적자 710억원(5000만달러)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흑자 전환과 파이프라인 확대를 위해선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미국 현지에선 아베오가 지난한 여정을 마치고 든든한 우군을 잡았다는 반응도 나온다. M&A 소식 발표 후 18일(현지시간) 아베오 주가는 전일 대비 42.37% 급등한 14.92 달러로 마감했다.

    LG화학이 아베오를 통해 뼈아픈 ‘상업화 실패’를 극복할 전기를 마련할지 기대가 모인다. 지난 2003년 LG화학(당시 LG생명과학)은 국내 최초로 미국 FDA로부터 허가를 받은 항생제 신약 ‘팩티브’를 내놓았다. 10년 넘게 3000억원의 개발비를 쏟아부어 신약을 개발했지만 매출은 미미했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았다. 공들인 신약이 실패한 데는 경쟁이 치열한 제약 시장에서의 상업화 전략 부재가 컸다는 지적이다.

    LG화학 측은 이번 인수로 기대되는 아베오사의 역할로 ‘상업화 역량’을 거듭 강조했다. 미국은 보험, 약가제도, 유통구조 등이 국내와 다른 체계로 운영돼 신약 개발 단계부터 현지에 특화된 상업화 역량이 요구된다. LG화학이 파이프라인 확대와 연구개발 역량을 담당하고 아베오사가 미국 규제당국의 인허가와 상업화, 후기 임상 등의 부문에서 시너지를 낼 것이란 기대다. 다만 LG화학 주가는 아베오 인수 발표 후 하락 전환했다. 개인 주주 사이에선 어려운 시기 적자 기업을 비싸게 샀다는 평가도 나온다.

  • LG그룹은 아베오 M&A로 ‘글로벌·미래먹거리’ 방향성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작년까지 LG전자의 '군살 빼기' 작업이 마무리된 만큼 올해부터는 다른 계열사들의 확장 행보가 분주해질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친환경 사업(클린테크), 인공지능(AI), 바이오, 배터리 등을 미래 먹거리로 주목해왔다. 9월 사장단 워크숍에서도 미래 먹거리 강화를 주문했다. 구 회장은 연이은 해외 출장으로 글로벌 사업 점검에 나서고 있다. 이달 초 취임 후 처음으로 폴란드 주요 계열사 사업장을 방문했고, 최근엔 미국의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1공장을 방문했다. 

    올해 LG그룹의 계열사들도 미국 현지 M&A를 진행했다. LG생활건강은 지난 4월 미국 화장품 회사 더크렘샵(The Crème Shop)의 지분 65%를 1억2000만달러(약 1400억원)에 샀고, 지난해 8월 하이엔드 헤어케어 브랜드 알틱 폭스(Artic Fox)를 보유한 미국의 보인카(Boinca)지분 지분 56.04%를 1억달러(약 117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아베오 M&A에서 LG화학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와 미국 로펌 레이텀 앤 왓킨스(Latham&Watkins)의 도움을 받았다. 아베오 측은 투자은행 모엘리스앤컴퍼니가 재무 자문, 법무법인 윌머헤일(WilmerHale)이 법률 자문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