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의 공격적인 사업·재무 전략, 굳건했던 롯데그룹 신용도 흔들었다
입력 22.11.24 07:00
롯데그룹 계열사 등급전망 줄줄이 하향돼
'악재들' 겹쳐…롯데건설 유동성 위기 결정적
공격적으로 사업장 늘려왔지만 재무관리 미흡
"노골적으로 단기간 조단위 자금조달은 이례적" 평가
"올해만 넘기자"…연말 롯데건설 신용 평가도 주목
  • 롯데건설발 유동성 위기로 굳건했던 롯데그룹의 신용도가 흔들리고 있다. 롯데는 그룹 자체 자금뿐 아니라 외부 차입, 신동빈 회장의 사재까지 동원하며 급한 불을 끄고 있다. 롯데그룹 ‘초유의 사태’는 어려운 시장 환경 등 종합적인 요인이 겹친 결과지만 결정적으로는 롯데건설이 공격적인 외형 확장에만 집중한 채 리스크 관리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이달 신용평가사들은 유동성 우려가 계속되는 롯데 그룹 계열사들의 등급전망을 연이어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각 신평사마다 등급조정 논거가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그룹 내 최고 신용도를 보유한 롯데케미칼(AA+)의 등급전망이 조정되면서 롯데지주(AA)가 영향을 받았고, 통합신용도 하락이 예상되면서 롯데물산, 롯데캐피탈, 롯데렌탈, 롯데오토리스 등의 계열사들의 등급전망도 변경됐다.

    ‘재계 5위’ 롯데의 주요 계열사 등급전망이 줄줄이 하향되는 드문 일은 여러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겹치면서 나타났다.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바이오 산업 진출 등 여러 조단위 투자가 진행 중이다. 이 와중에 금리 상승 기조와 레고랜드 사태 이후 PF 유동화시장의 경색이 빠르게 진행되며 롯데건설의 유동성 이슈가 급부상했다. 

    복합적인 결과지만 ‘굳건했던’ 롯데그룹의 신용도를 흔든 건 결정적으로 롯데건설의 PF 우발채무발 유동성 악화였다. 시장에선 롯데케미칼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부담을 통상 대규모 M&A(인수합병)에 수반되는 재무부담 수준으로 예상됐다. 다만 ‘계열사 지원’ 자금지출이 복병으로 떠오르면서 신용도 하향압력까지 이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NICE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전망 변경과 관련해 “롯데건설에 대한 자금지원으로 재무부담이 가중되었으며, 인도네시아 LINE 프로젝트와 함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결정에 따른 지분인수 자금 부담 등을 고려하면 중단기적으로 자금부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롯데건설은 한달 새 계열사들로부터 1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수혈받으면서 그룹 유동성의 ‘블랙홀’이 됐다. 롯데건설은 롯데케미칼로부터 5000억원의 자금대여에 이어 롯데정밀화학과 우리홈쇼핑으로부터 4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최근의 17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1억원가량의 사재를 출연했다. 그룹의 지원도 모자라자 은행 등 외부 차입도 늘리고 있다. 

    한 신평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안정적인 재무구조로 신용도를 유지해왔지만 현재는 현 등급 대비 과거 수준을 유지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판단되면서 등급전망 변경에 들어간 것”이라며 “5대그룹 중에 계열사로부터 이렇게 단기간에 노골적으로 조단위의 금액을 조달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 시장에서도 우려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 모두가 어려운 시장환경에도 불구하고 '유독' 롯데건설의 유동성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것은 결국 롯데건설이 리스크 관리에 미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롯데건설의 PF우발채무 규모는 동일 등급 건설사 대비 압도적으로 높다. 롯데건설의 공격적인 영업 행태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아파트 등 사업장 당 2000억~3000억원 규모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사업장 규모 자체가 매우 커진 점도 고려된다. 건설 단가도 높아져 몇 개의 사업장만 늘어나도 조 단위의 PF 대출이 생길 수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롯데건설의 유난히 많은 PF대출 규모는 같은 기간 동안 타 건설사보다 사업장을 많이 벌인 결과”라며 “과거 상당히 사업을 공격적으로 벌여온건데, 호황에는 무리가 없겠지만 급박한 사업환경 변화가 오면 부담이 집중된다”고 말했다.

    단기간 외형 확장을 위해 레버리지를 크게 올렸지만 재무 위험 관리는 미흡했다. 앞서 신평업계에선 롯데건설의 단기 자금조달 구조에 대해 우려하며 PF 우발채무와 관련한 유동성 리스크관리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한국기업평가는 2021년 6월 롯데건설 정기평가에서 롯데건설의 PF 우발채무 절대적인 규모가 회사의 재무구조를 감안할 때 과중한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기평은 당시 리포트에서 “대부분의 PF 우발채무가 6개월 내 만기가 도래하는 ABCP(ABSTB)로 구성된 가운데 변형된 PF 우발채무 중 자금보충 약정의 경우 유동화증권의 상환·차환 재원이 부족할 경우 회사가 실질적인 상환·차환 의무를 부담할 수 있다”며 “일반적인 금융시장 환경에서는 차환에 큰 문제가 없으나, 금융시장이 경색될 경우 만기도래 PF 유동화증권의 차환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내 만기가 도래하는 롯데건설의 PF ABCP 등 신용연계 유동화증권 규모는 3조1000억원(정비사업 관련 3000억원 포함)에 이른다. 롯데건설의 현금성 자산 등은 2022년 9월말 별도기준 7000억원 규모다. 그룹 차원의 유증과 차입, 은행권 자금조달로 단기적 대응은 가능하겠지만, 중장기적인 상환 일정을 고려하면 추가 자금 조달이 필요할 수 있다. 

    자금난이 이어지자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이사는 최근 사의를 표명했다. 하 대표는 지난 6년 간 롯데건설의 수장을 맡아왔고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될 예정이었다. 

    다른 신평업계 관계자는 “롯데건설이 PF 비중이 높아 시장에선 우려가 나오고 있던 바이지만 이렇게 시장이 급랭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며 “일시에 조 단위의 자금을 조달하려고 하면 롯데뿐 아니라 어디나 힘든 시장이다. 리스크 관리가 적절히 이뤄지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시장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롯데 측은 최대한 그룹의 가용자금을 총동원해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일단 “올해를 넘기는 것이 최우선”이란 평이 지배적이다. 정부 지원책 등으로 시장이 다소 숨통이 트인 점은 긍정적이란 관측이다. 해가 바뀌면 투자자들도 새 북을 열기 때문에 여건이 나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가오는 연말 건설사 등급 정기평가도 주목된다. 신평사들은 건설업계 상황과 롯데건설 상황을 총체적으로 분석해 등급 평정에 나설 예정이다. 현재 신평사들은 회사 측과의 지속적인 면담과 더불어 이전보다 훨씬 상세한 자료를 요구하며 리스크 분석에 나섰다. 회사의 대응 계획, 사업 현황뿐 아니라 주·월단위로 유동화증권 차환 내역과 금액, 만기 등을 파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