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전방위 재무부담 우려에…반년 새 뒤집히는 전략 기조
입력 22.12.02 07:00
올해도 파이낸셜 스토리 독려했지만 성과 미미
돈 쓸 곳 많은데 실적 침체에 재무구조도 악화
자금 확보 우선…당분간 보수적 기조 이어질 듯
  • SK그룹은 올해도 ‘파이낸셜 스토리’를 적극 펼쳤으나 하반기로 갈수록 실행 동력이 약해지는 모습이다. 지난 몇 년간 자본성, 차입성 가리지 않고 자금을 유치했던 것이 이제는 경기 부진과 시장금리 상승 등 여파로 짐이 되고 있다. 그룹의 기초 체력은 탄탄하지만 워낙 돈 들어갈 사업이 많다 보니 유동성 공급 라인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내년에도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SK그룹은 당분간 일을 벌리기 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2년 전 파이낸셜 스토리를 주창한 후 자본시장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1년 전부터 유동성의 힘이 줄어드는 분위기에도 적극적인 확장 전략을 고수했지만, 몇 달 사이 시장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다. 돈이 마르니 어떤 성장 청사진을 제시해도 시장의 호응을 얻기 어려웠다. 주가는 부진하고, 자금 조달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울산콤플렉스에 2027년까지 5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포드와 합작사 블루오벌SK에는 올해 내내 설비 자금을 내려보내고 있다. 유가 상승, 정제마진 강세로 돈을 잘 벌고 있지만 투자금을 모두 충당하기엔 부족하다. SK온 상장전투자유치는 ‘4월 투자자 확정’ ‘상반기 중 계약 체결’ 등 계획이 늦어지고 투자 규모와 조건도 계속 바뀌었다. 한국투자금융그룹 지원에 힘입어 투자유치 계약을 체결했지만 우선 확정된 금액은 7000억원 수준이다. LG화학 주가는 물적분할 논란을 딛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SK이노베이션은 아직 주가가 부진한 터라 투자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 다른 계열사 주가도 부진하다. SK㈜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 모두 연초 시작점보다 낮은 주가를 보이고 있다. 시장 환경상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올해는 ‘주가 상승’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색하다.

    파이낸셜 스토리는 차질을 빚었다. SK쉴더스와 원스토어는 마지막까지 상장의 끈을 놓지 않았으나 5월 잇따라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낮아진 기업가치로는 재무적투자자(FI)를 내보내기도 쉽지 않았다. 줄줄이 대기 중이던 계열사 상장도 멈췄다. 박정호 부회장은 계획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SK스퀘어는 SK쉴더스의 FI 보유지분과 신주를 해외 사모펀드(PEF) EQT파트너스에 매각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경영권 지분을 넘길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EQT 내부에선 언젠가 발을 빼야 하는데 굳이 경영권을 확보해야 하냐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가치가 1조원 안팎으로 떨어진 11번가의 지분을 활용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SK하이닉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차입금이 20조원을 넘어섰고 작년말 인수한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솔리다임)도 불안하다. 인수자금 중 일부는 국책은행 등으로부터 달러로 빌렸는데, 1년 사이 환율이 올라 상환 부담이 늘었다. 빚은 일정대로 잘 갚고 있지만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것이 더 걱정이다. 비용 부담 때문에 내년 초 미국에서 열리는 ‘CES 2023’ 파견단 규모를 줄일 것이란 소문도 들린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시장이 침체하고 솔리다임도 미-중 갈등으로 투자 위험이 커진 상황이라 내년 실적이 부진할 가능성이 크다”며 “일각에선 증자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SK스퀘어도 그럴 여유는 없다”고 말했다.

    SK스퀘어의 재무 계획이 틀어지며 SK텔레콤이 투자 활동의 앞단에 설 것이란 시각이 있다. SK텔레콤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보이며 투자 여력이 있다. 다만 최근엔 소극적으로 돌아선 분위기다. 메디트 등 주요 거래를 살폈지만 ‘검토’ 수준이고, 소수지분 투자에 더 집중하고 있다.

  • SK그룹 계열사의 재무부담은 일제히 늘고 있다. 보유 자산을 팔거나, 투자유치를 받는 데 한계가 있으니 차입 부담이 점차 커지는 모습이다. 사업은 부진한데 금융비용은 늘어난다. 원하는 시기에 최우대 조건을 챙기며 자금을 빌리던 시기도 지났다. SK그룹 수뇌부는 ‘문제 없다’고 강조하지만, 12월에 회사채 시장을 기웃거리고 단기 기업어음(CP)을 발행하는 등 행보를 감안하면 아주 여유로운 상황으로 보기는 어렵다. 계열사들이 앞다퉈 유치했던 FI의 존재는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 SK네트웍스의 한 축인 SK매직의 매각 가능성도 거론된다.

    SK그룹은 국내외 투자금 중 상당 부분을 국책은행에서도 조달해 왔다. 그간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던 만큼 계열한도가 대부분 목에 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빌려주고 싶어도 일단 일부 자금을 먼저 상환받아야 가능하다. 상황이 이러니 SK그룹은 시중은행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지금 돈이 있는 곳은 은행뿐이고, 은행 대출은 회사채 시장보다 금리 인상 반영도 늦기 때문이다.

    SK㈜의 부담도 늘고 있다. 돈이 많을 때야 각 계열사와 ‘따로 또 같이’ 투자 활동을 적극 전개했지만 지금은 실탄이 마땅치 않다. 계열사들이 올리는 배당은 줄어들고, 재무지표는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하향 검토 요인에 가까워지고 있다. 계열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롯데그룹처럼 전사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미지수다. SK㈜와 SK E&S가 작년 초 주당 29달러에 투자한 플러그파워 주가는 최근 15달러 수준이다. 결과론적이지만 일각에선 공동 투자에 나서지 않길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갈수록 시장 상황이 악화하니 SK그룹도 기존 전략을 고수하기만은 어려운 상황이다. 하반기 들어선 특히 보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수뇌부가 내놓는 메시지의 결도 다소 달라진 모습이다. 상반기까지는 기존 계획을 관철하기 위한 ‘전략 수정’을 주문했다면, 이제는 그보다는 추상적인 ‘ESG’ 언급 빈도가 늘어난 상황이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스타트업 행사에서 ‘지금은 소나기가 내리고 있으니, 일단 비를 피하고 내년 말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며 위기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은 하반기 들어 진행이 많이 됐거나 꼭 필요한 투자나 거래가 아니면 신중하자는 분위기로 돌아섰다”며 “계열사들도 당분간 대형 M&A보다는 소수지분에 투자해 발만 걸치는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