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가 바라는 재상장의 시점은 올까
입력 23.01.11 07:01
취재노트
거듭된 번복에 피로감 누적·FI 2년 락업 전례 생성
컬리 재상장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장…"전면 개선돼야"
  •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에 화려하게 데뷔 무대를 치룬 2021년 3월. 컬리 또한 미국 나스닥 상장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코로나 확산으로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이커머스 시장이 주목받던 시기다. 국내에 신선식품 배송을 처음으로 도입시킨 이 기업의 철학과 콜드체인 시스템 등에 다수의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분위기만 보면, 조(兆) 단위 몸값은 문제가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컬리는 4개월 만에 국내 상장으로 계획을 틀어버린다. 여러 이유가 거론되지만,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의 국내 상장 회유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당시 국내 벤처기업들이 차등의결권 등을 이유로 미국 증시에 상장하려는 수요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거래소의 고민이 컸다.

    결정 번복에 따라 컬리는 곧 '소문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업'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컬리가 국내 증시에 상장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더라"라는 얘기를 시작으로, 적자 기업인 컬리가 활용할 기업가치 방법론 PSR(주가매출비율)에 대한 정당성, 복잡한 주주구성과 이들이 보유한 상환전환우선주(RCPS) 전환 리스크 등에 대한 논의가 도마 위에 올랐다.

    거래소 상장 예비심사(이하 예심) 통과도 쉽지 않았다. 통상 예심은 2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컬리의 경우 이례적으로 5개월가량 진행됐다.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투자유치를 받아 현금을 확보해왔던 탓에 김슬아 컬리 대표의 지분율이 낮았던 점이 특히 발목을 잡았다.

    결국 주요 재무적투자자(FI)들이 보유지분에 6개월~2년의 보호예수(락업)를 걸고 의결권을 공동행사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예심을 통과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한 반감도 상당했다. 통상 FI들은 보유 지분에 대해 락업 기간이 의무 부여되지 않음에도 상장 추진을 위해 2년 락업을 요구받는 전례를 남겼다. 실적을 내지 못하지만 성장성이 있는 국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투자 의욕을 꺾을 것이란 우려가 빗발쳤다.

    늦게나마 예심을 통과한 것을 두고도 컬리의 기업가치에 의문을 가진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거래소 측에서 기업가치에 대해선 시장에서 알아서 평가받도록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컬리가 예심을 통과한 지난해 8월, 컬리의 몸값은 홍콩계 사모펀드(PEF)인 앵커PE가 인정해준 4조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증시 불황에 컬리의 장외 주가마저 꺾이며, 지난해 말까지 컬리의 예상 기업가치는 8000억원대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2년 가까이 이어졌던 컬리의 상장 도전기는 결국 '철회'로 끝을 맺었다. 유례 없는 기업공개(IPO) 시장 호황기를 지나 수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갈지(之)자 행보를 거듭하다가 결국 실기(失期)를 했다는 평가다.

    컬리는 후일에 있을 적기를 기다릴 것이라고 재상장 추진 의지를 밝혔다. 다만 IPO 실무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왜일까. 

    이미 컬리가 '자기객관화가 안 된 기업은 상장이 어렵다'라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IPO 시장의 분위기가 급격히 꺾이더라도 기업가치에 대한 눈높이를 다소 낮춤으로써 상장 시기를 살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컬리가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접촉한 다수의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피로도가 상당했다고 토로한다.

    상장 이후 기업가치가 1조원 아래로 떨어진 쏘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분위기다. 기대한 만큼 공모자금을 조달하진 못했어도 추후 주식시장을 활용한 자금 조달로를 확보했다는 이유에서다. 

    VC업계나 IPO 실무진들은 여전히 컬리의 번복에 의문을 품고 있는 상황이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컬리의 재상장 언급에 "기존 투자자들에게 추가 투자를 받기로 한 것인가, 아니면 뭔가 자금조달 측면에서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또다른 IPO 담당 실무진은 "상장을 아예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철회 직전까지 상장에 문제 없다고 얘기를 한 걸 보면 신뢰를 쌓는 건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배구조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김 대표의 지분은 5%대로 거론되는데, 컬리가 향후 상장을 재도전하려면 예심 때 발목을 잡은 지배구조의 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령 한 FI가 수많은 FI들의 지분을 매입해 대주주로 오르는 안이 거론되기도 하는데 다만 누가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업적으로는 어떨까. 일각에선 론칭 초기부터 블랙핑크 멤버 제니를 모델로 내세워 호응을 이끌어낸 '뷰티컬리'나 온라인 소통을 가능케하는 '컬리로그'를 통해 마케팅 포인트를 새로이 제시할 것이고 얘기한다. 컬리 또한 상장 철회 소식을 전하며 "지속 성장을 바탕으로 재상장에 도전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체성 희석은 불가피해보인다. 매출 여부가 중요해진 현 분위기 속에서 실적이 나오는 뷰티컬리를 활용할 순 있겠지만, '가격을 올린 쿠팡'이나 '오프라인 매장이 없는 올리브영' 정도로 포지셔닝이 될 수 있다. 쿠팡이 '저가'를, 올리브영이 '오프라인 매장 활용법'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았던 것을 감안하면 양쪽 모두 소구점을 찾긴 쉽지 않다. 컬리로그 또한 성장주의 시대가 다시금 오지 않는 한 가치를 매기기 어렵다. 

    시장은 컬리가 재상장을 위해 신선식품 배송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버리는 걸 원치 않는 분위기다. 애초에 그게 컬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고 기업가치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Show me the money"가 중요해진 현 시점에선 의미가 퇴색됐다. 그렇다고 뷰티를 앞세우자니 기업가치 툴과 비교대상을 싹 다 새로 바꿔야 하고 그게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지는 모른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딜레마'다.

    김슬아 대표의 컬리 지분은 5년새 28%에서 6%대로 떨어졌다. 투자회수(EXIT) 방법을 두고 FI들의 고민 시간만 길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