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상장 막오르지만…모호해진 차별화·'승자 독식'에 몸값 주춤
입력 23.01.18 07:00
컬리는 상장 철회, 오아시스는 내달 상장 도전
이커머스 몸값 눈높이 괴리 커질듯…시장 '냉정'
쿠팡 위주 재편 가속화·이커머스 시장 성장 둔화
  • 이커머스 시장이 여러 의미로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 최대어 중 하나로 꼽혔던 컬리는 결국 상장 연기를 택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업체 오아시스가 내달 코스닥 시장에 입성하면 ‘이커머스 상장 1호’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지금까지 ‘거론’만 되던 이커머스 기업의 기업가치(밸류)가 본격적으로 주식 시장에서 평가받기 시작할 전망이다. 

    SSG닷컴, 11번가 등 후발주자들의 행보도 주목되는 가운데 이커머스 업체의 ‘몸값’을 두고 시장과 기업 간의 간극은 더 좁히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쿠팡과 그 외’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차별화가 어려워졌고 롯데, 이마트, 홈플러스 등 유통 대형사들이 온라인 전략 효율화에 나서면서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오아시스는 다음달 수요예측 및 일반청약 절차를 거친 후 상장할 계획이다. 희망 공모가(3만500~3만9500원)에 의하면 예상 시가총액은 9679억~1조2535억원 규모다. 지난해 6월 이랜드리테일이 오아시스 지분 3%를 인수할 때 이 회사의 기업가치를 1조1000억원으로 평가했는데, 공모가 하단 기준으로는 지난해보다 기업가치가 떨어진 셈이다. 

    오아시스는 컬리, SSG닷컴 등 경쟁사들이 국내 시장에 상장 돼있지 않아 비교 그룹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된 메르카도리브레(Mercadolibre), 씨(Sea), 쿠팡, 엣시(Etsy) 등을 제시했다. 오아시스는 지난해 3분기 매출액 3118억원, 영업이익 77억원을 기록하는 등 흑자경영을 내세우고 있지만 비교기업들에 비해 사업 규모는 현저히 작다. 

    컬리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몸값이 급락하면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상장을 연기했다. 한때 시장에서 7조원까지도 거론됐던 컬리의 기업가치는 1조원대로 떨어졌다. 1년여전 프리IPO에서 인정받은 4조원보다도 한참 떨어진 수치다. 

    컬리가 상장을 언제쯤 재추진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컬리는 시장 여건이 나아지고, 신사업 등을 강화해 재상장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재무구조 관리도 숙제다. 컬리는 2021년 217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전년(1163억원) 대비 손실 규모가 87.2% 커졌다.

    컬리와 오아시스의 행보에 상장을 준비하던 다른 이커머스 기업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1번가와 SSG닷컴 모두 주관사를 선정한 상태지만 구체적 상장 일정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컬리를 비롯해 이커머스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원하는’ 몸값을 받을 시기가 올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의 눈높이는 여전한데 시장에서 이커머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점점 더 냉정해지고 있다. 

  • 국내 이커머스 시장 재편이 가속화하면서 각각 업체들이 내세우는 ‘차별화 전략’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점이 크다. 지난해 쿠팡·네이버 등 상위 사업자의 지위가 공고해지면서 국내 시장에서 ‘절대강자’는 없지만 쿠팡과 네이버 ‘양강 체제’가 굳건해지고 있다. 

    쿠팡·네이버·SSG닷컴 등 이커머스 3사의 총 시장 점유율은 월간활성사용자수(MAU) 기준 83.3% 수준이다. 모바일인덱스가 조사한 지난해 7월 기준 MAU는 쿠팡이 2766만명(40.2%), 네이버 2000만명(29.1%), SSG닷컴+G마켓글로벌 990만명(14.4%)이다.

    지난해를 기점으로는 사실상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쿠팡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쿠팡은 지난해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7% 성장했고 영업이익 1300억원을 기록했다. 

    쿠팡의 실적 개선은 구조적인 현상으로 올해 실적 성장 폭이 더욱 확대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네이버와 롯데온, 이베이코리아 등 주요 이커머스의 시장 점유율이 답보 상태인 가운데 쿠팡의 시장 점유율은 1년 새 2.9%p 상승하며 하위 업체들과 시장 점유율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사실상 쿠팡이 국내 이커머스 시장 주도권을 굳혔다는 평이 나오는데, 다른 업체들이 시장 내 파이를 키우기는 더욱 어려워진 셈이다. 이커머스 시장 규모 확대로 가격과 상품 퀄리티는 사실상 평준화한 가운데 여러 이커머스 업체들이 기술·플랫폼을 고도화하고, 카테고리 상품을 강화하고, 배송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차별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결정타’를 치기는 쉽지 않다. 

    컬리의 경우도 ‘뷰티컬리’ 등 신사업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과거 시장이 적자 기업인 컬리에 높은 점수를 줬던 것은 ‘샛별배송’이라는 전에 없던 서비스를 선보였다는 상징성과 프리미엄 식품 위주라는 ‘컬리만의 색깔’이 핵심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 쿠팡을 제외한 다른 이커머스 기업들은 투자도 더 못하고, 쿠팡을 따라가기 힘드니 고육지책으로 소위 ‘전략’들을 내놓고 있는 것”이라며 “네이버는 유통사라기보단 사업중개 서비스라 본질 경쟁력이 다르고, 비슷하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이 이젠 쿠팡과 ‘그 외’로 나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의 패러다임이 온라인 쪽으로 향하는 것은 맞지만,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점도 이커머스의 고밸류를 마냥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2022년 온라인 유통 시장 성장률은 YoY(전년대비) 10% 수준에 그쳤다. 이에 오프라인 중심 대형 유통사들은 온라인 유통 시장 전략을 재정비하며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롯데마트는 새벽배송 시장에서 철수하고 상품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마트 등 주요 오프라인 업체들이 전국 점포를 기반으로 배송 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은 컬리나 오아시스 등 업체들에는 위협 요소다. 홈플러스는 ‘오늘밤 마트직송’, ‘즉시배송’ 등 대형마트 배송 서비스를 다각화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2021회계연도 기준 온라인 매출이 1조원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