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간 자존심 경쟁 치열한 대형 법무법인들
입력 23.02.03 07:00
로펌간 매출 경쟁 치열…태평양-광장, 율촌-세종 라이벌 구도
세종, 인력·매출 성장 두각…율촌, 4위 수성·3천억 진입 성과
태평양, 해외 포함 4천억 눈앞…광장은 국내 기준 최대 매출
시장 침체에 경영진 판단 중요성…인재 영입·먹거리 선점 과제
  • 대형 법무법인에 있어 매출은 곧 경쟁력이고 이름값이다. 인적 구성이 탄탄하고 수임을 잘 한다는 징표와 같다. 한 번 고삐를 느슨히 쥐어 실적이 꺾이면 그 파장이 여러 해 동안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매출이 늘어야 구성원들이 가져갈 파이도 커지고, 경영진이 재신임을 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경영진 입장에선 외부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든 꾸준한 실적을 내야 한다. 특히 경쟁사를 앞지르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실적 결산 시즌이 되면 긴장감이 흐른다. 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 자료를 파악하는 것이 연례 행사고, 어느 범위까지 매출을 포함해야 하느냐도 빠지지 않는 논쟁 거리다.

    김앤장의 독주는 계속됐다. 2017년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고 작년에도 1조3000억원(추정)을 벌었다. 국내 대형 거래와 송무에 빠짐없이 참여했고, 해외 고객과 네트워크도 굳건하다. 크로스보더(국경간거래)나 국제적 다툼이 있는 사안에서는 어김없이 김앤장(해외) vs. 나머지 법인(국내)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달러화로 결제하는 고객이 많아 작년 고환율에 따른 반사이익을 봤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곳은 세종이다. 세종은 과거 해외에서 'SHIN&KIM'으로 김앤장 다음 가는 인지도를 갖고 있었지만 오랜 기간 방향성 설정에 실패하며 부진을 겪었다. 보수적인 내부 문화가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2021년 오종한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8기) 체제에서 변화가 생겼다. 연공서열보다 성과에 기반한 보상체계를 만들었고, 40대 젊은 운영위원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인재 영입과 매출 성장세도 주목받았다. 백제흠(조세), 최충인(M&A), 주현영(공정거래) 등 경쟁사 핵심 인력들을 후한 조건을 제시해 잇따라 영입했다. 태평양을 제치고 국내 변호사 수 3위에 오른 것도 상징적이다.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10% 이상 늘어 처음으로 3000억원(해외 포함)을 넘어섰다. 작년 10월까지는 전년 대비 15% 이상 매출 성장세를 보이며 율촌을 앞지를 것이란 기대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때 1200억원까지 벌어졌던 2위그룹과 격차도 좁혔다.

    세종 측은 “인재 영입을 통해 세무, M&A 등 부족한 분야를 보강했고 이를 통해 매출 증대 효과를 봤다”며 “태평양, 광장과 격차가 많이 줄었고 율촌과도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진검승부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율촌은 강석훈 총괄대표변호사(19기)의 연임 임기 첫해 처음으로 매출 3000억원대에 진입했다. 전년 대비 10%대 성장세를 보였다. 국내 매출만 따져도 3040억원에 이른다. 율촌은 1월말 결산 법인으로, 작년 1월 대신 올해 1월 실적을 반영하면 매출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율촌은 M&A, 세무, 공정거래 등 주력 영역의 성장세가 둔화했지만 중대재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새로운 먹거리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턱밑까지 따라 붙은 세종을 의식해서 매출 증대 총력전을 펼쳤다.

    율촌은 올해 지평의 노동 그룹장 이광선 변호사 팀을 영입했다. 이 변호사는 노동 자문 분야 최고 전문가로 지평에서 매출 기여도도 컸던 터라 올해 실적 향상에 큰 힘을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율촌 집행부는 이 외에도 경쟁사 및 중소형사의 변호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형 자문 일감 공백은 중소형 자문 여러 건으로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율촌 측은 “세종이 전사적으로 율촌을 쫓아오니 구성원들이 이를 의식해 한 해 열심히 한 것 같다”며 “작년 모든 분야가 골고루 성장했는데 올해는 이광선 변호사도 영입한 만큼 퀀텀점프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태평양과 광장의 2위 각축도 이어졌는데 법률자문 시장 침체 탓에 열기는 예년만 못한 분위기였다. 두 법인은 지난 10년간 2배의 성장세를 보였지만, 작년엔 전년 대비 2%대 성장에 그쳤다. 이번에는 막판까지 실적 공개 여부를 두고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태평양은 매출 4000억원대 진입을 눈앞에 뒀다. 특허 및 해외법인을 포함한 금액으로, 내년 중 김앤장 이후 처음으로 4000억원 고지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로펌들이 해외 사업에 공을 들이는 상황이고, 관련 사업들도 법무법인의 실질적인 역량에 포함된다 볼 수 있다. 아메리칸로이어(ALM) 등 해외 전문지는 국내외 합산 매출을 기준으로 순위를 평가하기도 한다. 이에 따른다면 태평양은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도 2위 수성이다.

    태평양은 작년 이베이코리아 인수, 요기요 매각 등 M&A를 도왔고 론스타와의 투자자-국가 간국제중재(ISDS) 사건에서 우리 정부를 도와 성과를 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해 왔다. 국내 최초로 365일, 24시간 가동되는 중대재해 ‘종합상황실’ 체제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먼저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상황에 따라 조직을 키우니 일감도 먼저 따라 붙는 사례가 많았다. 서동우 업무집행대표변호사(16기) 등 경영진은 작년 초봉을 대폭 올리며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태평양 측은 “지속적인 성장 배경에는 글로벌 로펌으로 도약하기 위한 꾸준한 투자가 있었다”며 “특히 자문과 송무 분야의 균형과 내실 있는 성장을 토대로 신사업 및 해외 부문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고스란히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광장은 작년 376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세청 부가세 신고액 기준 국내 대형 법무법인 중 가장 많다. 전통적으로 금융, M&A 등 분야에 강점을 보이는데 작년 시장 침체에도 불구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기업 고객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고, 경쟁사 대비 ‘허리급’ 변호사가 강한 만큼 올해 M&A 시장이 회복되면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

    광장 측은 “M&A가 급감했음에도 M&A 팀이 상대적으로 선방하며 매출을 견인했고 금융규제팀 등 규제 관련 대응팀에 대한 투자도 매출로 돌아오고 있다”며 “매년 태평양과 순위가 뒤바뀌었는데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2연승을 기록하며 선두 자리를 공고히 했다”고 말했다.

    광장은 작년부터 김상곤(23기) 경영총괄 대표변호사 체제다. 김 변호사는 2018년부터 광장 운영위원회에 들어갔고, 2021년 대표변호사에 올랐다. 자문 분야에서 손꼽히는 스타 변호사로, 경영총괄대표에 선임된 후 체질 개선 작업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재 영입이나 마케팅 분야에서도 김 변호사 의존도가 높다. 주요 로펌의 대표 중 젊은 편이라 장기 집권 가능성이 거론되는 점을 감안하면 첫해 다소 아쉬운 성과가 나쁠 것만은 없다는 지적이다.

    화우는 정진수 업무집행 대표변호사(22기) 체제에서 성장세를 보였다. 정 변호사는 2021년 연임해 3년 임기의 마지막 해를 지나고 있다. 매출 2000억원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대한항공 기내식사업 M&A 등 조단위 자문 실적도 속속 쌓아가고 있다. 금융규제에 강점이 있는 화우는 라임사태 등을 거치며 크게 성장했다. 금융감독원 출신 이명수 경영전담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는 법무법인들의 실적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변동은 법무법인의 실적에 후행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작년 하반기부터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고, 이는 올해 상반기 실적 걱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만히 있어서는 실적을 올리기 어려우니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덩치를 키우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최근 법무법인 사이에서 이합집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형 법무법인들도 개별적으로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물론 중소형사 흡수도 염두에 두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