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또...정치 이슈로 소환된 '경영권 방어 제도'
입력 24.02.16 07:00
취재노트
40년간 연구결과 대부분 '주가에 부정적' 나왔는데도
선거 앞두고 '주주가치' 핑계로 다시 도마 위 올라
소유권-경영권 분리되지 않은 '오너 문화' 해결 없는데
"경영권 방어 도입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시킬 것"
  • 포이즌필, 차등의결권제, 황금주 등 이른바 '경영권 방어 제도'들이 또 다시 공론장으로 소환됐다. 총선을 2개월 앞두고 이번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라는 탈을 쓰고서다. 금융위원회가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음에도 불구, '주가 부양'이 '선거 승리 공식' 대접을 받으며 여의도 정계를 중심으로 경영권 방어 제도들을 불쏘시개로 쓰려는 움직임은 여전한 상황이다.

    발단은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개선 간담회'였다. 정부 및 금융당국이 올해 들어 국내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수 차례 비친만큼, 투자업계에서 요구해오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강력한 방안이 담길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많았다.

    막상 발표된 개선안에 소각 의무화 내용은 빠졌다. 금융위는 해당 간담회 자료를 통해 '외국과 달리 경영권 방어수단이 여의치 않은 우리의 경우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서 자사주 제도가 필요하다'는 기업의 입장을 부연했다. 이는 자사주 의무 소각 도입의 선결조건으로 경영권 방어 제도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일각의 해석을 낳기도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반영되진 않겠지만, 금융당국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영권 방어 제도에 대해 심도있게 들여다본 게 사실"이라며 "상법 개정 등 법 개정 사안인데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만큼 지금은 여의도 정계에서 더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권 방어 제도들은 정말로 주가를 끌어올리고 주주가치를 제고시킬까. 1982년 미국에 포이즌필이 도입된 이후, 40년간 쌓인 수많은 연구 자료들은 경영권 방어 제도들이 오히려 주가를 하락시키고 소액주주 가치를 침해한다는 방향의 결론을 내놓고 있다.

    KDI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 2008년 메타 분석을 통해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포이즌필 도입이 기업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실증분석 결과들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는 부정적 효과를 지지하는 연구가 대세인 것으로 나타난다"며 "포이즌필이 도입되면 대략 기업의 주가가 2% 내외 하락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적대적 M&A로 발생하는 이익의 폭이 주주가치를 기준으로 20~30%에 달한다는 게 해당 연구의 결론이었다. 적대적 M&A 방어수단 도입을 통한 프리미엄의 상승은 크지 않은데, 경영권 방어 제도를 도입하면 오히려 '지배권 시장'을 위축시켜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이런 기조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원칙을 앞세운 미국 행동주의펀드 스타보드밸류(Starboard Value)는 지난 2022년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업체 머큐리시스템즈에 포이즌필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이사회와 주주 사이의 이해 상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차등의결권제도 마찬가지다. 2019년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차등의결권은 기존 경영진의 입지가 굳어지며 '참호구축 효과'를 내고, 이로 인해 사적이익추구 경향이 강해지는 부정적 영향을 가지고 있다.  2016년 미국 17개 대형 테크기업의 인수합병(M&A)을 분석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차등의결권 기업의 M&A 성과가 더 저조하며,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경향성을 띄었다.

    캐나다 토론토증권거래소 상장기업 중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은 2005년 100곳(비중 6.9%)에서 2018년 69곳(비중 4.6%)로 감소했다. 1990년대 초반 미국 상장기업 중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 비중은 6.5~7%까지 상승했지만, 2010년대 이후엔 빅테크들의 잇딴 상장에도 5.4~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영진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걱정 없이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주주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논리는 제대로 입증된 적이 없는 셈이다.

    입증되지 않는 논제는 책임지지 않을 이들을 통해 정치적으로 소모되고 있다. 경영권 방어 제도들은 대선을 앞둔 지난 2021년에도 '정책 선명성'을 위해 소환된 적이 있다. 당시 집권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차등의결권제가 없어 쿠팡이 뉴욕증시로 향했다'고 외쳤다. 한 해 앞선 2020년엔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이 포이즌필 등이 광범위하게 포함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총대를 맸던 추경호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를 지냈고, 이번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이 전혀 분리돼있지 않은데다, '한국식 지주회사'를 통해 이미 '오너' 문화가 정착돼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미국 등 선진증시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경영권 방어 제도가 도입돼면 최대주주의 일방통행식 의사결정이 강화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