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는 줄이고, 시간은 늘어지고…칼라일·TPG 등 글로벌PE도 펀딩 고전
입력 24.03.25 07:00
글로벌PE 시장 보수적 자금 집행 기조 여전
유수 PE도 규모 줄이거나 펀드 결성 지연
시장 침체·미중 갈등·회수 지연 등 영향 거론
어피너티·앵커 등 리즈널 펀드도 비슷한 상황
  •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아직 사모펀드(PEF) 시장엔 온기가 돌지 않는 모습이다. 예전에는 빈티지를 갱신할 때마다 펀드 규모를 키웠지만 이제는 현상 유지도 쉽지 않다. 주요 출자자(LP)들이 보수적인 기조를 보이는 상황이라 유수의 글로벌 PEF들도 블라인드펀드 결성에 애를 먹는 분위기다.

    PEF 시장도 경제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PEF 결성이 순탄하고, 반대의 경우엔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 2022년 초반까지는 유동성 호황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PEF 등 대체투자에 보수적인 기류가 이어졌다. 자연히 목표한 자금 조달 규모를 채우기 쉽지 않았다. 아시아 투자를 목표로 한 글로벌 PEF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칼라일그룹은 2022년 이후 아시아 6호펀드 결성에 나섰다. 당초 목표는 85억달러였는데 자금 조달이 쉽지 않았고, 작년 하반기 60억달러로 목표치를 조정했다. 눈높이를 낮췄음에도 자금 조달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작년까지 목표액의 절반 수준을 채우는 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펀드를 결성하면 3개년에 걸친 작업이 마무리 된다.

    TPG캐피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2년 초 60억달러 규모를 목표로 아시아 8호 펀드 결성에 나섰다. 2022년말 절반 수준을 채우며 1차 클로징을 했고, 작년 하반기 40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모았다. 올해 상반기 목표치를 채우면 역시나 3개년에 걸친 펀딩을 마무리짓게 된다.

    CVC캐피탈은 지난달 68억달러 규모로 아시아 6호 펀드를 결성했다. 2020년 결성한 5호펀드(45억달러)보다 50%가량 덩치를 키웠다. 2022년말엔 35억달러로 1차 펀드 클로징을 한 바 있다. 역시 2022년 상반기부터 펀드 결성에 나섰는데 만 2년에 걸쳐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MBK파트너스는 작년 이후 70억달러 규모 6호 블라인드펀드 결성에 나섰다. 본격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선 지 반년 만에 20여곳의 LP로부터 목표액 절반에 해당하는 자금을 모았다. 기존 LP들의 신뢰가 굳건한 가운데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예년보다 출자 규모를 줄였다. MBK파트너스는 펀드 결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연금 출자 사업에도 참여할 것으로 점쳐진다.

    손꼽히는 글로벌 PEF도 목표한 규모의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모습이다. 글로벌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1년 남짓한 시간 마케팅을 하면 기대한 바를 달성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직 기대만큼 금리가 떨어지거나 유동성이 풀리는 상황이 아니다.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하려면 세계 각지로 LP군을 확장하거나 시간을 더 들일 수밖에 없다. 그도 아니라면 눈높이를 다시 낮춰야 한다.

    글로벌 LP들의 PE 선호도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하며 수익 변별력이 떨어지는 PE 사업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졌다는 평가다. 그보다는 ▲수익률이 낮더라도 장기로 투자할 수 있는 인프라 ▲안정성이 있는 크레딧 ▲기대 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스페셜시추에이션 같은 펀드로 시선이 쏠리는 모습이다. 점차 주식 시장이 힘을 받으면서 PE보다 헤지펀드 투자 성과가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글로벌 PE들은 미국와 중국의 힘겨루기에 영향을 받고 있다. 양국의 갈등 국면이 길어지고 있는데, 글로벌 PE의 핵심 LP 상당수는 북미권에 포진해 있다. 정치적 갈등과 투자를 직접 연계시키긴 무리일 수 있지만 주요 LP 입장에선 중국 투자 비중이 높은 PE에 자금을 주기 부담스럽다. 칼라일 아시아의 수장인 X.D.양(Xiang-Dong Yang)을 필두로 중국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칼라일그룹이 펀드레이징에서 고전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중국 시장 투자 비중이 높은 워버그핀크스나 차후 아시아 5호펀드 결성에 나서야 하는 KKR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한 글로벌 PEF 관계자는 "미국의 주요 연기금은 중국이라면 손사래를 친다"며 "미국과 중국 정부가 싸우는 상황에서 중국 투자 비중이 높은 PEF에 투자하려는 글로벌 LP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리즈널(Regional) PEF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 상황의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 주력인 한국 시장의 부진 여파까지 얹어지는 경우도 있다. 기관투자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한때 MBK파트너스와 비견됐던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오비맥주, 하이마트, 로엔엔터테인먼트 등 숱한 성공 신화를 낳았다. 2018년 60억달러 규모 아시아 5호 펀드를 결성할 때만 해도 출자자가 몰렸지만 이후 성과는 신통치 않다. 유베이스, 쓱닷컴, 서브원, 신한지주 등에 투자했지만 예전 성과에 비견하긴 어렵다.

    어피너티는 과거 핵심 인력이던 박영택 전 회장, 이상훈 전 한국 대표, 창업 멤버인 이철주 전 회장 등이 자리를 떠났다. 박 전 회장은 개인 사유로 내부 지분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피너티 창립자 K.Y.탕 회장과 민병철 대표(Charles MIn)가 중심을 잡게 됐는데 향후 펀드레이징 전망은 불투명하다. 박영택 전 회장 등 올드 멤버가 한국에서 다시 사업을 할 가능성도 거론되는데 기관들의 마음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앵커에쿼티파트너스도 지난 수년간 컬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메타엠 등 주요 포트폴리오 처리에 애를 먹었다. 특히 2021년말 4조원의 가치로 투자한 컬리의 몸값은 최근 1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운용역들의 이탈이 이어지면서 포트폴리오 관리도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2021년 16억달러 규모로 결성한 4호펀드의 드라이파우더는 남아 있지만 새 펀드 결성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사실상 영역이 겹치는 MBK파트너스를 넘기도 쉽지 않다.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어피너티나 앵커 등은 최근 성과가 부족하고 구설수도 많았던 곳이라 자금을 출자할 때 보다 신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