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 친 로봇개…정의선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에 발목 잡힐까
입력 24.03.27 07:00
상장 기한 1년 남았는데 적자폭 확대
AI 보다 유압식에 방점찍힌 기술력에 '의문'
2400억원 사재 출연한 정의선 회장
IPO 무산시 승계 자금줄 묶일 수도
  • 잘 달리는 본업과 달리 현대차그룹의 신사업 성적표는 초라하다. 차량공유 등 신사업 분야에 투자한 상당수의 해외 자산들은 이미 정리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마련한 재원은 자율주행과 전기차 SDV(소프트웨어 중심의 차량) 등에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신사업 가운데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 가장 상징적인 M&A로 꼽히는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acss)인데 실적 부진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말 약 334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는데 이는 2021년 인수 당시 약 1970억원이던 적자 규모와 비교해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물론 기술개발(R&D)을 위해 오랜 기간 자금을 꾸준히 투입해야 하는 신사업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 실제 현대차가 추진하는 신사업인 슈퍼널(Supernal, 항공모빌리티), 모셔널(Motional, 자율주행) 모두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모셔널의 누적 적자 금액은 현재까지 2조원이 넘는다.

    규모만 본다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적자는 다른 신사업에 비해 작은 편이지만 문제는 현대차그룹이 2021년 소프트뱅크로부터 지분을 사올 당시 약속한 기업공개(IPO)의 기한(2025년 6월)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상장을 추진하기 위해선 이미 컨설팅 기업과 주관사단 등 유관 업체와 물밑 작업이 진행됐어야 하는데 아직은 이렇다 할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는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이 신사업에 대한 고민이 많은 건 워낙 잘 알려진 사실이다"며 "그룹 내에선 상장을 추진해야 하는데 사업 성과와 실적이 나오지 않는 보스턴다이내믹스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사실 주주 간 계약의 변경을 통해 상장 기한을 연장하는 방안,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잔여 지분을 되사오는 방안은 선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분을 사오는 방안은 그룹 차원에서 보유한 현금만으로도 대응할 수 있다.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지분 20%의 장부가액은 현재 약 4000억원(현대글로비스 지분 10%=장부가액 1974억원 기준)으로 추산할 수 있다. 다만 실적 부진으로 인한 상장 실패, 이를 만회하기 위해 또 수천억원의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부담은 크다.

    현대차그룹이 로봇 사업을 끝까지 끌고 가기 위해선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드라마틱한 실적 반전이 필요하다. 현재로선 주력 제품의 상용화가 본격화하지 않았고 당장 유의미한 현금 창출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기대와 달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주력인 '유압식 로봇'의 확장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갖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오픈AI(OpenAI)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GPT-5를 적용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고, 전세계 1위 협동로봇 기업 ‘유니버설 로봇(Universal Robots)’은 엔비디아(NVIDIA)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도 자체적으로 AI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유사한 움직임을 나타내고는 있지만 타사를 압도할 기술력을 갖출 수 있을진 의문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2015년 네 발로 움직이는 스팟(Spot)이 처음 대중들에게 선보였을 당시만 해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력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현재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과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 LIG넥스원은 사족보행 로봇기업이자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경쟁사인 고스트로보틱스(Ghost robotics)의 지분 60%를 약 3500억원에 사들였다. 단순 가치로만 환산해보면 보스턴다이내믹스(2021년 당시 기업가치 1조2000억원에 인수)에 절반 가격에 사들였다.

    결국 뚜렷한 사업의 성장성과 신제품의 비전이 명확하지 않다면 미국 증시 입성은 쉽지 않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사실상 실패한 투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면 이를 주도한 최고경영진들의 부담은 상당히 커질 수 밖에 없다.

    정의선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위해 약 24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고 추후 IPO를 통해 상당수의 자금을 회수할 것으로 전망돼 왔다. 정의선 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의 완벽한 승계를 위해 자금이 얼마나 필요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회수 방안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투자였단 의미에 가깝다. 

    IPO의 불발을 가정한다면 2000억원이 넘는 정 회장의 현금은 묶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룹에서도 오너의 지분을 인수하긴 사실상 어렵고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실적을 비쳐보면 당분간 배당도 기대하기 힘들다.

    오너의 사재가 직접 투입된 거래인만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인수는 정의선 회장의 오른팔이자 그룹의 핵심 중의 핵심인 김걸 사장(기획조정실장)이 주도했다. 보스턴다이내믹 인수 이후 김걸 사장이 주도한 랜드마크 투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만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사업 성패에 대한 주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김 사장은 과거 지배구조 개편 추진 실패란 과오(?)를 안고도 현대차의 최고 실세 자리에 위치해 있다. 그렇기에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에 대한 성과를 증명하는 게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