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릿수로 떨어진 PF 금리…'4월 위기설' 얼마나 현실성 있나
입력 24.03.28 07:00
PF 선순위 금리 1년새 절반으로…분위기 반전
워크아웃 태영도 대주단과 금리 줄다리기
"안전장치 마련한 사업장엔 투자 수요 몰릴 듯"
자재비 인하와 정부 압박에, 눈높이 낮추는 건설사들
물류센터·지식산업센터 위기는 현재 진행형
  • 4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위기의 진짜 시발점이 될까?

    PF시장의 본격적인 위기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의견들의 대부분은 현재 정부가 4월 총선에서 여당의 승리를 위해 부동산 시장 위기 확산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에서 시작한다. 실제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필두로 PF사업장에 자금이 흘러들어가게끔 하는 작업이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고 일부에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복현 효과'만으로 보긴 어렵지만 최근 들어선 일부 우량 사업장에선 PF대출금리가 다소 안정화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PF 위기설이 본격적으로 나돌기 시작한 지난해만해도 한 자릿수 PF대출금리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최근 상당수의 PF사업장에서 8%대 선순위 금리가 자리 잡은 모습이 포착된다. 물론 사업의 규모와 신용보강의 주체, 시공사의 지위, 안전보장 장치 등 세부 요건에 따라 금리 수준은 다르게 책정되지만 지난해 대출금리가 법정최고금리(20%)에 준하는 사업장이 상당히 많았던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유동성 위기가 거론됐던 롯데건설이 최근 시중은행과 조성한 2조3000억원 규모 펀드의 선순위 금리는 8.5%, 중순위는 8.8%로 책정됐다. 심지어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절차) 개시를 추진하고 있는 태영건설도 PF 사업장인 마곡 CP4 대출 금리를 두고 대주단과 갈등을 빚고 있는데 채권단이 주장하는 제시한 금리는 8% 수준, 태영건설 측은 6%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가 PF 사업장의 한 자릿수 금리를 두고 금융기관과 줄다리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달라진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PF사업 자금을 모으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면 현재는 수도권 내 정상 사업장에 대해선 주요 금융기관들이 출자를 꺼리는 분위기는 아니다"며 "다만 금융기관들이 대규모 사업장의 메인(앵커) 출자자가 되려 하기보다는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기조가 강하기 때문에 다수의 기관들을 상대로 자금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최근 발표한 금융권 부동산PF 대출 현황(2023년 12월 기준)에 따르면 전 금융권의 PF 대출 잔액은 지난해 9월말 대비 1조4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은행(1조8000억원)과 증권(1조5000억원)의 대출 증가로 인한 수치다. PF 위기의 뇌관으로 지목돼 왔던 업권(보험, 상호금융, 저축은행, 여전사 등)의 PF 대출 잔액은 줄었다. 같은 기간 PF대출의 연체율은 2.7%로 9월말(2.42%) 대비 0.28%포인트 상승했다. PF대출 연체율이 다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지만 정부는 금융기관들의 부실화율은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병칠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금융회사가 PF 부실에 충분한 손실흡수 및 리스크관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PF 고정이하여신 대비 충당금 적립액 비율은 108.9%로 100%를 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PF 위기가 현실화할 조짐들이 나타나고 투자 수요가 급감한 이후, PF 사업장에선 투자자 보장 장치가 탄탄하게 마련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우량 시공사의 준공 확약은 기본이고 투자금에 대한 콜옵션(매수청구권) 등이 붙는 경우도 많다. 사실 부동산 PF투자 외에 최소 8%에서 20% 수준의 수익률을 기대할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안전장치가 마련된 PF사업장의 투자 수요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부동산 담보를 제공받고 원금 손실의 우려가 거의 없게 설계하고도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사업장이라면 PF사업장이라 할지라도 투자 수요가 분명히 있다"며 "일부 특수물건(지식산업센터, 물류센터)을 제외한 수도권 PF 사업장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한국의 PF 위기설을 발판 삼아 기회를 노리는 자본도 늘어나는 추세다. 외국계 부동산 펀드는 물론이고 국내 크레딧펀드들까지, PF 사업 주변에 대기자본이 늘어나고 있다. 해당 자금들은 아직 조심스럽게 투자 대상을 물색하는 모습이지만 가격이 크게 떨어진 사업장이 투자 대상으로 등장하면 언제든 수요가 몰릴 수 있단 평가가 나온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 대표급 관계자는 "국내 크레딧펀드, 해외 헤지펀드 및 부동산 펀드들이 아직은 자산 가격이 많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부동산과 PF시장 주변에 대기자금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우량 사업장이 사정에 의해 급하게 매물로 나오는 경우 투자자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PF사업의 한 축인 건설사들의 눈높이가 조금씩 낮아질 것이란 평가도 존재한다. 시행사(조합)와 시공사 간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례들이 늘고 있는 추세였지만 최근 금감원장이 건설사들과의 수차례 만남을 가진 후부턴 분위기가 다소 반전됐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 아직 그 효과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향후 원자재 가격 인하 추세가 지속하면 건설사들도 높은 공사비를 고수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국내 부동산 이슈 외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 변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건설사들이) 대외 변수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예비비 명목으로 공사비를 높게 책정해 시행사(또는 조합)와 괴리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원자재 가격이 내리기 시작했고 여기에 정부의 압박까지 더해지면 분위기가 반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장미빛 전망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류센터와 지식산업센터 등 특수물건 PF사업의 경우 회복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물류센터의 경우 수도권 일부 지역, 그리고 알리와 테무와 같은 중국계 이커머스 업체가 진출할 수 있는 인천과 경기 서남부 지역 등에서 그나마 회복세를 예상할 수 있지만 예년과 같은 호황기를 기대하긴 어렵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같은 전망에 이제까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보조를 맞췄던 시중은행들도 물류센터·지식산업센터 담보의 보유 채권을 대거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올 하반기부턴 상당한 규모의 부실채권(NPL)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요가 많을진 장담할 수 없단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