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회장’이라는 명함의 무게
입력 24.03.28 07:43
Invest Column
  • 팔로워 84만명을 자랑하는 정용진 회장의 인스타그램이 멈췄다. 회장 승진 20일만이다. 팔로워가 아닌 사람들에겐 비공개 계정으로 전환됐고, 팔로워들에겐 그간 올려온 게시물은 거의 다 사라진 상태다.

    정 회장의 인스타그램은 화제성만큼이나 많은 논란을 나았다. ‘멸공’, ‘공산당이 싫어요’ 등의 표현으로 노조의 비판을 받아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혹은 언급하는 기사가 있으면 그걸 캡처해서 게시하며 해당 기자를 놀리기도(?) 했다.

    사실 부회장 시절부터 그룹에선 정 부회장에게 SNS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왔다. 유통업의 본질은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물건을 잘 파는 건데 정 회장은 편을 가르는 게시물을 쉼 없이 올렸고 이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 임직원들에겐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정 회장은 심지어 그 에피소드조차 게시물로 만들어 올려 희화화할 정도였다.

    하지만 회장이 되고 나선 자신의 이전 행동들이 180도 달라보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마트, 그리고 신세계그룹이 처한 상황을 보면 한가하게 인스타그램 피드를 올릴 여유가 없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이마트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자칫하다간 우량기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AA등급을 내놔야 할 수 있는 지경이다. 등급 하향의 배경은 본업인 대형마트의 업태 매력 자체가 떨어지는 가운데 잇따른 주요 점포 매각 및 폐점으로 이익창출력이 약해졌다는 점, 그리고 지마켓 같은 적극적인 확장전략을 펼쳤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고 오히려 적자의 늪에 빠졌다는 점이다. 이 모두 정용진 ‘부회장’ 시절 단행했던 전략의 결과물이다. 이마트의 주가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단기간 내에 이 흐름을 바꾸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거다. 쿠팡은 이미 이마트 매출을 앞질렀고 거기에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의 공습은 이마트가 감당할 수 없다.

    정 회장은 취임하며 가장 먼저 강조한 게 ‘신상필벌’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취한 조치가 이마트 창립 후 첫 희망퇴직 단행이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라면 정 회장은 회장 승진이 아닌, ‘필벌’의 대상 아니냐는 안팎의 지적은 정 회장에겐 비수 그 자체다. 개인의 취미가 곧 그룹의 사업이 되고 성공의 사례보다 실패의 사례가 더 많기 때문이다. 혹자는 더 큰 성공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해야하고 그 과정에선 실패는 불가피하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회사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 소리는 이젠 노여움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다른 그룹의 회장님들도 개인적으로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을테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다 있다. ‘회장’이라는 명함의 무게는 임직원 전체의 수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정 회장 역시 한달도 안되는 짧은 시간 그 무게를 체감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속내는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해야 되는 위치에 오른 거다.

    이마트 노조는 이번 희망퇴직 신청을 두고 “신세계를 국내 11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마트 사원들이 이젠 패잔병 취급을 받고 있다”고, “산업 전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더니 ‘닭 쫓던 개’와 유사한 상황이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회사 어렵다는 상투적인 말만 할 게 아니”라며 “왜 그렇게 됐는지 회사의 냉철한 자기 분석과 반성을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채양 이마트 대표가 “이번 조치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지만, 월급쟁이 CEO가 모든 걸 책임지고 할 얘긴 아니다. 이를 주도한 정 회장의 진정성이 담긴 메시지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정말 인스타그램 피드를 올리고 싶다면 이번엔 그 메시지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