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애널리스트…떨어지는 금융권 경쟁력
입력 2015.12.22 07:00|수정 2015.12.23 16:09
    증권사들, 비용절감 위해 리서치부서 축소
    애널리스트 이직 줄이어…남은 인력 업무부담↑
    국민연금 평가방식도 부담…금융사 분석력 저하 우려
    • 금융업계 애널리스트들의 이직 행렬은 올해에도 이어졌다. 저성장시대 속에 비용 절감이라는 목적 하에 리서치부서 규모는 날로 줄고 있다. 떠난 자리는 기존 인력들이 채우면서 업무 부담은 배가됐다. 갈수록 심층적인 기업·산업분석은 줄어들고 있는 배경이다. 이같은 추세가 장기적으로 국내 금융권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 국내경제 성장둔화 지속…비용절감 위해 리서치부서 축소, 업무량은 늘어

      올해로 8년차인 A 애널리스트는 지난해말 조선업을 추가로 맡은데 이어 내년부터는 방산업 분석도 맡게 된다. 본래 맡고 있던 운송업을 포함하면 17개 기업의 분석을 담당하게 된다. 2년 전 같은 증권사의 조선·기계 담당 애널리스트가 이직하자 해당업무가 차례로 넘어왔다. 해당 분야 애널리스트를 채용하는 대신 연관 산업을 맡고 있는 애널리스트한테 일을 맡겼다.

      A 애널리스트는 “올해 IT담당 애널리스트도 이직해 해당업무를 리서치센터장 혼자 담당하게 됐다”며 “점점 한 사람당 업무부담이 늘면서 심층적인 리포트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졌다”고 토로했다.

      다른 증권사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B 증권사의 통신담당 애널리스트는 올해 지주사들의 분석까지 맡으며 지난해보다 담당 기업 수가 1.5배가량 늘었다. C 증권사의 경우 정유·화학 애널리스트가 지난 8월 바이오로 업종을 바꿔 다른 증권사로 이직했지만 아직 그 자리는 빈 채로 남아있다. D 증권사 또한 지난 4월 조선·운송 애널리스트가 떠났지만 조선부문 애널리스트만 새로 채용한 상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58개 증권사 애널리스트 수는 1094명으로 3년 전보다 22%가량 줄었다. 상당수의 애널리스트들이 자산운용사나 기업 IR부서 등으로 떠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구조조정 과정에서 증권사 대다수가 애널리스트 수를 줄였다. 떠난 자의 업무는 남겨진 자의 몫이 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증권사들의 수익성이 향상됐지만 그 영향은 미미했다.

      여전히 한국경제의 성장둔화가 이어지다보니 리서치센터를 비용측면에서 인식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는 시각이 많다. 리서치센터는 증권사 ‘비수익 부서’ 중 하나다. 애널리스트들 중 상당수는 계약직이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인력을 줄이면 줄였지 더 채용할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다.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증권사들이 취급하는 금융상품이 늘어나면서 애널리스트들의 인기가 상승했던 것이 옛날 일이 됐다.

      한 증권사 임원은 “수익이 눈에 보이지 않는 리서치센터는 인력 수급이 여의치 않게 됐다”며 “이곳 저곳에서 리서치센터를 개설하면서 애널리스트들의 몸값이 올랐던 6년 전과 대조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국민연금 평가방식 변화도 ‘부담’…기업·산업 분석능력 저하 ‘우려’

      국민연금의 정책변화도 애널리스트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올 상반기부터 분석 기업 수가 더 많은 증권사 순서대로 거래를 맡기기로 했다. 증권사 입장에선 정량적 평가의 중요성도 커지면서 한 기업이라도 더 분석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4일 증권업계에서 기업분석 리포트들이 평소보다 많이 쏟아져나온 배경이다. 이날까지가 국민연금의 평가기한이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분석하지 않아도 될 기업들도 시가총액이 어느 정도 되면 분석대상에 넣으라는 지시가 나오고 있다”며 “사람 수가 적은 중소형 증권사들의 애널리스트들은 더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밝혔다.

      크레딧 애널리스트들은 더 어려운 상황이다. 연기금과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회사채 투자와 관련해 직접 기업들과 접촉하는 일이 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의 활용도가 과거보다 떨어진 것이다.

      이들은 주식 담당 애널리스트보다 성과를 보여주기 어려운 편이기도 하다. 매일 거래가 되는 주식시장과 달리 채권시장은 채권 발행량도 적고 발행빈도도 간헐적이다. 애널리스트들의 설명으로 기관투자자들이 투자에 나서더라도 그 공은 중개업무자(브로커)한테 있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젊은 크레딧 애널리스트들은 본인의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다른 영역으로 이직하는 분위기다. 경력 5년 이상의 시니어급 애널리스트 비중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선 현재 이들을 대체할만한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회사채시장 특성상 업무경험이 많아야 분석능력이 쌓이는데 지금은 베테랑들을 이을만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들이 부족하다”며 “이미 자산운용사에선 젊은 애널리스트들이 자꾸 다른 업종으로 이직하면서 주니어급 인력을 채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업계에선 저성장기에 진입한 국내 경제상황상 이런 변화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선 리서치업무의 중요성이 줄고 관련 애널리스트들이 떠나는 건 주요 금융사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한 중소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갈수록 애널리스트들의 분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리서치와 같은 백 오피스(Back Office)의 중요성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