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 잃은 회사채시장, 기약 없는 해빙기
입력 2016.07.04 07:00|수정 2016.07.05 19:41
    [2016년 상반기 DCM 리그테이블]
    일반 회사채 발행, 1년만에 7.5兆 감소
    대기업들조차 발길 줄여…SK그룹만 ‘온기’ 제공
    •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었다.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취약업종에 대한 구조조정까지 진행되면서 기업들의 생존력도 약해지고 있다. 자연스레 자금조달의 문턱은 높아졌고, 공모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 기업들도 점점 줄고 있다.

      투자자들은 더 보수적으로 변했다. 신용등급 AA 이상면서도 동시에 현금흐름이 꾸준한 내수 기업들에 대한 편식이 심해지고 있다. 그런 기업들이 많지 않은 실정이어서 수급 불균형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올 상반기 기업들이 발행한 일반 회사채 발행규모는 총 15조710억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7조5000억원가량 감소했다. 회사채시장 문을 두드린 기업도 106곳에서 89곳으로 줄었다.

      시중 유동성은 풍부하고 저금리 기조도 이어졌지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각 산업의 간판기업들조차 경쟁력 약화로 매년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있다. 구조조정이 한창인 조선·해운사들은 회사채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건설사들도 좀처럼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과거 회사채 시장 단골이었던 중후장대(重厚長大) 기업들의 발길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업황이 개선된 정유·화학사들 정도만 얼굴을 내비쳤다.

      투자자들은 더 엄격한 잣대로 투자처의 범위를 좁히고 있다. 겉으로 화려한 것보다 현금흐름이 꾸준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더 환영받고 있다. CJ제일제당·대상·삼천리·예스코 같은 식음료나 유틸리티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투자자들의 환대를 받았다. 반대로 A급 이상의 신용등급을 갖고 있더라도 업황과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면을 받았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 담당자는 “지금은 전망보다 실상이 좋아졌다는 것을 투자자들에게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분위기”라며 “거시경기와 주요 기업들이 살아난다는 지표들이 나타나야 얼어붙은 시장이 바뀔텐데 지금으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기업들도 채권 발행을 줄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상반기 회사채시장에서 3조원 이상을 조달했던 현대자동차그룹은 1년 만에 발행규모를 7100억원으로 줄였다. LG그룹(1조2000억원)과 GS그룹(8400억원)도 발행규모가 절반 정도로 감소했다. 사업구조 재편과정에서 자주 회사채를 발행하던 계열사들이 사라진 삼성그룹에선 삼성물산만 3000억원어치를 마련했다.

    • SK그룹 정도가 온기를 제공했다. 올 상반기에만 회사채 발행을 통해 2조5800억원을 조달했다.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증가했다. SK텔레콤(6100억원)과 SK하이닉스(5600억원)가 두 차례씩 발행에 나섰다. SK㈜·SK네트웍스·SKC·SK솔믹스도 돌아가며 회사채시장을 노크했다. 주로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투자의지를 내비쳤다.

      떠난 기업들의 공백을 채워줄 새 고객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엔씨소프트(1500억원)와 녹십자(1500억원)가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손에 꼽는 사례였다. 제약·바이오와 IT산업이 최근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보수적 시각은 여전히 짙게 남아있다. 이들이 빅 이슈어로 자리잡기엔 이르다는 의견이 많다.

      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연구개발에 대한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그만큼 불확실성이 큰 지금의 상황에선 보수적인 기관투자가들의 마음을 움직이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보다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아직은 투자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