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보단 '안전'…제약업계 만연한 '보신주의'
입력 2016.07.14 07:10|수정 2016.07.14 07:10
    바이오 산업 흥행에도 꿈쩍 안 해
    국내 산업 중 M&A 가장 소극적
    연구개발에 지속적인 투자 필요
    • 투자 시장에선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이 지고, 신수종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국내 최대 삼성그룹이 뛰어들었고, 한미약품이 ‘잭팟’을 터뜨린 바이오산업은 가장 뜨겁다.

      정작 제약업계에선 이 열기를 체감하기 어렵다. 업계에선 외국인들이 찾는 한국의 의료기술에 비해 제약 시장 수준은 떨어진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모험’ 보단 ‘안주’를, 외형확장 보단 후대 승계를 선택하는 ‘한국형’ 제약 시장의 한계다.

      “국내 제약업계가 대형사 위주로 재편이 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존재감 있는 대형사는 소수에 그치고, 별 다른 노력 없이 이익을 내는 중소업체들이 많다. 10년 전에도 똑같은 얘기가 나왔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업계 관계자들이 바라 본 국내 제약업계의 현실은 위와 같이 요약된다. 최근의 바이오 산업에 대한 투자 열기에 비춰보면 상당한 온도 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상은 ‘제약’과 ‘바이오’를 구별해야 한다고 하는 의견도 많다. 신약 개발을 담당하는 쪽은 바이오 기업이고, 제약사들은 유통사 수준이라는 것이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이를 체감할 수 있다. 국내 산업 중에 M&A가 가장 소극적인 것이 바로 제약산업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대부분 제네릭(복제약)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 M&A를 통한 시너지를 찾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일괄 약가 인하 이후 중소업체들이 매물로 쏟아졌다”며 “정작 보면 인수 매력이 떨어지는 영세업체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심지어 바이오기업의 주요 능력 중 하나가 글로벌 제약사들이 어떤 의약품을 확보하고 싶어하는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예를 들면 ‘한독-제넥신’, ‘젬백스-삼성제약’, ‘크리스탈지노믹스-화일약품’등 제약사와 바이오업체 간 M&A다. 기술력을 갖춘 바이오업체와 자본과 생산시설을 확보한 제약사의 조합이다.

      무엇보다 바이오 산업에 대한 열기가 업계 전반으로 붙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제약업계의 강한 ‘보신주의’ 성향이 꼽히고 있다.

      국내 중소 제약사들은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한 이익을 내왔다. 대부분 전문의약품 위주의 사업 구조, 다시 말해 병원과 약국을 대상으로 하는 B2B 시장이다. 제품의 차별화 대신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마진 마케팅이 중심이고, 장기간 고객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상당수의 중소 제약사들은 가족 경영이 이뤄지고 있고, 지금의 사업 형태를 유지하는 데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며 “크게 일을 벌이기 보다는 비상장사로 남아서 무탈하게 후대에 승계하려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방의 경우 약국은 지역사회 바탕으로 결집력이 강한 이해집단이어서 대형사들이 중소형사를 인수하는 게 쉽지 않다”며 “과거 한미약품이 동아제약을 인수하려다가 안된 것도 이 같은 업계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특성이 반영되다보니 국내 제약업계에는 100년이 넘은 업체가 있을 정도로 장수 기업들이 많다. 일각에선 설립한 지 50년도 안된 한미약품이 ‘잭팟’을 터뜨리고 대대적인 M&A에 나서려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도 있다.

      분명 제약산업에 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의 제약업에 대한 지원 의지가 강해지고 있고, 대형 제약사의 연구개발투자가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금융업계의 투자 열기도 그를 뒷받침한다. 연구개발투자를 아끼지 않는 대형 제약사들은 신약개발에 성공해 수익성과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확보한 자금을 또다른 신규 투자에 투입하는 선순환이 자리 잡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몇몇 대형제약사들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산업 내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보신주의'가 만연한 국내 제약업계가 자칫 이제 불기 시작한 투자 불씨를 꺼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