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M&A 시장에서 설 자리 잃어가는 외국계 IB
입력 2016.12.22 09:55|수정 2016.12.22 09:55
    재무자문 1위 모건스탠리·CS, 자문금액 3兆 그쳐
    골드만·JP모건·메릴린치·씨티 등 자취 감춰
    IB 없는 대형 M&A 많고 거래 무산 사례만 부각
    기업공개·블록딜 부문 활약상과 대비
    • 기업 인수·합병(M&A) 자문 시장에서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시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올해 수조원에 달하는 거래들이 연이어 터지며 전체 거래 규모도 지난해와 비슷했다. 하지만 외국계IB들의 자문 실적은 작년보다 줄었고 자문한 거래가 무산되는 사례들만 부각됐다. 골드만삭스·JP모건·도이치증권 등 그간 대형 거래를 주무르던 곳들도 자취를 감췄다. 블록딜이나 기업공개(IPO) 등 다른 부문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M&A 재무자문 1위 실적, 3조원대 그쳐

      인베스트조선 M&A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해 총 380건(경영권 이전 없는 주요 지분거래 포함, 합병·부동산 제외)의 거래가 일어났다. 전체 거래 금액은 약 44조원으로 집계됐다. 1조원 이상 대형 거래가 시장 규모를 이끌었다. 올해 진행된 대형 M&A는 8건으로 평년 수준이었다.

    • 지난 1월 카카오가 로엔엔터테인먼트 인수를 발표하며 올해 M&A 시장 포문을 열었다. MBK파트너스의 두산공작기계 및 홍콩 워프T&T,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한앤컴퍼니의 쌍용양회공업, 삼성전자의 하만(Harman) 등이 손에 꼽히는 기업 인수 건이다. 최근 IMM프라이빗에쿼티 등의 우리은행 소수 지분 인수도 일단락 됐다.

      활기가 넘쳤던 시장과 달리 외국계IB들은 침체된 시기였다. 리그테이블 발표기준 순위 1, 2위를 차지한 모건스탠리와 크레디트스위스(CS) 정도만 두각을 나타냈다.

      두산DST 매각은 CS, 한화 인수 자문은 모건스탠리가 담당했다.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인수 자문도 모건스탠리였다. LG화학이 인수한 동부팜한농의 매각자문사 역시 모건스탠리와 CS였다. CS는 금호타이어와 KDB생명보험 매각 자문사이기도 하다.

      다만 이들도 누적 자문금액은 2~3조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선두권 자문금액이 7~8조원에 달했던 것과 대조된다. 외국계 IB들은 올해 신규로 나온 거래에서 자문 기회를 많이 놓쳤다.

      ◇대형 M&A에 초대받지 못 한 외국계 IB…거래 무산 사례도 줄이어

      재무자문사를 선임하지 않는 M&A부터가 잦았다. 대기업과 대형 PEF들은 인수 대상 기업 물색과 기업가치평가, 거래 구조 설계 등에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역량이 된다면 기업이 직접 나서는 것이 비용 및 보안유지, 이해도 측면에서 유리하는 평가다.

      카카오의 로엔엔터 인수 때 내로라하는 IB들은 초청받지 못했다. 카카오와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직접 협상으로 시작해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의 도움만 받는 선에서 끝냈다. 삼성전자의 프린팅사업부(에스프린팅솔루션) 매각과 하만 인수 역시 재무자문사가 없었다. 두 거래 모두 수조원을 웃도는 거래였지만 IB들은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 몸집이 무겁고 수수료가 높은 대형 외국계IB보다 중·소형 자문사를 선임해 진행하는 거래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하만 합병거래에서 증명했듯 네트워크만 갖춰져 있다면 중소형사 또한 적은 인력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M&A 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형사들의 경우 적은 인력이지만 하나의 딜에 전적으로 달라붙어 서비스를 하고 보안유지에도 수월하기 때문에 오히려 질적인 측면에서 더 낫다"며 "사모펀드, 로펌 업계 등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은 대형사 출신 인력들이 회사를 차려 프로젝트성 거래를 진행하는 것과 같이 IB업계 또한 이 같은 현상이 가속화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무산된 거래들도 잇따랐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는 정부 승인 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약진통상과 ING생명보험은 경영권 매각이 불발되면서 IPO 등 다른 방안을 강구했다. 한화그룹과 LG화학이 추진했던 미국 컨티넨털 스트럭쳐럴 플라스틱스(CSP) 인수, 넷마블게임즈의 플레이티카(Playtica) 인수와 IMM PE의 할리스커피 매각 등도 순항을 예상했으나 결국 접게 됐다.

      ◇ '골드만·JP모건·도이치' 주춤…IPO·블록딜 등에 집중

      지난해 두각을 나타냈던 IB들이 주춤한 점도 한몫 했다. 골드만삭스는 딜라이브 매각 주관 계약이 끝난 데다 코웨이 매각도 지지부진하다. 얼마 전 PCA생명 매각을 끝내고 대성산업가스 매각 자문을 따내긴 했으나 지난해에 비하면 아쉬운 수준이다. 불과 1년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호텔신라의 미국 면세점 인수를 이끌었다.

    • JP모건도 위축된 모습이다. 연초 SC프라이빗에쿼티를 대리해 두산공작기계 인수에 나섰지만 막판에 두산그룹이 매수자로 MBK를 택하면서 자문 실적을 챙기지 못했다. 이후 약진통상과 로젠택배 매각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동양매직 매각 자문사 자리도 NH투자증권에 내줘야 했다. 일각에서는 작년 JP모건을 떠난 임석정 전 대표의 공백이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도이치증권은 올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작년 리그테이블 1위 타이틀이 무색했다. IB부문 인력 변동 등 내부 부침도 겪었고 주 고객인 롯데그룹이 검찰 수사를 받는 등 상황이 우호적이지 않았다. IB부문 조만철 본부장 복귀 후 할리스커피 매각을 담당했지만 거래가 중단됐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도 비슷하다. 올해 CJ그룹이 터키 마르스엔터테인먼트와 중국 룽칭물류 인수를 도운 정도다.

      오히려 IPO와 블록딜 등에서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는 네이버 라인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대표주관사다. 호텔롯데 IPO에선 공동주관사였다. JP모간도 두산밥캣, 아큐시네트, 네이버라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을 주관했다. 모건스탠리와 CS도 마찬가지로 삼성바이에오에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두산밥캣, 네이버라인 등에 고루 주관사로 올라 있다.

      일부 외국계 IB들 중에서는 크로스보더(Cross Border) 거래 자문 기회를 잡으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다른 관계자는 "외국계 IB들도 크로스보더 거래로 역량을 모으려는 분위기"라며 "국내 기업들이 해외 기업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외국계 IB 장점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