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강판 가격 인상 지연…'실적부진' 현대차에 부담 전가 고심
입력 2017.03.31 07:00|수정 2017.03.31 07:00
    지난해 원자재 가격 급등에 판가 인상 필요성 대두
    현대차 실적 꺾이자 가격 협상 진전 없어
    현대제철 수익성 증대 및 신용도 개선 작업 차질 불가피
    • 현대제철의 자동차 강판 판가 인상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그룹의 주축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들의 실적 하향세가 지속되면서 당분간 협상 타결은 어려워졌다는 관측이다.

      판가 인상 지연은 현대제철의 수익성 증대와 신용도 개선 작업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실적과 업황이 제각각인 상황이 지속될 경우 그룹 차원의 전략 판단 고민은 더 깊어질 것이라는 평가다.

      현대제철은 연초 기업설명회(IR) 자리에서 자동차 강판 가격 협상을 시작해 2월말부터 조정된 가격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최근까지 현대차와의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대제철 입장에서는 이번 협상에서 판가 인상을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입장이다. 톤당 13만원 전후의 가격 상승요인이 발생했다는 것이 회사 측의 판단이다. 2015년 톤당 8만원까지 가격을 낮춘 이후 판가 변동은 없었다. 납품가격 동결은 회사 실적 반등에 발목을 잡았다. 전체 매출의 30%가 자동차강판에서 나오고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이 현대·기아차향(向) 매출이다.

    • 가격 인상이 무산되면 영업현금흐름 확대를 통한 차입금 감축과 신용도 개선 작업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2016년말 현대제철의 총차입금 규모는 10조원에 달해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2014년 이후 2조원대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현대제철 신용등급을 쉽게 올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업황 안정화와 원재료 가격 변동에도 3년 째 영업이익이 제자리인 탓에 이번 가격 협상으로 이익 증대 기회를 잡아야 한다"면서 "현대차와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면 기업가치 측면에서 불확실성만 키우게 된다"고 했다.

      철강업계에서는 톤당 8만~10만원은 올려야 안정적인 수익성 증대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포스코도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톤당 7만~10만원가량의 강판 가격 인상을 진행해왔다. 현대제철이 연간 약 500만톤의 자동차 강판을 생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상 효과는 5000억여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회사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박광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리포트를 통해 "지난 1년간 원재료 가격 상승을 고려하면 톤당 13만원으로 가격이 인상돼야 한다"면서 "보수적으로 톤당 8만원 인상을 고려해도 2017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7.9%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문제는 현대차의 상황을 고려하면 판가 인상을 밀어붙이는 것이 쉽지않다는 것이다. 영업이익률 둔화 폭이 커진 현대차 입장에선 원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강판 가격 인상을 수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신흥시장 수요 감소 및 내수 시장 경쟁 심화 등으로 2013년 이후 현대차 이익창출규모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넘보는 현대제철과 달리 현대차와 기아차의 영업이익률은 5%를 맴돌고 있다.

      올해도 완성차 판매는 특별한 내수 진작 요인이 없어 작년보다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수입차 업체들의 시장점유율 확대로 경쟁은 심화했다.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와 중국 사드(THAAD) 보복 등 수출 시장환경도 녹록지 않다.

      현대차가 그룹의 핵심 기업인 만큼 현대제철로서는 가격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투자는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철강 제품 조달 안정화를 위해서 진행된 까닭에 독자적인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계열사 별 영업이익과 사업환경이 상반되는 상황이 반복될수록 그룹 차원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룹 내 수직계열화 딜레마는 차체 경량화와 연비개선 문제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다른 관계자는 "그룹 내 의사결정 구조를 보면 현대제철에는 사실상 의사결정권이 없다"며 "지금은 오히려 현대제철이 현대차의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처지"라고 했다. 이어 "이번 강판 가격 인상은 결국 현대차와 현대제철이 서로 실적을 두고 ‘제로섬 게임’을 펼치는 것과 같아 그룹 차원의 판단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