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반짝 활황'...하반기 지속 여부 "글쎄"
입력 2017.06.22 07:00|수정 2017.06.22 07:00
    금리 인상 앞두고 채권 발행 쏟아져
    AA·A급 선전은 '착시 현상'
    하반기엔 차환 규모 줄어들 듯
    공모 규모·수익률 반비례 경향
    넷마블·ING생명은 '기대 이하'
    중소형주, 상장 후 주가 급등해
    • 올 상반기 자본시장은 예년 대비 발행이 크게 늘며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하반기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각은 많지 않다. 올 상반기의 활기는 시기적 요인에 기댄 '반짝 호황'이었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목적 자체가 '투자심리 확대'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보니 발생한 현상이라는 평가다. 미국금리 상승 등에 앞서 자금을 미리 마련하는 움직임이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큰 외부요인이 있지 않는 한 올 하반기 국내 자본시장이 역동성을 되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 ◇ 살짝 분 회사채 시장 '훈풍'...하반기는 "글쎄"

      올 상반기 회사채 시장엔 모처럼 훈풍이 불었다. 금리 인상을 앞두고 조달 비용을 아끼려는 기업들의 채권 발행이 잇따라 진행됐다. 마땅한 회사채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투자자들은 이를 대거 인수했다.

      우량채 중심의 시장 상황은 여전했다. 신용등급 AA급 이상의 기업들은 수요예측에서 대규모 기관 자금을 모으며 연초 계획한 금액보다 4조원가량 많은 자금을 추가로 조달했다. 조달 목적은 대부분이 차환이었다. 이들 기업에 투자 수요가 대거 몰렸지만, 그 과정에서 롯데쇼핑·신세계 등의 유통사는 투자자들에게 과거보다 높은 금리를 주겠다고 약속하며 자금을 조달했다.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대비한 보험사들의 회사채 발행 행렬은 시장에 활기를 더했다. 보험금 지급능력 최고 등급을 보유한 NH농협생명은 5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현대해상·동부화재도 콜옵션이 붙은 후순위채 발행에 각각 성공했다.

      A급 기업들도 수요예측에서 선전하며 미매각이 눈에 띄게 줄었다. 석유화학사를 중심으로 발행이 이어지며 일부 A급은 장기물을 발행하기도 했다. 채권 시장에 처음 등장한 LIG넥스원·한국콜마 등도 무사히 신고식을 치렀다. 대선 전후를 기점으로 취약 업종 구조조정이 매듭지어지자 움츠렸던 회사채 투자 심리는 기지개를 켰다.

      올 하반기에도 대규모 발행이 이어질진 미지수다.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한 상태라 차환 규모가 줄어들 전망이다. 보호무역주의 본격화로 기업들의 시설투자가 주춤할 것으로 예상되며 순발행 증가 기대도 어렵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IT 업종을 중심으로 한 투자 확대 기조가 다른 업종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다"라며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불확실성 등 각종 부담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내년부터는 IT 투자마저 둔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지주회사 요건 강화, 자회사 지분의 의무 소유 비율 강화 등에 따라서도 회사채 발행 규모가 감소할 전망이다. 지주사들이 부채비율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부채 자금조달 방식보다는 증자, 비상장사 기업공개 등의 자본확대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회사채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한 기업들은 주식연계채권(ELB)이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신용등급이 낮은 두산중공업(A-)·두산건설(BB+)이 총 1조원 규모의 BW를 상반기 중 발행했다. 등급이 투기등급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두산인프라코어도 하반기 5000억원어치의 BW를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연초 유상증자를 추가로 진행한 대한항공은 '무늬만 자본인 부채'라는 논란이 가시지 않은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발행했다.

      일부는 단기자금 시장에 계속 의존하고 있다. 업황 회복세에도 채권 시장에 복귀하지 못한 현대중공업은 단기자금을 조달해 하반기 공모채 만기에 대응할 예정이다.

      ◇ IPO시장, 대형 공모주 부진에 시장 침체도 우려

      기업공개(IPO) 시장은 연초 금융권의 예상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반기까지 공모주 투자 분위기를 후끈 달궈줄 것으로 예상됐던 대어(大魚)급 거래는 초라한 성적을 냈고, 오히려 '흔한' 중소형 공모주가 준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형 공모주의 부진은 '큰손'인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켜 올 하반기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반기 국내 증시에 상장한 20개 기업(기업인수목적회사 제외)을 분석해보면, 공모 규모와 공모가 대비 현재 수익률은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였다. 최대어였던 넷마블게임즈는 상장 직후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추락, 지금도 -7%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ING생명 역시 -4%대 수익률을 내고 있다. 거꾸로 113억원을 공모한 모바일어플라이언스의 주가가 공모가 대비 200% 이상 뛰었고, 각각 192억원, 93억원을 공모한 신신제약과 와이엠티는 100% 가까이 올랐다.

      이런 대형 공모주의 '굴욕'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2~13일 수요예측을 진행한 제일홀딩스 역시 공모희망가 밴드 최하단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다. 거래를 앞두고 편법승계 이슈가 불거지며 몸을 낮췄다.

      이런 상황은 하반기 IPO 시장 전망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넷마블 등 기대를 모았던 대어들의 성과가 저조해 기관들의 투자성향이 보수적으로 돌아선 까닭이다.

      시선은 올해 마지막 조 단위 대형 공모주인 셀트리온헬스케어로 모이고 있다. 내달 공모절차를 앞둔 셀트리온헬스케어는 하반기 시장 분위기를 좌우할 가늠좌로 꼽힌다.

      셀트리온헬스케어 역시 시장의 시선을 의식해 '무난한 공모 성공'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희망 수치가 아닌, 이미 현실화된 실적에 기반해 공모가를 산정했고, 복잡한 공식 대신 투자자들에게 친숙한 주가순이익비율(PER)을 적용했다.

      그럼에도 불구,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사업구조에 대한 금융시장의 불신은 아직 여전하다. 세계 최대 바이오시밀러 시장인 북미에서 램시마(현지 판매명 인플렉트라)가 자리를 잡을지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격 할인에 따른 손실을 셀트리온 대신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받아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중소형주들의 흥행이 이어지며 시장의 방향성은 개별 거래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있다. 실제로 2.88대 1의 저조한 청약경쟁률을 기록한 삼양옵틱스 직후에 공모를 진행한 보라티알은 경쟁률 1000대 1이 넘는 공모 흥행에 성공했다. 결국 '옥석 가리기' 장세가 계속될 거란 전망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넷마블의 주가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시장을 뒤흔들만한 대형 거래도 없어 당분간 증시 등 외부 변수가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