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롯데·신세계의 '11번가' 동상이몽(同床異夢)
입력 2017.06.26 07:00|수정 2017.06.27 09:17
    SK, 완전히 손 떼진 않으려는 속내
    유통 빅2, 합작 법인보단 '인수' 선호
    롯데 '외형 성장'·신세계 '콘텐츠 확장'의 기회
    3사 간 합작법인 설립 현실성↓
    • SK플래닛이 11번가 부진을 털기 위해 '합작사 설립'이란 카드를 꺼냈다. 파트너로는 유통 강자인 롯데와 신세계가 선택됐다. 국내 유통업계는 공룡들 간의 합종연횡 소식에 고무된 분위기다. 특별한 변화 없이 잠잠했던 유통 시장에 큰 획을 긋는 거래가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이와 별개로 곧 협상 테이블에 앉을 SK·롯데·신세계의 속내는 제각각일 것이란 의견이 많다. 11번가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으려는 SK, 11번가의 사업권을 쥐려는 롯데·신세계가 저마다의 '동상이몽'을 그릴 가능성이 언급된다. 이 거래를 계기로 '한국판 아마존'을 꿈꿀 롯데와 업계 선두주자 자리를 노릴 신세계가 팽팽한 밀고 당기기를 펼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SK플래닛은 보유 중인 11번가를 분사해 롯데·신세계 온라인 쇼핑 사업과 합쳐 합작사를 설립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SK플래닛은 그동안 11번가의 사업 확장을 위해 전략적투자자(SI)·재무적투자자(FI) 유치를 진행해왔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SK플래닛 모회사인 SK텔레콤도 직접적인 지원을 꺼리고 있어 적자를 이어가는 11번가는 난항을 겪고 있다.

    • 구체적인 협상 조건은 아직 논의 전인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와 신세계가 이례적으로 서로 손을 잡고 SK와 협업을 진행할지도 미지수다. 롯데 측 고위 관계자는 "연초 SK 측에서 제안을 해온 건 사실이며 극초기 단계라 거래 구조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사안이 사실상 없다"라고 전했다. SK플래닛도 "3사 간의 협상은 아직 초기 단계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라고만 밝혔다.

      향후 11번가 사업권에 영향을 끼칠 투자 구조를 두고 SK·롯데·신세계가 각자의 해석을 내놓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합작사 설립을 위한 협상 과정은 수월하지 않을 전망이다.

      모바일커머스 사업 축소의 기로에 선 SK플래닛은 전통적 유통 강자들의 노하우 없이 사업을 지속하기엔 벅차다고 판단했다. 쿠팡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형 유통사의 사업적 전략 없이 '벤처 마인드'로만은 모바일커머스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합작사 설립 소식 직후 서성원 SK플래닛 대표는 사내 인트라넷망을 통해 "분사 후 매각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구조조정설을 불식하기 위한 차원이었지만, 그만큼 SK 입장에선 11번가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단 의미로도 읽힌다. 11번가는 오픈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적자의 늪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외형 기준으론 국내 2위 수준으로 연간 7조원의 거래액을 달성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월평균 거래액도 6000억원에 육박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에 강한 롯데·신세계 등의 SI들이 사업에 동참해 주길 원한 것"이라며 "(11번가 실적 회복 가능성을 고려하면) 지분을 모두 내놓는 건 아까우니 합작사를 만들려는 전략인 듯하다"고 말했다.

      롯데나 신세계의 구상은 SK와 다르다. 2사 혹은 3사가 함께 11번가를 운영하는 구조보다는 단독으로 경영하는 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 합작사 설립을 수용한다 가정해도 궁극적으론 SK플래닛의 11번가 잔여 지분을 가져올 궁리를 할 여지가 있다. 이들 입장에선 SK플래닛이 모바일커머스 시장에서 완전히 발을 뺄 생각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이번 협상의 최대 관심사다.

    • 유통 강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예상되는 건 무엇보다 유통 사업 중 온라인 부문만이 유일하게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어서다. 롯데, 신세계는 이번 딜(Deal)을 계기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유통업의 성장 축을 온라인으로 옮기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대형 유통사들은 부동산 지배력만을 기반으로 매번 같은 사업모델만을 추구해온 게 사실"이라며 "이들의 성장 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사업으로 넘어가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체리피커'라 불리는 국내 소비자군을 넓힐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11번가에 충성도 높은 고객을 자사로 유인하려면 마케팅비가 대거 들어간다"라며 "거래액 기반의 자본력이 생기면 마케팅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와 신세계가 합작사 설립을 위해 펼칠 전략에도 차이가 있다. 외형 성장을 중시하는 롯데와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는 신세계의 성향 차이에서 비롯된다.

      롯데가 11번가와 결합하게 되면 단숨에 온라인 유통 시장의 강자가 된다. 양 사의 합산 취급액이 업계 1위인 15조원으로 뛰게 된다. 롯데는 외형 성장을 투자 포인트로 내세우며 거래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는 인수·합병(M&A)이나 투자 건에 있어 이후의 과정과는 무관하게 일단은 높은 가격을 써내는 스타일"이라고 언급했다.

      신세계가 11번가를 활용하려는 복안은 조금 다르다. 신세계는 규모의 경제보다는 11번가의 콘텐츠를 최대치로 활용할 성향이 짙다. 노브랜드·PB브랜드 등 그나마 유통업에서의 획기적인 시도는 신세계·이마트의 구상에서 나왔다. 롯데가 11번가의 파트너사로 선정될 경우 이마트가 꿈틀거리며 시도 중인 다양한 유통 사업에 재를 뿌리게 되는 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슷한 맥락에서 3사 간의 공동 투자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한 증권사 유통 담당 애널리스트는 "롯데, 신세계가 합작 과정에서 모두 참여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양 사는 봉합해야 할 각종 갈등 사안들이 있고, 공동으로 사업을 운영한 전례가 없다"라며 "이런 와중에 급작스럽게 같은 컨소시엄에 들어가는 그림이 나온다면 꽤나 어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거래 성사 여부의 관건은 구체적인 조건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서로의 구미를 당기는 거래임은 확실하나 제각각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라며 "11번가에 대한 돌파구 찾으려는 SK와 온라인 사업을 확장하려는 유통사 간의 밀고 당기기 계속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다수의 SI·FI들이 투자 유치에 참여할 가능성은 계속 열려 있는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