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캐피탈의 동남아行, '이머징마켓 투자' 이미지 만들기用?
입력 2017.08.09 07:00|수정 2017.08.11 14:51
    동남아 TF팀 꾸리고 속속 투자 나서
    현지 투자 경험 있는 VC업체와 손잡는 곳도
    높은 관심 대비 실제 집행 건은 많지 않아
    "해외투자 스토리 만들자"…'구색 갖추기(?)'
    • 국내 벤처캐피탈(VC) 업체들이 동남아시아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현지 팀을 꾸린 곳이 하나둘 등장하면서 실제 투자도 속속 진행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빈번한 현지 실사 등 관심도에 비해 투자 건수가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VC업체들이 단순히 '해외 이머징마켓 투자'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동남아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이다.

    • 한국투자파트너스는 동남아 지역을 주로 담당하는 심사역을 두고 현지 게임·인터넷·모바일커머스 업체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미래에셋벤처투자와 함께 베트남 게임 개발사 아포타(APPOTA)에 투자했다. 인도네시아 모바일 음식 배달 업체 큐레이브드(Qraved) 등에도 투자, 작년에만 동남아 업체 총 4곳에 투자했다. 올해 하반기엔 동남아 현지 업체 1~2곳에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KTB네트워크는 작년 12월 인도 부동산 중개서비스 업체인 노브로커(NOBROKER)에 투자했다. 국내 VC업체가 인도 현지 업체에 투자한 첫 사례다. KTB네트워크는 지난해 동남아 TF팀을 꾸리고 현지 스터디를 진행했다. 본엔젤스파트너스·소프트뱅크벤처스·LB인베스트먼트 등도 현지 전문 인력을 배치하거나 팀을 꾸려 동남아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 VC업체 운용역은 "동남아 투자에 관심을 갖는 VC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동남아 지역 투자가 처음인 곳들은 기존에 투자했던 VC업체에 접촉해 포트폴리오를 공유 받거나 현지 업체나 인맥 등을 소개받아 투자를 검토하고 있고, 일부 업체들은 현지에 투자했던 VC업체가 투자할 때 같이 투자하는 방식으로 첫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벤처투자 업계에선 동남아 투자 열기가 실제 투자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란 지적이 나온다. 금융 시장 환경을 고려하면 투자 집행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 동남아 지역 투자를 검토했던 심사역들 사이에선 상법 등 법체계가 국내와 다르고, 금융 시스템도 미비해 당황했다는 후일담이 적지 않다.

      동남아 현지 업체에 투자한 대형 VC업체 운용역은 "업계가 보이는 관심에 비해 실제 투자 건수는 많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며 "동남아 현지 업체에 투자하기까지 여러 가지 제약이 많기 때문에 막판까지 투자를 망설이는 업체도 많다"고 전했다.

      베트남 업체에 투자한 모 대형 VC업체는 현지 업체의 보통주에 투자한 후 계약서에 이자 배당 등 우선주에 해당하는 조건들을 명시하는 방식으로 투자했다. 베트남에선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상법상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VC업체들은 배당 가능한 이익 한도 내에서 현금을 상환 받을 수 있는 권리 등이 붙은 RCPS를 선호한다. 투자업체가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에 이르지 못해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서다.

      다른 VC업체 운용역은 "국내나 선진국에 비해 동남아 대부분 국가들의 금융 시스템은 여전히 낙후돼 있다"며 "투자금 만큼 지분을 획득하는데 같은 은행이라도 송금한 지점과 인출 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은행이) 중간에 수수료를 가져가 황당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투자회수(Exit)가 쉽지 않은 점도 이유 중 하나다. 현지 주식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IPO를 하더라도 장내 매도 등을 통한 회수가 쉽지 않다는 전언이다. 결과적으로 현지 동남아 업체에 투자한 후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상장하거나 다른 업체와 M&A를 해야 하는데 이 방안 역시 간단치 않다.

      또다른 VC업체 운용역은 "베트남 주식시장은 월 거래액이 250억원 정도고 매도 주문을 내면 이틀 뒤에야 처리되는 등 답답한 점이 적지 않다"며 "사실상 절차가 까다로운 국내 상장이나 M&A로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현지 업체에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일부 VC업체들이 동남아 투자가 얘깃거리가 되기 때문에 '관심'만 갖는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른바 이머징 마켓으로 각광받고 있는 동남아 투자에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이미지를 얻기 위한 '구색 갖추기'에 지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내 VC업체들이 동남아 업체에 투자한 건 중에 순수 현지 스타트업에 투자한 건은 많지 않다. 본엔젤스파트너스가 지난해 투자한 밸런스히어로는 인도에 진출한 국내 기반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미래에셋벤처투자 등이 투자한 화장품 역직구 업체 알테아 역시 주요 서비스 지역은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 등이지만 기반은 국내에 있다.

      벤처투자 업계 관계자는 "진짜로 해외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싶다면 투자는 물론 회수가 좀 더 쉬운 유럽 투자가 오히려 적합하지 않겠느냐"며 "동남아 투자가 얘기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 투자자들이 유럽에서보다 동남아에서 더 대접받을 수 있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