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기획사 '주먹구구 경영'…투자자들은 '어안이 벙벙'
입력 2017.08.24 07:00|수정 2017.08.25 13:56
    창업주 '직감 의사결정'이 고질병
    연예인 IP 활용에 매몰, 확장성 한계
    신흥 시장에서 '잭팟' 기대는 여전
    • “워낙 투자 실패 사례가 많다 보니 기관투자가 등 투자자 입장에선 기획사들의 신사업 진출 소식이 공포로 다가왔다. 기획사들이 ‘안정적 수익 확보’에 초조한 점은 이해하지만 다각화 소식은 곧 투자자 입장에선 ‘다악화’로 받아들여졌다” (A 엔터산업 담당 애널리스트)

      연예 기획사 투자를 검토하거나 집행했던 관계자들 사이에서 기획사들이 보인 ‘미숙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원칙 없는 신사업 투자 ▲창업주의 ‘감’으로 이뤄지는 의사결정 ▲소속 아티스트 활용에 그친 ‘주먹구구식 투자’ 등이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고질적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 SM, YG 등 내로라하는 기획사들의 본업 외 '투자 성적표'는 낙제점을 피하기 어렵다. 의사 결정이 빅뱅이나 2NE1의 팬덤이 '문샷' 화장품을 사고, '노나곤' 옷을 입고, '삼거리 푸줏간'에서 고기를 구울 것이란 사업 계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유재석·AOA·FT아일랜드 등이 소속된 FNC엔터테인먼트가 지난해 인수한 복권용지 생산업체 ‘FNC에드컬쳐’ 정도가 기획사의 유일한 투자 성공 사례로 회자되는 정도다.

      한 엔터산업 담당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YG가 의류 브랜드 노나곤을 출범할 당시 시장에선 고가 우려가 나왔는데 YG는 '삼거리 푸줏간'에서 팔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황당한 답만 내놓았다"며 "SM도 코엑스몰에 세운 'SM아티움'에서 손실이 쌓여 감가상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손 대는 것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획사 투자를 경험한 관계자들은 SM의 이수만 씨, YG의 신사업을 총괄하는 양민석(양현석 씨의 친동생) 대표 등 소수 인물의 ‘직감’에 의존한 의사 결정 구조를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한다. 각사의 창업주들이 맨손으로 회사를 일궈낸 만큼 여전히 그 그늘이 짙다는 설명이다. 실무진의 역량 문제는 아니라는 게 투자를 경험한 관계자들의 평가다.

      실제 엔터 업계엔 유수의 대기업 출신 인력들이 많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영입해 IR활동에 힘을 싣는 기획사도 있다. 낮은 연봉 등 매력적이지 않은 처우에도 엔터 업계에 대한 관심으로 합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력풀을 갖추고 있음에도, 창업자나 일부 인사들의 의중이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 관계자는 “SM 같은 국내 선두권 기획사도 매출 규모는 대기업 내 작은 계열사 수준에도 못 미치다 보니 명료한 경영 시스템, 외부 컨설팅을 통한 전략 수립 등을 기대할 순 없다”며 “하지만 우수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각 기획사 내 ‘선생님’들이 꽂히거나 개인 네트워크를 통해 제의받은 사업 혹은 SM이 지켜보는 사업을 따라가는 정도에 의사결정이 머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력 자산인 소속 연예인을 활용하는 사업을 최우선으로 두다 보니 확장성 측면에서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014년 프랑스 루이뷔통으로부터 투자를 받았지만 별다른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채 자금이 묶여있는 YG가 대표적이다.

      기획사 투자를 검토한 벤처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획사 입장에선 여전히 가장 중요한 사안은 보유 아티스트의 이미지 관리다 보니 외부 투자자들이 제안하는 일에 꼬투리를 많이 잡는다"며 "투자자들에겐 '콧대가 높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JYP와 미스에이의 수지를 활용한 캐릭터 사업을 검토해 투자 구조를 짜고, 우여곡절 끝에 최종 사인만 남겼는데 다음날 수지 어머니가 수지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반대해 사업이 무산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투자자 입장에선 타 산업 투자에선 경험하지 못한 '변동성'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은행(IB)·회계법인·로펌 등 투자 활동을 돕는 자문사들 사이에서도 엔터 업계는 '품은 많이 들지만 실속이 없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한 대형 로펌 내 M&A 담당 변호사는 “과거 일부 멤버가 동방신기를 이탈하며 계약 분쟁이 벌어졌을 당시 모 대형 법무법인에서 SM의 대리를 맡았는데, 수임료로 1000만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로펌업계에서 화제가 됐다”라며 “이외에도 M&A, 지분투자 건 등에서도 이수만 씨 등 의사결정자들이 자문사의 서비스료를 박하게 책정하면서도 우리랑 하는 게 영광이지 않느냐는 식의 고자세를 취한다는 이야기는 업계서 이미 유명하다"고 귀띔했다.

      다만 누적된 리스크 요인에도 불구하고 기획사들을 향한 투자 수요는 꾸준히 관측되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타격으로 투자 열기가 주춤해졌지만, 아직 본격적인 공략이 이뤄지지 않은 신흥 시장에 대한 기대는 아직 유효하다는 평가다. 한 기관 투자가는 “후발 주자인 중국의 추격에 직면한 제조업·IT업 등 타 산업과 달리 콘텐츠 분야에선 ‘한류’의 경쟁력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중국·동남아 등 신시장 진출이 본격화하면 '잭팟'을 터트릴 것이란 투자자들의 기대가 사라지진 않았다”고 전했다.

      기획사들도 꾸준히 신사업 진출을 위해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최근들어 한 대형 벤처캐피탈(VC) 업체도 엑소(EXO) 멤버들이 캐릭터로 분한 게임·샤이니의 목소리가 나오는 인공지능(AI) 스피커 등 소속 연예인 IP(지적재산권)을 활용한 사업에 공동 투자를 제의받는 등 꾸준히 접촉이 이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중소형 연예 기획사들의 기업공개(IPO)를 통한 투자 유치도 현재 진행형이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공모시장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마마무 소속사 RBW엔터테인먼트는 2019년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현재 프리IPO(상장전지분투자) 형태의 자금조달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연예 기획사 투자 성공 사례를 쌓으며 각 기획사의 시스템을 판단하는 나름의 평가 기준을 꾸리기도 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방탄소년단이 연간 300억원 매출을 거둬 '대박'을 쳤지만, 투자자들은 방탄소년단보다 JYP에서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익힌 방시혁과 소속사의 내부 육성 체계에 더 주목했다"며 "RBW엔터테인먼트 역시 마마무 등 보유 아티스트들 외에 김도훈 대표 등 스타 작곡가를 다수 영입, 지속적으로 좋은 곡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고 설명했다. '고위험-고수익'의 엔터 사업 특성상 각 기획사가 구축한 내부 시스템이 투자 유치의 성패를 가르는 것이다.

      최근 들어 SM과 SK텔레콤, YG와 네이버와 등 콘텐츠를 보유한 기획사가 플랫폼을 보유한 대기업과 제휴에 나선 점에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투자 '스토리'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아직까지 성과가 나오지 않은 만큼 투자자들의 우려를 해소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SM이 SKT와 손잡고 4차산업혁명·인공지능(AI)에 자사 콘텐츠를 접목시켜 활용하겠다 발표했지만, 이미 지난 2010년에도 삼성전자·SM·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손을 잡고 ‘3D 컨텐츠 리더’가 되겠다고 발표했지만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다”라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전문적이고 정교한 투자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