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먹거리 찾아…부업 손대는 연예 기획사들
입력 2017.08.24 07:00|수정 2017.08.25 09:24
    수익 대박 통한 '수익 선순환' 옛말
    사드 보복 문제로 中 사업 '올 스톱'
    외식·패션 등 이종 사업 투자 집중
    소속 연예인 활용한 콘텐츠 제작도
    •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이 안정적인 먹거리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본업인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으로는 성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인수·합병(M&A)이나 합작 법인(JV) 설립 등을 통해 그간 해보지 않았던 사업에 나서고 있다.

      터줏대감 격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추진한 SK텔레콤과의 깜짝 딜을 계기로 자본시장도 호응할 타이밍을 살피고 있는 분위기다. 연예 기획사가 향후 이와 같은 크고 작은 투자 등을 진행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장기적으로 같이 진행할 수 있는 딜이 많아질 것이란 기대감이다.

      SM과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 등 국내 대형 연예 기획사를 중심으로 본업인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선배 그룹이 은퇴하면 그 빈자리를 후배 그룹이 메우는 선순환이 깨지는 사례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소녀시대·빅뱅·엑소(EXO) 등 이미 최정상에 있는 아이돌 그룹의 매출 기여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궤도에 오른 스타일수록 계약을 거듭할 때마다 더 짧은 전속계약 기간과 수익 배분 상 더 많은 몫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획사 입장에선 핵심 자산을 지키기 위해 아티스트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묶어 두지만, 인지도가 오르면 오를수록 수익엔 도움이 안 되는 구조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깜짝 신인들의 '대박'이지만 그마저도 예전 같지 않다. 업계 선두 회사로 꼽히는 SM과 YG 조차 최근 데뷔시킨 NCT나 iKON(아이콘)이 선배 그룹인 동방신기나 빅뱅만큼 수익을 내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전언이다.

      적잖은 투자금을 쏟아 부어 키운 소속 연예인이 회사를 이탈하거나 각종 스캔들로 활동이 중단되는 일도 본업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기획사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획사 중에서 소속 연예인 관리를 제일 잘 한다는 SM도 EXO의 중국인 멤버 크리스·루한과 소녀시대 제시카 등 일부 멤버의 회사 이탈을 막지 못했다"며 "엔터기업들의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사람'이기 때문에 롤모델인 디즈니처럼 IP를 활용해 사업을 확장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성장 돌파구로 꼽혔던 중국 시장에서 사실상 손발이 묶였다. 대형 기획사들은 최근 2~3년간 현지 기업과 합작법인(JV)을 만들거나 현지 매니지먼트 라이선스를 취득하며 중국 진출을 위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음반 시장만 봐도 국내보다 10배 이상 큰 시장을 공략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겠단 의도였다. 하지만 사드로 인해 경색된 한중 관계 개선이 지연되고 북한의 군사적 도발까지 이어지면서 사실상 모든 중국 사업이 올 스톱 됐다. SM과 YG 모두 올 하반기 예정된 콘서트 라인업이 전무한 상황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동남아 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비용 대비 수익성이 큰 시장이었다"며 "사드 이슈가 터지자 중국만 바라볼 게 아니라 다른 데도 투자하며 대비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 매니지먼트 외 안정적인 대체 수익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대형 연예 기획사들을 사업 다각화에 눈 뜨게 했다. 투자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세워 외부 투자금을 조달하고 신사업에 나서고 있다. 오너의 지분 희석을 막으면서 동시에 투자 실패에 따른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SM의 SM C&C, YG의 YG플러스, FNC엔터테인먼트의 FNC애드컬쳐가 대표적이다.

      업계 선두인 SM은 가장 먼저 외형확장 전략을 펼쳤다. 2000년 코스닥 상장 이후 교육·외식·노래방·여행사·중국 만화사업 등 손을 대지 않은 사업을 찾기 힘들 정도다. 소수 지분에 투자하거나 동창 찾기 커뮤니티인 '다모임' 사례처럼 직접 경영권을 인수해 그간 해본 적 없던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존 사업자와 함께 합작법인(JV)을 설립하기도 했다. 2010년 이랜드리테일과 만든 패션·의류업체 '아렐'과 2013년 디자인하우스와 공동 설립한 패션잡지 '더 샐러브리티' 등이다.

      최근엔 문어발식 확장 기조를 접고 본업과 관련된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자금력을 활용한 '콘텐츠 독점'으로 투자 방향성을 정했다는 분석이다. CJ E&M의 콘텐츠 제작·유통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시한 전략과 유사하단 평이 많다. 주요 자회사 SM C&C가 주축이 돼 스타 작가·스타 PD를 영입하며 드라마·예능 제작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네변호사 조들호’, ‘38사기동대’ , ’질투의 화신’ 등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아는형님’ 등 흥행을 거둔 작품도 등장하고 있다.

      인디 음악·연기자 매니지먼트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기획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2012년 장동건씨가 100% 보유했던 에이엠이앤티(AM엔터테인먼트)를 흡수합병했고, 2015년엔 모델 장윤주씨가 소속된 모델 에이전시 에스팀모델(ESteem)에 지분투자도 했다. 올초 윤종신씨가 이끄는 미스틱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배경도 어쿠스틱 음악 분야를 강화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한 증권사 엔터 담당 연구원은 "SM은 현재 아이돌 8팀을 매니지먼트 하고 있고, 각 팀의 매출 비중이 20%를 넘지 않아 상대적으로 조급함은 덜하다"면서도 "본업에만 몰두하는 것에 대한 경영진들의 불안감 때문에 요즘엔 AI(인공지는) 등 기술 기업 투자 스터디에 여념이 없다"고 전했다.

      이수만 프로듀서의 AI·머신러닝 등 신기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투자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한세민 공동대표가 투자 관련 의사결정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SM은 지난 6월 미국 AI전문기업 오벤(ObEN)과 공동투자해 설립한 합작법인(JV) AI스타즈를 시작으로 관련 AI기업 투자를 속속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YG는 빅뱅의 공백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YG 전체 매출에서 빅뱅이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넘는다. 최근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군 복무가 중단된 멤버 탑이나 내년 군 입대를 앞둔 지드래곤의 상황을 두고 실적 악화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신인 남자 아이돌 그룹인 iKON을 전략적으로 음원시장이 큰 일본에 투입, 콘서트·팬미팅 등을 진행해 대응하고 있지만 빅뱅만큼의 티켓 파워와 지속 가능성을 거둘지는 의문이란 평이 많다. 이종 업체에 대한 M&A나 지분투자 등을 꾸준히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미 YG는 자회사 YG플러스를 신사업 투자 창구로 두고 패션의류(노나곤·베이프키즈)·골프·화장품(코드코스메·브랜드 문샷)·외식(YG푸드·삼거리 푸줏간 등)·카페(3 Birds) 등 본업과 무관한 다양한 업체에 투자했다. 투자업계에선 YG 계열 신기술금융회사인 YG인베스트먼트가 단순 투자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대주주 양현석씨의 동생 양민석 대표가 연세대학교 MBA 과정에서 맺은 인맥들을 투자 인력으로 영입, 크고 작은 투자를 챙기고 있다.

      2PM 외에 스타 아이돌 그룹 발굴에 실패해 최근까지 매출 부진에 허덕였던 JYP엔터테인먼트도 드라마 드림하이를 제작한 JYP픽쳐스를 중심으로 스타 PD 영입을 추진하며 뒤늦게 투자에 시동을 걸고 있다. 소속 그룹인 트와이스가 그나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효자 그룹인 2PM 공백을 메우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당장 올 하반기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옥택연을 시작으로 2PM 멤버들이 하나둘 군대로 떠나게 되면 JYP의 투자금 유치 등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중소형 연예 기획사들도 다른 사업 발굴에 힘쓰고 있다. 사실상 대박난 한 아티스트가 회사를 먹여 살리고 있다 보니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크다는 전언이다. 중소 기획사가 뛰어든 사업은 아티스트 IP를 활용한 캐릭터 상품 제조·판매 혹은 의류 등 유관 사업 정도다. 자금 여력이 크지 않아 대규모 투자가 어려워서다.

      업계 관계자는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아 본업 외 다른 사업을 벌이고 싶어도 못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상장 등을 통해 투자금을 받아 성장을 꾀한다기 보다 일시적으로 회사를 키운 뒤 중국 자본이나 대형 기획사에 회사를 넘기는 것을 최종 목표로 두고 있는 중소 기획사 대표들이 많다"고 언급했다. 실제 중국 부호들 사이에선 '한국 연예 기획사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부자가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같은 연예 기획사들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기획사 투자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복수의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아티스트를 육성하고 관리하는 역량과 투자 역량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근본적인 조언을 전하고 있다. 구체적인 투자 전략에 대한 밑그림 혹은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는 '문어발식 투자'가 외려 본업까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