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 시장, 최대 규모 자금 풀린다
입력 2017.09.22 07:00|수정 2017.09.25 09:42
    모태펀드 이어 산은·국민연금 등 벤처펀드 매칭 대기
    펀드 결성은 문제 없을 듯…"투자·회수가 문제"라는 지적도
    "내년 예산 벤처자금 줄어들면 고밸류 부메랑"
    • 벤처투자 시장이 10년 만에 호황을 맞이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의 추경 예산 편성으로 대규모 자금이 풀렸고, 연기금·공제회들도 예년과 비슷한 규모로 출자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곳간이 두둑해졌다. 벤처투자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한번에 풀리며 벤처·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기회에 쉽게 출자금을 받아가려는 일부 운용사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는 오는 30일께 8700억원의 추경 예산이 포함된 3차 정시 출자사업 위탁 운용사를 최종 선정할 예정이다. 현재 한국벤처투자는 서류심사를 통과한 70여곳의 예비적격운용사를 대상으로 현장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모태펀드 위탁 운용사 선정 작업이 마무리되면 잇따라 출자 공고를 낸 연기금·공제회들 역시 운용사 선정을 완료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모태펀드가 사실상 앵커 출자자(LP) 역할을 하는데 이번엔 최대 규모 자금이 풀린 만큼 자금을 매칭해 줘야 하는 기관들이 시기상 공고내는 시점을 맞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 이에 따라 당초 우려했던 펀드 결성은 큰 문제 없이 연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달 말 위탁 운용사 선정 작업을 마친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한국IT펀드의 지능정보산업 및 ICT일반분야 펀드와 모태펀드 4차 산업혁명 펀드의 매칭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밖에 500억을 출자하는 우정사업본부는 타 메인LP의 투자조건을 수용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과학기술인공제회도 최종 결성 금액의 40% 이상 출자 확약받은 곳을 대상으로 출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출자에선 국민연금 출자금을 받지 않은 운용사에게만 열어줬던 중소형 분야를 기존 위탁 운용사에도 열어줬다. 고용보험기금과 교직원공제회 역시 작년과 동일하게 매칭 출자를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초반 일었던 '벤처붐'을 기대할 정도로 시장엔 대규모 투자금이 풀리고 있지만 벤처투자 업계 표정이 좋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막대한 자금이 풀리면서 투자 실적이 쌓이지 않은 신생사들까지 출자금을 받아갈 가능성이 커지면서 일부 운용사들 사이에선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벤처캐피탈 업체 운용역은 "투자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펀드결성액) 2%의 관리보수를 8년만 받아도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는 운용사가 한두곳이 아니다"라며 "다른 기관 출자사업에서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모태펀드가 제안서 상에 운용 심사역이 없더라도 결성 전까지만 구하면 접수를 허용하는 등 이전엔 금지했던 것들을 이례적으로 풀어주고 있어 신생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 모태펀드는 타 민간 기관의 벤처펀드 출자를 독려하기 위해 펀드 손실이 발생할 경우 일정 손실까지는 모태펀드가 먼저 부담하고 있다. 투자실패에 따른 여파가 실질적으로 민간 LP에까지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않아 운용사 평판에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더구나 대형 운용사들이 초기 기업(창업 3년 이내) 투자를 펀드 조건 상 명시하지 않은 펀드에 주로 참여함에 따라 신생사 혹은 중소형사들은 대부분 투자처 발굴 및 사후관리가 까다로운 초기·중기 기업 투자를 강제하고 있는 펀드 분야에 제안서를 냈다. 사실상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벤처투자 사업이 당초 목적인 창업 초기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벤처·스타트업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평가돼 후속투자 유치나 회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초기 투자 유치 단계서 부터 적정가치 보다 높은 가격에 투자금을 받았는데 사업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추가 투자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업은 스스로 몸값을 낮추더라도 투자금을 받고자 하지만 기존 투자자들은 본래 투자했던 것 보다 싼 가격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에 동의할 가능성이 적어서다.

      다른 벤처캐피탈 업체 운용역은 "벤처기업 특성상 성과가 당장 나오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투자금을 받아 사업을 키워야 하는데 처음부터 몸값이 높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며 "더구나 내년엔 이 정도의 대규모 자금이 풀릴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낮은데 급격하게 돈줄이 좁아지면서 고밸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