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투자한 카풀앱 럭시, 애매한 법조항에 압수수색까지 '곤혹'
입력 2017.09.27 07:00|수정 2017.09.28 10:28
    출퇴근 시간·횟수에 대한 명확한 법 규정 없어
    수사당국, '출퇴근=1일 2회' 임의 해석해 입건
    우버쉐어는 법망 피해 교묘히 한국 진출
    시장 형성 기회를 놓쳐…"벤처 키우겠단 정부 의지와 역행"
    • 카풀앱 업체 럭시(Luxi)가 서비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사 당국이 '출퇴근 시간'을 임의로 규정, 해당 카풀앱을 통해 운행을 한 다수 운전자를 여객운송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럭시에 추가 투자를 검토하던 기존 투자자들은 난감한 모습이다. 벤처업계에선 출퇴근 시간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법 집행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관련 시장이 싹을 틔워보기도 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노원경찰서 지능팀은 럭시를 참고인에서 피의자 성격으로 전환해 입건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유상운송법 위반 조장 및 알선 혐의다. 노원경찰서는 현재 럭시를 통해 1일 3회 이상 카풀을 한 80여명의 운전자를 여객운송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해당 운전자들은 조사가 끝난 뒤 유상운송 혐의가 인정될 경우 검찰에 넘겨져 벌금형과 함께 180일 동안의 운행정지 행정 처분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조사 당국은 1일 3회 이상 카풀을 한 운전자는 영리 목적에서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간주했다. 출퇴근은 아침·저녁 1번씩 1일 2회만 할 수 있다는 논리지만 현행 여객운송법 어디에도 출퇴근 '시간'이나 '횟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지난해 카풀앱을 합법으로 규정한 국토교통부도 최근 출퇴근 시간 외에 이뤄지는 유상운송은 위법이라는 유권해석만 내놓았을 뿐 시간·횟수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진 않았다.

      럭시에 투자한 투자자들과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수사당국은 아침에 1번, 저녁에 1번이라는 전통적인 출퇴근만 출퇴근 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투잡을 뛰는 사람,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 등 직업 형태가 다양해진 상황을 반영해 법 규제를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는데 자의적으로 내린 해석을 근거로 (운전자들을) 무조건 범법자로 몰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봉진 배달의민족 대표가 주도해 만든 코리아스타트업포럼도 해당 건과 관련한 성명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지난해 9월 국내 스타트업 성장 지원과 애로사항 수집 및 정부기관 전달을 위한 출범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7월 말 기준 102곳의 회원사를 두고 있다.

    • 추가 투자자 유치 작업도 막판에 차질을 빚고 있는 모양새다. 럭시는 지난 8월 현대자동차로부터 50억원, 기존 투자자인 메가인베스트먼트·미국 새마트랭스링크인베스트먼트로부터 50억원 총 100억원을 투자받고, 최근 50억원 규모의 추가 펀딩을 논의 중이었다.

      공유경제 관련 시장이 자리 잡기도 전에 정부가 해당 업체들을 죽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나서서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결국 달라진 것은 없다는 실망감마저 나온다. 이달 초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새 정부 규제개혁 추진방향'을 확정하며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신산업과 신기술 분야의 규제를 사전 허용-사후 규제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다른 벤처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창업이 이뤄지고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와 방임을 적절히 하고 있다"며 "업계 리더가 나와 충분한 투자를 받아 자리를 잡은 뒤 정부 규제가 들어오는데 국내는 무조건 정부 규제부터 들어오고, 규제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과거 기준에 따라 재단해버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수사기관이 조사를 진행하는 사이에 우버쉐어 등 글로벌 업체가 편법 진출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국이 임의로 규정한 출퇴근 시간 규정에 맞게 서비스 이용 가이드를 만들어 국내서는 차량 공유 관련 시장이 제대로 형성될 기회를 놓친 것과 다름 없다는 비판이다.

      실제 21일 강남 지역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오픈한 우버쉐어는 재직증명서를 제출한 이용자만 운전자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운행 이용 횟수도 1일 2회로 제한했다. 한국 외 국가에서 우버가 제공하는 카쉐어 서비스엔 이 같은 가이드가 없다.

      업계 관계자는 "관련 업계에선 원래 우버 진출을 반겼다"며 "우버 같은 글로벌 기업이 들어와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시켜주면 시장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우버가 일종의 편법으로 국내에 진출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자본력에서 뒤처지는 국내 업체들은 고사할 가능성이 적지 않고, 유독 한국만 공유경제 시장이 더디게 성장할 게 불 보듯 뻔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