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 부는 '벤처' 열풍...'주먹구구' 투자 우려
입력 2017.11.14 07:00|수정 2017.11.13 18:57
    투자처 찾아 장벽 낮아진 VC에 집중
    VC업계선 "기업 가치 평가 방식 달라"
    회수 기간도 달라 '질서' 흐릴까 우려
    • "300억원 투자를 요구하던 모 소형 엔터테인먼트회사가 있었다. 평가 후 100억원도 아깝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됐다'고 하더니 결국 증권사서 투자금 유치에 성공하더라."(벤처투자업계 관계자)

      최근 증권사의 벤처 투자 시장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신기술금융업의 진입 문턱이 낮아진 여파다. 정부는 작년 4월 국내 중소·벤처기업을 향한 모험자본 유입량을 늘리기 위해 증권사의 신기술금융업 겸업을 허용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신기술금융업 설립 자본금을 기존 200억원에서 절반으로 줄여줬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신규 벤처 투자 펀드 결성액도 9118억원으로 커졌다. 전년 동기(3495억원) 대비 3배 가까이 확대된 금액이다. 같은 기간 6082억원에서 6984억원으로 신규 투자 금액도 성장했다. 지난 2015년 51개에 불과했던 신기술사업금융업 등록 업체 수는 82개(겸업사 포함)까지 늘었다.

      이 같은 현상은 증권업계의 판도 변화와 무관치 않다. 정책당국이 증권사의 자기자본 대형화를 유도해 중~대형 증권사는 자기자본이익률(ROE) 제고에 비상이다. 증권 중개(brokerage) 비중이 줄어들고 투자은행(IB) 시장이 개화하면서 소형 증권사는 '먹거리'를 잃어버렸다.

      증권업계에서는 더 높은 투자 수익률을 찾아 벤처캐피털(VC)업계로 뛰어드는 상황이다. 연 평균 한 자릿수 후반의 수익률이 목표다. 기업공개(IPO)나 증자·채권 발행 등 연계 영업도 가능한데다 정책 수혜 기대감도 크다. 특히 중소기업 인수·합병(M&A) 펀드 등 관련 정책 자금을 출자 받을 때 유리한 중기특화증권사의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VC업계에서는 증권사의 시장 참여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한다. 신기술금융업 라이선스를 앞세워 뛰어든 증권사들이 '주먹구구' 식으로 투자하다 시장 질서를 흐릴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 증권사들의 상장 전 투자(Pre IPO) 대상인 성장 후기 기업과는 기업 가치 평가(valuation) 방식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실적 등 '숫자'나 일말의 성장성만 보고 성급히 투자를 결정하는 사례도 있다. 이 과정에서 엔터테인먼트·화장품·바이오·4차 산업혁명 등 '테마'성 기업은 가격에 거품이 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존 VC업체와 증권사가 함께 투자한 기업은 회수(exit) 시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투자 기간에 대한 양 측의 기준이 달라서다. VC업계에서 조성한 펀드 만기는 보통 5~10년이다. 초기 단계의 위험 투자인 만큼 변동성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지만, 이 같은 투자에 익숙치 않은 증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구주 매각 등을 시도한다는 전언이다.

      한 대형 VC업체 운용역은 "초기 기업일 수록 적정 가치로 투자해야 하는데, 증권사 '손'을 타면서 한 번 거품이 끼면 후속 투자를 유치하기 어렵다"면서 "증권사와 엮여 있으면 회수를 논의하기도 까다로워 창업투자사는 투자를 꺼린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