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가업승계, 50% 세율 못 피해...규제가 편법 조장
입력 2017.11.23 07:26|수정 2017.11.23 07:26
    '상속' 아닌 '유산' 중심 과세체계
    '가업상속공제' 있지만 한계 뚜렷
    10년 이상 유지한 기업도200억원 정도 면제혜택
    덴마크는 세율 5%로 낮춰...독일은 100% 공제도 가능
    • <편집자주>

      수십 년간 노력으로 사업을 키운 창업자가 다음 세대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은 '부의 대물림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가업의 세대이전으로 인한 기업자본 약화 방어'라는 두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현행 국내세법 체계는 전자에 대한 강조가 큰 상황이다. 아울러 상속 과세는 더욱 강화되는 반면, 지주사 전환 등을 통한 지배구조 합리화는 중소ㆍ중견기업에게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자연히 충분한 시간과 여력을 갖추고 여러 방편으로 승계를 미리 대비하는 대기업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가 양산되고 있다.

    • 국내에서 적용되는 상속ㆍ증여 과세체계는 정확히는 '상속'보다 '유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례로 100억원의 유산을 네 명의 자녀에게 상속한다고 할 경우. 각 자녀가 받을 25억원에 대해 개별적으로 세금을 매겨 1인당 3억6000만원(최대 40%ㆍ일괄공제 등 제외)를 내는 방식이 아니다. 전체 유산 100억원을 세금 부과기준으로 삼고(과세표준) 총 세금 45억6000만원(최대 50%세율ㆍ공제 등 제외시)을 먼저 뽑아낸다. 이후 네 자녀가 1인당 약 11억원의 세금을 내는 구조다.

      상속세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상'유산세'의 개념이다. 다른 국가들보다 상속세가 높은 이유는 비단 세율 뿐만 아니라 이런 점에 기인한다.

      이런 과세체계는 기업의 경영권 지분을 자녀세대에게 물려주려 할 때 더욱 까다롭게 작용한다.

      일례로 창업자가 보유한 경영권 지분 30%가 있다고 할 경우. 해당 지분을 특수관계인 등에 넘기려해도 사실상 50%세율이 부과. 현물(주식)으로 내든 다년간 분할납부하든 세금을 내야 한다. 세율도 표면상 10~50%로 나눠있지만 30억원 이상의 과표에 대해서는 50%세율이 일괄 적용된다.

      가업을 상속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가업상속공제'가 있긴 하다. 하지만 실제 적용될 수 있는 사례는 많지 않다. 일단 최대주주여야 하고, 최소 10년은 해당 사업을 영위해야 하며, 법으로 정한 중소기업(또는 매출액 3000억 미만 중견기업)이어야 한다. 비상장사의 경우, 지분율이 50% 미만이라면 역시 이 제도의 혜택을 못받는다.

      혜택을 받는다고 해도 범위도 넓지 않다. 10년이상 유지한 가업이라고 해도 전체 지분 가운데 200억원 정도에 대해서만 세금을 면제하고 나머지 지분은 역시 최대 50%세율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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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혜택을 받았다고 해도 나중에 물려받은 재산(지분)의 일부(10%)를 5년내 팔았다면 다시 세금을 내야 한다. 물려받은 자녀가 대표이사가 안되었다거나, 업종을 변경했다거나 혹은 사업이 나빠 폐업을 해도 역시 혜택받은 세금을 다시 내야 한다. 말 그대로 '기업'보다는 소규모 '가업'에나 해당될 만한 제도. 도입 시기가 20년전인 1997년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상속준비 없이 창업자가 사망하는 경우는 사단이 발생한다. 2000억원대의 주식을 보유한 창업자가 갑자기 사망했고 이를 물려받아야 할 자녀가 많을 경우. 800억원이 넘는 세금을 내야 하기때문에 기존에 그만한 재산이 없을 경우 불가피하게 경영권 매각이 생긴다. 지난 2008년 쓰리세븐 매각, 2014년 농우바이오 매각이 대표적인 사례고 최근 유니더스매각도 비슷한 케이스로 꼽힌다.

      해외는 상황이 다르다. '부의 대물림'에 대한 냉정한 판단은 과세형평성에 따라 자본소득 등에 대한 과세로 강화하는 대신, 가업승계에서는 상당한 유예를 마련했다.

      덴마크의 경우 2015년 15%였던 가업상속세율을 매년 낮춰 2021년에는 5%까지 줄일 예정이다. 독일은 아예 오래전부터 가업상속세제에서 '사업용자산'에 대해서는 85%, 최대 100% 전부 공제해 준다. 대신 향후 5년~7년간 종업원들에게 제공된 총급여량을 따져 공제의 적정성을 따진다.

      비합리적인 과세체계는 의도치 않게 창업주로 하여금 사전에 승계를 준비, 법인을 활용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편법'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법무법인 소속 한 변호사는 "창업주가 별도 법인을 세우면서 자녀세대가 이 법인의 주식을 처음부터 갖게 하고 이 회사의 덩치와 이익을 키우는 방식은 대다수가 한번쯤 고민해 보는 승계 형태"라고 지적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오너들의 2~3세 상속방식도 넓게보면 대부분 이 범주안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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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져보면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상속과 승계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과 전문가 풀을 보유한데다 활용할 수 있는 관련 계열사도 많은 편이다. 반면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에서 간신히 창업과 수성을 거쳐 일궈낸 중소ㆍ중견기업만 승계를 준비할 마땅한 대비책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애시당초 '승계'보다 '매각'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예 창업자 생전에 경영권을 매각해 현금을 받고 이를 각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그나마 유산세보다는 적게 세금을 낼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