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아 놓은 일감' 사라지는 M&A 자문 시장
입력 2017.12.22 07:00|수정 2017.12.26 09:34
    기업 역량은 늘고 교감은 줄어…차별화 전략 과제
    대형 딜 입지 좁아진 외국계IB…자문 기여도 줄어
    로펌 종합자문사화 분주…김앤장 송무 강점 적극 활용
    회계펌 몸집 불리기…감사업무·글로벌네트워크 강점
    •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갈수록 거래 주체와 자문사간의 연결 고리가 옅어지는 모습이다. 경쟁이 심화하며 특정 고객이나 특정 성격의 거래에서 으레 고용되던 자문사 이름을 찾아보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우스들의 역량이 고만고만해지면서 배짱을 부리다가 일감을 놓치는 사례도 나타난다. 차별화 여부에 따라 먹거리가 갈릴 자문사들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올해도 크게 기를 펴지 못했다. 자문 수임이 당연시됐던 수천억원 이상 거래에서도 이름을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거래 당사자가 직접 하기 번거로운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 혹은 국내에서 답을 찾기 어려운 거래의 대행 역할이 많았다.

      의미 있는 자문을 제공한 거래는 골드만삭스의 대성산업가스 매각, 크레디트스위스의 SK실트론 매각, JP모건의 경남에너지 매각, 모건스탠리의 카카오모빌리티 투자유치 등 손에 꼽는다.

      이 외엔 글로벌 본사 차원 자문에 일부 기여하거나, 특수관계에 기반한 자문 사례가 많았다. 베인캐피탈-골드만삭스PIA는 카버코리아 M&A에서 실질적인 재무자문을 수행하지 않은 골드만삭스에 어느 정도의 기여를 인정할 것인지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M&A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사모펀드(PEF)조차 투자처를 찍어두고 하는 거래에선 IB의 손을 빌릴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며 "올해 승계 성격 거래가 시장을 달궜지만 국내 네트워크가 약한 IB의 먹거리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는 외국계 IB의 지각 변동도 많았다. JP모건 한국사무소가 IB부문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골드만삭스는 DCM(부채자본시장) 부문에서 승진자가 나왔다. 크레디트스위스, UBS 등도 수뇌부 변동이 있었다. 한국 진출 후 작년까지 1건의 블록딜만 주관했던 HSBC증권은 올해에만 이마트(IBK기업은행),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 굵직한 블록딜을 주선하며 달라진 전략을 드러냈다.

    • 법률자문 시장에선 대형 법무법인을 중심으로 종합자문사로 거듭나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과거처럼 단순히 친분과 인맥만 가지고 자문을 수임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한 대형 법무법인은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긴 거래의 자문료를 비싸게 불렀다가 외면당했고, 고객을 찾아가 사정한 끝에 다시 자문사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기업 내 법무팀 역량이 강화한 데다, 외국계 로펌들이 가져가는 파이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김앤장법률사무소가 가장 활발하다. M&A 자문 팀원 수만 100명 이상인 김앤장은 더욱 공격적으로 자문에 나서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요 그룹의 빅딜 거래에 관여했던 김동우 전 EY한영 전무가 합류했고,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부처 인사 영입도 줄을 이었다. 법무법인 중에선 사실상 유일하게 포렌식(Forensic) 조직을 갖추고 있다. 이 조직은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건에서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김앤장은 전혀 다른 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송무'를 자문으로 연계해 가고 있다. 형사 소송의 성공 보수는 사라졌고, 재벌 그룹 오너 사건을 수임한다 해도 그 자체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긴 어렵다. 그러나 기업은 다른 자문을 맡길 때 후한 가격을 쳐줌으로써 부족분을 보상해주는 경우가 많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형사사건 수임 후 지주사 전환 자문을 수임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 전엔 롯데그룹과 관계가 소원했던 터라 계열사들에선 ‘오래 일하다 보니 김앤장에도 일을 다 맡겨 본다’는 분위기도 있다는 전언이다.

      김앤장과의 격차는 당분간 좁히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대형 법무법인들도 저마다 역량 강화에 분주한 모습이다. 광장이 삼일PwC 출신 파트너 회계사를 영입했고, 세종도 포렌식 조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PEF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조직 구성도 이어지고 있다.

      회계법인 업계에서도 원스톱 서비스 구축은 지상과제다. 법무법인에 '송무'가 있다면 회계법인은 '감사' 업무가 다양한 기업과 접점을 만들어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감사부문은 여전히 회계법인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지만 성장성은 둔화한 지 오래다. 해마다 화제가 됐던 감사 수임 쟁탈전도 이제는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한다. 다만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하며 알게 된 내밀한 고민과 정보는 M&A 관련 자문을 수행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법인은 결국 감사를 잘 해야 다른 자문 거래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외부감사인 선정을 앞둔 롯데지주의 경우 그룹의 M&A를 총괄할 것이기 때문에 감사를 잘 해 관계를 다져두려는 곳들이 많다”고 말했다.

      물론 감사만으로 자문 수임을 담보하긴 어렵다. 비슷한 수준의 회계법인이 4곳이나 되기 때문에 별다른 차별성 없이 수수료 욕심을 내면 여지없이 밀려난다. 회계법인들은 기업 출신 인력, 변호사, 세무사 등 다양한 직군의 인재를 확충해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삼일PwC는 내년 해운업 관련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선박금융 경험이 많은 현대상선 실무진을 딜 본부로 영입하기도 했다.

      회계법인들이 M&A 자문에서 가장 공을 들여온 부분은 재무실사(FDD, Financial Due Diligence) 영역이었지만 갈수록 상업적 부문에 대한 실사(CDD, Commercial Due Diligence)를 강화하고 있다. 기존엔 컨설팅사들이 주로 해왔으나 감사로 다져놓은 기업 인맥, 글로벌 차원의 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대형 회계법인이 개척할 여지도 많은 영역이다. EY한영은 글로벌 컨설팅회사 엑센츄어 한국법인 직원을 대거 영입하며 컨설팅 역량 보강에 힘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