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지분투자 등 스타트업 신종 투자 방식 두고 설왕설래
입력 2017.12.22 07:00|수정 2017.12.26 09:36
    중기부, 벤처투자촉진법 등 통합 법안 마련
    밸류 책정 없이 투자하는 투자 유형 도입 포함
    금융위 등과 파워게임 우려…"일단 법부터 만들어야"
    • 중소벤처기업부가 통합법안을 준비하면서 그간 법적으로 명문화 되지 않았던 투자방식을 도입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초기 투자 시 투자 기업의 기업가치(밸류에이션)를 책정하지 않도록 해 초기 기업 투자를 늘리겠다는 의도다. 벤처 투자 업계는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투자촉진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벤처 투자 관련 법안은 '중소기업창업지원법'과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이원화돼 있는데 모두 연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이에 중기부는 두 법안을 통합한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간 중소기업청(現 중기부) 등 관련 주무 부처는 한시적인 특별법 형태로 운영해온 이 법안들을 통합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여러 차례 진행해왔다.

      중기부가 제시한 가안에는 창업투자회사와 신기술금융회사 등 벤처캐피탈 업체에 적용되던 투자 제한 업종 규제 등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안은 그간 국내에서는 통용되지 않던 '조건부 지분투자'(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컨버터블 노트'(Convertible note)를 투자 허용 유형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현행 법령상 인정됐던 투자 방식은 신주, 구주,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등으로 제한돼 왔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SAFE와 컨버터블 노트는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널리 쓰이는 투자 방식으로 국내에선 법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아 국내 투자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투자 방식은 구체적인 기업가치를 책정하지 않고 투자하는 게 특징이다. 보통주 전환시 전환 조건과 기업가치 범위 정도만 포함한 단순 계약 형태로, 기업가치와 전환가격 등은 후속 투자가 이뤄질 때 책정된 기업가치에 연동된다. 후속 투자시 책정한 기업가치에 계약서상 명시된 할인율(20~30%)을 적용한 기업가치로 지분율을 계산한다.

      예컨대 초기 투자자가 A기업에 10억원(할인율 20%)을 투자했다고 가정할 때 초기 투자자는 해당 기업의 밸류에이션를 80억~100억원 수준이라고 범위만 정해둔다. 후속 투자자가 A기업 기업가치를 100억원으로 책정했다면 초기 투자자는 계약서에 따라 A기업 밸류에이션을 80억원으로 인정받게 된다. A기업 지분 12.5%를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초기(창업 후 3년 이내) 기업의 경우 밸류에이션을 책정하기 여려운 점을 해소하겠다는 의도다. 연내 결성될 이른바 1조4000억원 규모 추경펀드 가운데 초기 기업을 주목적 투자대상으로 둔 펀드(청년창업펀드 등)가 총 5520억원 규모로 전체 펀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

      다른 벤처업계 관계자는 "청년창업펀드 등 초기 기업 투자를 명시한 펀드가 많아져 초기 기업 투자시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기 위한 방안"이라며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려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아져 투자자가 투자를 망설이는 상황도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중기부가 추진하는 이번 안을 두고 벤처 투자 업계에선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초기 기업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에선 도입 가능성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일단 무의미한 밸류에이션 줄다리기가 줄어들어 초기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 초기 기업의 경우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경우가 많아 투자자와 기업가 적정 밸류에이션을 두고 장기간 눈치싸움을 벌이는 일이 부지기수다. 투자자는 객관적인 실적 지표 없이 청사진만 가지고 높은 가격을 매길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기업은 조금이라도 높은 밸류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 벤처캐피탈 업체 심사역은 "밸류에이션을 10억원 깎았다고 칭찬받고, 10억원을 더 줬다고 혼나는 식의 무의미한 상황이 해소되지 않겠냐"며 "기업가치를 탄력적으로 정할 수 있게 돼 초기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명문화되지 못해 도입하지 못했던 것이지 수요는 꾸준히 있었다는 후문이다.

      반면 도입 자체가 확정돼야 가능한 일이라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신종 투자 유형 도입을 검토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현실적으로 해당 통합 법안이 통과·시행돼야 가능한 일이란 지적도 있다. 해당 내용을 담은 법안이 통과된다면 중기부가 창업투자회사·신기술금융회사 등 벤처 투자 사업에 대한 관할권을 쥐게 되는 것인데 이를 금융위원회가 가만히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다른 벤처캐피탈 업체 운용역은 "중기부와 금융위 모두 해당 사업을 놓치 않으려고 하는 상황"이라며 "그간 신기술금융회사 관련 규제를 풀며 중기부와 주도권 다툼을 해온 금융위가 손 놓고 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