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잡음만 내는 조선업…거꾸로 가는 구조조정 시계
입력 2018.01.11 07:00|수정 2018.01.12 10:34
    정부, '조선업 살리기' 기조 강화
    일부 RG발급 외엔 손 놓은 금융권
    증자 추진하던 현대·삼성重 '불안'
    STX·성동조선해양, 회생 기대감 품어
    • 새 정부 출범으로 국내 조선업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란 기대감이 보기 좋게 꺾이고 있다. 정부가 조선업 구조조정을 두고 모호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 데다, 금융권은 아예 손을 놓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다.

      앞서 대규모 증자 계획을 발표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고, 대우조선해양과 중견 조선사들은 회생에 대한 기대감을 조심스럽게 가지게 된 분위기다.

      수년간 진행된 국내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소형 조선소 대부분이 시장에서 퇴출됐고, 중견 조선소 중에선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만이 생존해 있다. 대형 조선 3사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일단락하고 대규모 자본확충과 일감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정부가 연초부터 잠시 숨을 돌린 업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첫 일정으로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한 직후,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신북방 정책 추진의 일환이란 게 방문의 표면적 이유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권이 '조선업 살리기'에 방점을 찍으려는 의도가 아니겠냐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조선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대우조선해양 방문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부 관계자 누구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면서 조선업계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라며 "정부의 속뜻을 알지 못하다보니 조선사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고 밝혔다.

      혼란의 불씨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행보에서도 지펴졌다. 백운규 산자부 장관이 대형 조선 3사 CEO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성동조선해양 처리 문제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에 성동조선해양을 떠넘기려는 게 아니냐는 소문들이 순식간에 번졌다. 조선사들이 난색을 보이자 백운규 장관은 부랴부랴 부인하며 즉시 진화했다.

      정부와 손발을 맞춰야 할 금융권은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일부 은행들이 RG(선수금환급보증) 규모를 차츰 늘려가고 있는 조치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이마저도 산업은행·수출입은행·우리은행 정도가 번갈아 가며 대형조선사 위주로 RG 발급에 나서고 있는 정도다. 중견 조선소는 여전히 금융지원을 받고 있지 못하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산업은행 구조조정부문이 조직개편을 거치면서 전과 달리 힘(권한)이 많이 축소된 듯한 분위기"라며 "정부에서 산업부 장관을 중심으로 산업적 측면을 고려해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분위기를 띄우자 이 기회에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한발 물러서려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했다.

      모호한 입장을 발표한 정부와 한발 물러선 금융기관들 사이에서 당사자인 조선업체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 발표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방안부터가 실효성이 떨어지고 탁상행정에 기인한 방안이었다"며 "급하게 출범한 정부라는 점을 고려해도 업황과 업체들의 사정을 충분히 반영하고 고민한 흔적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규모 유상증자를 앞두고 있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분위기도 묘하다. 정부 정책과 금융권 조치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자금 조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장 주도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던 정부가 갑자기 개입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투자자들도 혼란스러운 분위기"라며 "여기에 지난해와 올 1분기 실적이 기대치를 한참 못 미친다면, 유증 흥행을 가늠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면서 10조원 혈세 낭비의 장본인이란 오명에서 벗어날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됐다.

      시장의 불확실성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산자부,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책은행, 시중은행, 해양수산부, 고용노동부 등 조선업 구조조정에 관여된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저마다의 상황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조선업 구조조정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선 "조선 산업 전반에 대해 되돌아보는, 제대로 된 산업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다시 놓쳤다"고 한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