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는 내리막길 걷는 까사미아를 왜 샀을까
입력 2018.02.02 07:00|수정 2018.02.06 09:24
    가정용가구 시장서 존재감 미미한 까사미아
    "재미 못 본 자주(JAJU), 까사미아로 붐업?"
    자회사 신세계인터 제조 카테고리 늘려
    투자자에 긍정적인 시그널 준 마케팅 효과도
    • 신세계가 오랜만에 인수·합병(M&A)시장에 돈을 풀며 화제가 됐다. '신세계의 가구 출사표', '불붙는 20조 규모 홈퍼니싱 시장' 등 관전평이 잇따랐지만 정작 시장의 반응은 잠잠하다.

      신세계 입장에선 비교적 작은 인수 규모와 가구 시장 내 까사미아의 입지를 감안할 때 경쟁사 현대백화점의 리바트 인수 사례와도 구분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빙 생활용품 브랜드 자주(JAJU)를 키우고, 자회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제조 라인을 강화하기 위한 '아이템 확보' 정도에 그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신세계는 이달 약 1800억원을 들여 까사미아를 인수하기로 발표했다. 신세계는 대외적으론 이번 인수로 홈퍼니싱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투자자들과 시장 관계자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잠잠했다. 일각에선 신세계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칠 유의미한 투자는 아니란 지적도 나왔다. 현대백화점의 가구업체 리바트 인수 때와는 다른 케이스란 풀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까사미아는 가구 시장을 흔들만한 사이즈와 시장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가구 자체보다는 다른 것을 염두에 두고 투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세계는 이번 인수 대상에 사무용가구 브랜드인 까사미아우피아 등을 제외한 가정용가구 브랜드 까사미아만 포함했다. 그마저도 가정용가구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 대비 매출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게 업계 평가다. 시장 선두 업체인 한샘의 가정용가구 부문 매출만 보아도 2016년말 기준 1조4630억원(인테리어·부엌/건자재 부문 제외)이다. 같은 기간 까사미아 매출은 1219억원에 그쳤다.

    • 가정용가구의 경우 저출산을 비롯한 인구 구조 변화로 인해 가구 수가 늘지 않아 성장세가 크지 않다. 국내 가구 시장도 소비자 대상(B2C) 가구보다 특판용가구(B2B·빌트인가구)·사무용가구(B2B)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B2C 시장에선 이케아의 국내 진출로 가성비 높은 DIY 가구가 유행하면서 이른바 매출 단가가 낮은 상품 위주로 시장이 조성되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대리점은 대부분 직영이기 때문에 인건비나 임대료 부담이 만만치 않아 대리점을 통한 성장이 쉽지 않다"며 "까사미아의 브랜드 파워나 기존 영업망을 고려하면 이미 짜여진 3강 구도를 깨기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현재 가정용가구 시장은 한샘, 현대리바트, 이케아가 쥐고 있다.

      흔히 그려볼 수 있는 신세계백화점에 까사미아를 입점시켜 시너지를 내는 것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백화점은 영업 면적당 마진 효율성이 중요하다. 매출 기여도가 높은 기존 브랜드 대신 까사미아를 입점할 유인이 작다. 수입 가구 브랜드를 빼고, 까사미아를 입점할 경우 마진이 최대 4분의 1까지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가정용가구인 침대는 유명 수입 브랜드 가구와 가격 차이가 3~4배 정도 난다. 그만큼 백화점에 남는 마진율도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현대백화점 역시 리바트 인수 후 공격적으로 리바트를 백화점 내 입점시키기보단 사무용·특판용·선박용가구인 B2B부문 매출을 키우는 전략을 취했다. 현대건설·현대산업개발·KCC건설 등 범현대가가 든든한 역할을 했다. 신세계그룹 입장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가정용가구보다는 생활용품 브랜드 자주(JAJU)를 감안한 결정이란 풀이가 나온다. 백화점이나 마트 내에서 생활용품 매출이 점점 증가하면 인테리어 소품 등 리빙용품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신세계는 2010년 이마트로부터 자연주의 브랜드를 넘겨받고, 2012년 자주(JAJU)로 리뉴얼했다. 2013년 1600억원 수준이었던 자주(JAJU) 매출은 현재 2000억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전체 매출의 약 20%를 담당한다.

    •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까사미아의 강점은 디자인 노하우"라며 "모던하우스나 다이소 등 메가 매출을 일으키는 회사에 비해 힘을 쓰지 못하던 자주(JAJU)에 까사미아를 붙이면 시너지가 날 것으로 본 것"이라며 "자회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을 그룹 내 계열사에 상품을 공급하는 제조업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제조 라인을 하나 더 추가하는 효과도 있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선 올해 정부발 출점 제한 규제 등으로 인해 현금 여력이 충분한 신세계가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로 까사미아를 활용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백화점·마트의 성장 둔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했다는 시그널도 줬다는 설명이다.

      올해 신세계는 신규 점포 오픈 계획을 미뤘다. 부천신세계는 지역 상인 반발로 사업이 중단됐고, 울산신세계·인천신세계는 인허가 문제로 진행이 지연되고 있다. 이에 따라 2018년 투자예정금액은 1000억~2000억원 수준으로 작년 대비 감소할 전망이다. 인천터미널 임차보증금(1900억원)과 인천터미널 일부 매장·주차장 매각 대금까지 포함하면 적지 않은 현금이 쌓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여윳돈 2000억원을 들여 연간 100억원씩 버는 회사를 인수한 셈"이라며 "은행 이자로도 연간 5%를 못 버는 마당에 적당히 매출도 나고, 새로운 사업 진출 명분으로 투자자들 불만도 잠재울 수 있으니 이 정도면 남는 장사"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