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지'만 바뀐 벤처투자 정책
입력 2018.03.05 07:00|수정 2018.03.02 18:55
    최대 1.4조 풀리는 벤처 투자 시장
    투자 주체·기구마다 제각각 규제 적용
    "재원 확대, 완벽한 해답 아냐"
    • 정부가 벤처 활성화 기조 하에 자금줄 넓히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벤처 투자 사업에 대규모 예산을 편성했다. 신규 펀드가 많아지면서 신규 투자도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투자 재원이 늘어나면서 벤처 투자 시장이 겉보기엔 화려해졌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아쉬움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벤처투자와 한국성장금융은 2018년도 출자사업 계획을 내놨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는 올해 모태펀드를 통해 6180억원을, 한국성장금융은 최대 8000억원을 출자한다. 대표적인 벤처펀드 출자사업 기관인 두 곳에서만 총 1조4180억원의 자금이 풀린다.

      정부는 자금줄을 넓혀 펀드당 규모는 물론 신규 펀드 개수를 늘려 투자 자체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한국벤처투자와 한국성장금융이 각각 창업 초기 스타트업, 성장 단계의 중·후기 기업을 타기팅(Targeting)한 출자사업을 진행해 각 성장 단계별 투자·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투자업계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풀리는 것 자체는 환영할만하지만 그 외엔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는 평가다. 오히려 기대했던 투자 주체와 투자 기구에 대한 규제 완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풀려 재원이 많아진 점 자체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속을 들여다보면 실상 제도적으로 크게 달라진 부분이 많지 않아 기존에 비해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 현행법상 국내에서 벤처 투자를 하는 투자 주체는 창업투자회사·신기술금융회사·유한책임회사(LLC)형 벤처캐피탈·전문 엔젤 투자자·엑셀러레이터로 구분돼 있다. 투자 기구 역시 창업투자조합부터 신기술투자조합·개인투자조합·벤처창업PEF 등으로 다양하다.

      문제는 각각의 투자 주체와 투자 기구를 명시한 근거법이 달라 자본금 규제부터 투자 관련 규제까지 적용받는 법 조항이 다르다는 점이다. 출자자(LP)가 한정적인 국내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법적 규제가 맞는 자금만 찾아다니게 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행 규제는 소액 펀드는 전문 엔젤 투자자와 엑셀러레이터만 하고 중·대형 규모 펀드는 창투사와 신기사가 하는 식으로 칸막이를 쳐놨다"며 "극초기 단계부터 꾸준히 특정 스타트업을 키우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관련 다른 법안으로 인해 규제 완화의 실효성이 나타나지 못하는 점도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예컨대 2016년 법적 근거가 마련된 엑셀러레이터의 모태펀드 초기 분야 출자사업 지원 길은 여전히 막혀있다. 모태펀드 출자 대상에 엑셀러레이터가 운용하는 투자 기구(개인투자조합)가 제외돼 있어서다.

      또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토스나 미미박스 등의 잘 나가는 스타트업들이 국내 등록된 투자 법인에 투자 받는 것을 꺼려 하는 근본적인 이유"라며 "한번 거래 물꼬를 튼 투자자로부터 지속적으로 투자를 받고 싶지만 운용 규모나 법적 성격에 따라 월(Wall)을 쳐놓은 국내에선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