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벤처실, 출자자 지위 악용 논란...실무자 경력 쌓기용?
입력 2018.03.05 07:00|수정 2018.03.06 09:17
    • KDB산업은행의 벤처펀드 출자사업이 실무자들의 성과를 쌓는 용도로 악용되고 있다. 위탁운용사들이 어렵게 마련한 거래 정보를 요구하며 뒤늦게 해당 건에 뛰어들어 투자 조건 등이 변경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는 후문이다.

      현재 산업은행 내 벤처기술금융실은 벤처펀드 출자 사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작년엔 8곳의 벤처캐피탈 업체에 총 2000억여원을 출자했고, 올해는 총 6000억원 규모의 출자사업을 예정하고 있다.

    • 문제는 벤처기술금융실이 산업은행 본 계정(PI)을 통해 직접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업무도 수행하면서 발생했다. 지난 2013년 옛 정책금융공사와 통합되며 정책금융공사가 추진하던 업무를 넘겨받으면서부터다.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성격이 다른 두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벤처금융실 내 실무진들이 사실상 '숟가락 얹기'식 투자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기 관리·감사 명분으로 제출받은 운용 보고서를 참고해 알짜 투자 정보를 얻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부는 특정 기업에 다리를 놓아달라는 요구까지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이런 행위가 위탁운용사들의 업무영역을 침범하는 한편, 투자의욕까지 저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힘들게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투자할 만한 기업을 찾고, 적정 밸류에이션(기업가치)와 향후 사업 확장 계획, 회수 방안 등을 마련한 운용사로선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A 벤처캐피탈 업체 관계자는 "메인 출자자인 산은이 직접 특정 딜(deal)에 끼워 달라고 요구하거나 시장에 이런 '핫 딜'이 도는데 연결을 해달라고 요구하면 거절할 수 있는 GP(운용사)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산업은행 벤처실의 이른바 '갑질' 요구로 계약 체결 막판까지 갔던 딜(deal)이 투자 조건 변경 등으로 연기되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운용사는 어렵게 따낸 투자 할당량을 쪼개어 산업은행에 나눠주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B 벤처캐피탈 업체 관계자는 "가만히 앉아서 쉽게 투자하려는 심보에 억울한 마음이 든다"면서 "다 된 딜에 불청객이 끼어들어 가격이 달라지거나 계약이 연장되는 손해가 발생하지만 일종의 LP 서비스 차원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언급했다.

      이런 요구는 대개 대리~과장급 인력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특히  '랜드마크' 거래에 특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진 개인의 이력에 도움이 돼서다. 민간 운용사 대비 투자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가 많지 않은 산업은행 조직 특성이 반영됐다.

      C 벤처캐피탈 업체 관계자는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업체에 특히 관심이 많다"며 "민간 VC 운용역의 경우 자기가 괜찮은 딜을 따오면 그만큼 보상이 뒤따르는데 산은 직원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레코드라도 챙기자는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최근 산업은행의 위상을 생각하면 실무진들이 개인 이력을 쌓아 민간 운용사로 자리를 옮기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 마저 나오고 있다. 산은을 둘러싸고 여러 잡음이 나오고 있는 지금, 내부 직원들의 이른바 '얌체 투자'로 산은의 한숨은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