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조달해야 하는 대한항공, '오너3세' 리스크로 불시착 우려
입력 2018.04.17 07:00|수정 2018.04.18 10:25
    주식시장서 외국인·기관 동반이탈...'투심 악화'
    부채비율 크게 줄었지만 타인자본 활용 비중 높아
    신종자본증권 차환 막히면 재무 부담 대폭 상승
    '기존 주주와 투자자들만 손실 감내해야할 우려'
    • 4년 연속 적자라는 수렁을 잘 헤쳐나오던 대한항공이 또 다시 '오너 리스크'와 마주쳤다. 타인자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오너가 3세 조현민 전무 '갑질 논란'으로 투자 심리가 악화되고 있다.

      외부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겨 재무상황이 악화될 우려가 불거졌다. 결국 모든 손실은 대한항공 주주와 투자자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16일 주식시장에서 대한항공 주가는 지난주 종가 대비 2.5% 하락 마감했다. 오너 3세인 조현민 전무의 폭행·욕설 논란이 불거진 지난 12일에 7% 급락한 데 이어 또다시 약세를 보였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의 이탈이 눈에 띄었다. 이날 하루 동안에만 외국인이 10만주, 기관은 19만주를 내다 팔았다. 특히 장기투자자인 연기금이 12일 이후 3거래일간 25만주 이상을 순매도하며 이탈한 점이 눈에 띄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대한항공에 대한 자본시장의 평가는 크게 우호적이었다.

      2013년부터 4년 연속 누적 기준 2조원의 적자를 냈다. 그리고 작년에 8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다. 2016년말 1200%에 육박했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500%대로 뚝 떨어졌다.

      이런 개선은 신용등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달 말 대한항공의 등급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했다. 이런 분위기덕분에 2014년 '땅콩 회항' 논란을 일으킨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의 경영복귀도 가능했다. 어쨌든 투자자 심리가 안정되어 있어 조현아 부사장 복귀에 대한 반발과 동요가 적었다.

      그러나 동생 조현민 전무의 '갑질논란'과 '막말파동'이 이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었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올해 대한항공 펀더멘탈이 개선되고 실적도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커서 평가가 좋았다"며 "그러나 조양호 회장 등 오너가 본인들이 자기 스스로 제 발목을 잡았다"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인해 벌어질 대한항공 재무상황 악화 우려다.

      사실 대한항공은 매년 2조원 이상의 영업현금흐름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 14조원에 달하는 과도한 차입금을 보유한 회사다. 따라서 매 시기마다 제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게 필수인 회사다.

      당장 올해에 만기 도래할 차입금만 4조1300억원에 달한다. 차입금 1조2200억원, 회사채 8650억여원 등이다.

      물론 펀더멘탈상 채무 상환에 큰 무리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여론과 지지율에 민감한 현 정부의 분위기를 감안, 금융기관이 돈줄을 옥죌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재무 부담이 정점에 달했던 2015~2016년의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 여론에 민감한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중장기적인 '엑소더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사실 지난 3년간 집중적으로 이뤄진 대한항공의 자본확충은 대부분 시장 자금을 끌어오는 과정이었다. 대한항공은 2015년과 2017년 공모 유상증자를 통해 약 1조원, 같은 해 각각 3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자본을 늘렸다. 최근 3년간 타인자본을 통한 자본 확충 규모만 1조7000억여원으로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3조7500억여원)의 45%에 이른다.

      당장 세 차례에 걸쳐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이 모두 부채로 계상된다면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538%에서 700%대로 급상승한다.

      신종자본증권을 활용한 '자본확충'은 비용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올해 11월부터 2015년 발행한 3억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에 4%의 가산금리가 붙는다. 2020년부턴 3%의 금리가 추가로 붙는다. 지난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오는 2021년부터 '미 국채 금리+5.44%'의 금리에 추가로 5%의 가산금리가 적용된다. '초고금리채'가 되는 셈이다.

      가산금리를 물지 않으려면 신종자본증권의 만기 시점에 이를 상환해야 한다. 이때에도 시장의 힘을 빌려야 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 원활한 신규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한항공의 재무부담이 더 늘어나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계열사인 진에어 주가 하락이란 변수도 있다. 이는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부담이 된다. 실제로 진에어 주가는 11일부터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 사업에도 일부 영향이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까지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논란은 '한진 3세들이 '경영자'로서 자질을 갖추었는지' 여부로도 확산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그룹을 총괄하고, 주요 사업 부문을 3남매가 나눠 맡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뉴욕타임즈 등 주요 외신이 '(한국의) 재벌 가족들은 부패 스캔들과 형제간 불화에 끊임없이 연루되고 있다'고 보도하는 등 이들이 경영 일선에 나서있다는 사실 자체가 리스크로 부각되는 분위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자숙 기간'동안 대한항공이나 칼호텔네트워크에 '경영 공백'이 느껴졌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번 사태는 대한항공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재벌기업들에 대한 총체적인 오너 리스크를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또한번 재부각 시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대한항공의 사명을 변경하고 국적기 지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번 논란에 뿌리를 둔 것이다. 현실화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이 잇따라 언급하며 정치 이슈화하는 모양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고객들이 대한항공을 보이콧하고 있는 건 아니라 기업 신용도에 얼마나 영향이 있을지 당장 판단하긴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지배구조 측면에서 어떤 리스크로 부각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