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많아 자금조달 이미 팍팍한데…국적 항공사들, '오너 리스크'에 휘청
입력 2018.04.26 07:00|수정 2018.04.27 10:43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 '막말 파동'
    오랜만의 흑자전환에 찬물 끼얹어

    아시아나, 그룹의 담보 역할 '한계'
    박삼구 회장의 경영 능력도 논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후 향방 주목
    •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들이 잇따른 오너 리스크로 흔들리고 있다. 이들 항공사는 부채비율 감소와 신규 투자를 위해 이미 시장에 많은 빚을 진 상태다. 앞으로 진행될 자금조달 스케줄도 팍팍하다.

      재계를 향한 주주가치 제고 목소리가 안팎에서 커지는 상황에서 부각되는 오너 리스크는 주주와 투자자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자칫 외부 자금 조달에도 차질이 생겨 재무상황이 더 악화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은 오랜만에 경사들이 겹치는 상황이었다. 4년 연속 누적 기준 2조원의 적자를 내던 대한항공이 2017년 8000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다. 2016년말 1200%에 육박했던 부채비율도 1년만에 500%대로 떨어졌다. ‘부정적’이었던 대한항공의 신용등급(BBB+) 전망도 ‘안정적’으로 조정되며 대규모 공모채 발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2014년 조현아 칼호텔네크워크 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이후 4년만에 동생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갑질’ 논란과 ‘막말’ 파동으로 완전히 찬물을 끼얹었다.

      대한항공은 매년 2조원 이상의 영업현금흐름을 내고 있지만 14조원에 달하는 과도한 차입금을 보유하고 있다. 당장 올해 만기도래 차입금만 4조원이 넘는다. 만기 때마다 리파이낸싱을 해야 하기에 적시 자금조달이 중요하다. 500%대로 떨어진 부채비율도 타인 자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유상증자,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 최근 3년간 타인자본을 통한 자본 확충 규모는 1조7000억원이다. 지난해말 기준 자기자본(3조7500억여원)의 45%에 이른다. 신종자본증권이 모두 부채로 계상된다면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다시 700%대로 상승한다.

      대한항공의 부채비율 관리가 시장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너의 부적절한 언행이 회사 기업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건이다.  일단 투자자들의 우려는 대한항공 오너 리스크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조양호 회장은 이메일 사과문으로 두 딸을 모든 직책에서 사퇴시키겠다고 밝혔지만 전례상 표면적인 자숙의 시간을 보내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전문경영인 부회장직을 신설했지만 시장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아시아나항공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승무원 격려 행사에서 불거진 성희롱 논란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았지만, 회사의 생존 자체가 더 큰 문제다. 차입금은 좀처럼 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부채비율은 700%대로 떨어졌지만 2019년 IFRS16(리스 회계규정)이 도입되면 부채비율이 200%포인트 가깝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차입금 만기는 갈수록 짧아져 1년새 단기성차입금 비중은 20%대에서 40%대로 증가했다. 타기업 지분 및 사옥 매각, 자회사 기업공개, 대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 발행 추진 등 전방위적으로 유동성을 확충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현금보유량을 최대화해 2020년까지 회사 대외 신용등급을 투자안정등급인 A등급까지 상향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신용등급 관리는 시급하다. 아시아나항공의 자금조달 중 자산유동화증권(ABS) 비중이 큰 편인데 현재 신용등급(BBB-/안정적)이 'BB+'로 떨어지면 트리거가 작동, ABS에 대한 조기상환권이 발동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그룹의 확장 또는 재건 때마다 사실상 담보 역할을 했고, 그 역할도 한계에 직면했다. 이미 금융권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많이 차 있어 시장 조달을 기관들이 소화하기 어렵다. 고금리를 원하는 리테일 수요가 있다는 점이 호재이지만, 리테일 시장 의존도가 높아진 그룹들의 끝은 좋지 않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산업과 시장에서 갖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채무 상환은 어떻게든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너들이 '경영자'로서 자질을 갖추었는가”로 논란이 확산되면 기업 평판을 중시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생각은 달라질 수도 있다. 재벌 개혁 의지가 높은 정부, 재벌 총수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 국내외 투자자들의 주주가치 제고 목소리 등을 감안하면 반복되는 오너 리스크는 기업가치를 가를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뉴욕타임즈 등 주요 외신이 '(한국의) 재벌 가족들은 부패 스캔들과 형제간 불화에 끊임없이 연루되고 있다'고 보도하며 조씨 남매가 경영 일선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리스크로 부각되는 분위기다. 미국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 사업 등에도 일부 영향이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까지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올해 대한항공 펀더멘탈이 개선되고 실적도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커서 평가가 좋았는데 오너들이 스스로 제 발목을 잡았다"라고 평가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제주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설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존재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원인이 박삼구 회장의 무리한 외형확장과 그룹 재건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영 능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앞두고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할 지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을 11.67%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이고,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도 11.81% 보유하고 있다. 자격이 부족한 오너가 이사진의 해임요구와 지배구조 개선, 포트폴리오 비중 축소 등 직접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너들로 인해 대한항공 주가가 계속 하락한다면, 수익률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투자 비중을 줄일 수도 있다. 2년전까지 아시아나항공의 주요 주주였던 국민연금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으로 아시아나항공 재무안정성이 떨어지자 지분을 처리, 주요 주주 지위를 내려놨다.